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자!

 

“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자!”

- 이정모 관장님의 과신대 핵심과정 강의를 듣고 -

 

 

과신대 핵심과정 5강은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님의 "과학으로 보는 창조 역사"였습니다. 이정모 관장님은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자로서 서울시립과학관과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도 계셨습니다. 과학관 관장님이 과학자이실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다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관장님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좀 더 확인을 해보니 지금은 종영된 TV 방송 프로그램인 ‘어쩌다 어른’에 출연하셔서 과학강연을 한 적이 있으셨습니다. 아마 편안한 이미지와 재미있는 강의로 많은 시청자 분들이 좋아하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관장님은 이번 강의에서 신학과 과학의 최초 충돌이었던 천동설과 지동설, 그리고 두 번째 충돌인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더 이상의 충돌은 자제하고 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자고 하셨으며 아울러 충돌에 대한 해결법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교수님 강의의 주요 내용과 제가 느낀 점을 간단히 설명드리고 과학과 신학의 갈등 해결법에 대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천동설과 지동설 갈등의 단면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자연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따라서 신앙과 이성은 대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는, 자연에 관한 문제에서 만큼은 과학이 신학보다 우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일반인의 이해를 목적으로 씌여졌고 쉽게 재해석할 수 있지만, 자연은 변경할 수 없는 실제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경에 있는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에 관한 진실을 과학자들이 증명하면, 신학자들은 그 문장의 의미를 재해석하여 명확히 해야 합니다." - 갈릴레오가 크리스티나 대공 부인에게 보낸 편지 -

 

위의 글은 종교재판과 관련하여 입장이 난처해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자신의 후견인인 크리스티나 대공 부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이 편지에서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 가설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과학에 대한 성경의 올바른 해석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편지의 내용 이면에는 종교재판에 대한 갈릴레이의 걱정과 염려가 스며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편지가 천동설과 지동설의 문제가 아닌 창조론과 진화론의 문제 때문에 요즘 시대에 쓰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고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16세기, 천동설에 기반하여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모두가 믿고 있을 때, 지동설을 주장하며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은 잘못되었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도 아닐뿐더러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한다면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수용하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신앙적 자존감이 무너지게 되듯이, 인류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에 의해서 그분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믿고 있는데 창조가 아닌 진화에 의해 인류가 시작되었고 발전하여 왔다고 한다면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와 마찬가지 반응은 당연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 진화발생생물학 (EVO-DEVO) >

 

진화발생생물학은 다양한 동물과 식물의 발생과정을 비교하여 공통 조상에서부터 진화한 생물의 공통 요소와 변이를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입니다 (위키백과 참조). 이것의 예를 들자면, 닭과 생쥐와 구렁이는 기본적으로 같은 유전자 설계도를 가지고 있지만 레고처럼 유전자를 여러 번 사용하는 것에 따라 가슴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게 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초파리의 Eyelsss 유전자를 뜯어내서 생쥐의 배아에 이식하거나, 반대로 생쥐의 유전자를 초파리에 이식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이식 여부에 상관없이 생쥐에서는 생쥐의 눈이, 초파리에서는 초파리의 눈이 생기게 됩니다. 즉, 같은 유전자가 다른 곳에서 사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적으로 진화라는 것은 새로운 유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조합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15~20년이면 진화의 과정을 무인도나 실험실에서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물며 생명의 역사 38억년일까요?

 

 

< 우리의 숙제 >

 

강의 시작부에 종교재판과 관련한 갈릴레오의 편지를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나오는 그리스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가 떠올랐습니다. 남성 편력의 시대에 수학과 철학에 능통했고 매우 아름답기까지 하였으나 철학과 결혼했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독신의 삶을 살았던 그녀는 결국 종교적인 이유로 발가벗겨지고, 조개껍데기와 같은 날카로운 것에 온몸이 난자된 뒤, 불에 태워져 비극적으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기독교 역사에는 이토록 무섭고 마음 아픈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많은 환난과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실제 그렇게 되었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일들도 너무 많이 일어났습니다. 어쩌면 기독교의 그런 모습이 낳은 존재들이 니체요 도킨스가 아닌가 합니다.

 

이정모 관장님은 도킨스가 싫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그의 사상이 싫으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도킨스는 과학의 이름으로 신념과 이념을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과학, 그중에서도 진화론이라고 하면 긴장부터 하고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자세를 취하곤 합니다.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는 행위로 옮겨지지 않을 뿐 중세시대의 종교에 의한 탄압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한 갈등은 없을 수는 없으나 이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 창조와 과학의 갈등 해결법 >

 

"겸손이란 본능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이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한스 로슬링의 FACTFULLNESS』 에서 -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관계에서 위와 같은 ‘겸손’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눈다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정모 관장님께서 말씀하신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갈등-분리-접촉-지지라는 절차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 시대의 창조론과 진화론 간의 상태가 바로 ‘갈등’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갈등이 있으면 일단은 서로가 ‘분리’ 상태로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접촉’을 하여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지지’ 하거나 아직까지 서로의 입장 차이가 크다면 다시 ‘분리’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이견을 좁혀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가 함께 해결할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협력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바로 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언급했던 진화론의 문제를 창조과학에서 공격의 빌미로 삼는 행위는 이제 접어두고 지구 온난화나 기후 문제 등 인류가 21세기에 직면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자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왜?’라는 차원에서 접근을 하고, 과학에서는 ‘어떻게?’라는 차원에서 접근을 하여 폭넓게 해결책을 찾는다면 서로의 갈등은 어쩌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김완식 기자 (comebyhere@daum.net)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