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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 Q

[과신Q] 11. 과학은 기적을 부인하지 않나요?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4. 9.

 

기적에 관해 묻는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과학은 기적을 부정하기 때문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연법칙을 사용해 세상을 만들었다는 인과적 창조는 기적을 행할 수 없도록 하나님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기도 합니다. 과연 과학은 기적을 제거해 버리는 걸까요? 과학을 수용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적도 행할 수 없는 무력한 신으로 만드는 걸까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전제조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기적’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난 두 편의 글에서 다루었듯, 우리가 믿는 신이 인형극의 신이라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인형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비롯한 모든 현상은 그저 인형을 움직이는 사람의 작위적인 조작에 따라 완벽하게 결정됩니다. 인형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원인은 그 내부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연구해도 인형의 세계에서 인과관계나 자연법칙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현상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적입니다.

또는 우리가 믿는 신이 시계공과 같다면 어떤 기적도 불가능합니다. 시계공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계는 규칙대로 작동합니다. 초침, 분침, 시침이 톱니바퀴의 회전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시계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과관계로 설명됩니다. 두 시를 가리키던 시침이 갑자기 세 시로 옮겨가지는 않습니다.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상적으로 말하는 기적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떨까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우리는 흔히 기적이라 부릅니다. 암 진단과 함께 한 달 정도만 살 수 있다는 선고를 받았는데 죽지 않고 수년 동안 건강하게 살아간다거나, 자동차가 뒤집혀 서너 바퀴 구르는 사고를 당했는데도 차에서 말짱하게 걸어 나온다면 기적이라고 하지요.

도대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세 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째, 논리적 불가능성입니다. 가령, 동그란 삼각형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동그랗다면 삼각형이 아니고, 삼각형은 원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불가능은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둘째, 물리적 불가능성입니다. 가령, 달 표면까지 순간이동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상상은 가능하지만 현재 우리가 아는 물리법칙에 따르면 불가능합니다. 옥상에서 떨어졌는데 공중에 떠 있거나 오히려 위로 올라가는 일은 어떨까요? 불가능합니다. 자연법칙에 위배됩니다. 셋째, 확률적 불가능성입니다. 가능하지만 거의 일어날 수 없는 경우를 지칭합니다.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졌는데 죽기는커녕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면 어떨까요? 확률이 매우 낮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나뭇가지에 부딪히며 충격이 줄고 흙과 나뭇잎이 두껍게 쌓인 화단에 떨어져서 중상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기적은 대부분 세 번째에 해당합니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확률이 낮은 일이 발생했을 때 기적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불치병이 낫기도 하고 대형사고를 당하고 생존하기도 합니다. 복권에 당첨되는 일은 기적처럼 느껴지지만 불가능한 사건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매주 복권에 당첨됩니다. 복권을 사지 않았는데 당첨이 되는 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세 번 연속 복권에 당첨되는 일도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확률이 매우 낮기는 하지만 누군가 복권 번호를 조작하지 않아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입니다.

 

 

 

 

‘현재의 과학’으로 판단하는 한계

 


그렇다면 물리적 불가능성은 어떨까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즉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그런 기적은 일어날 수 없는 걸까요?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물리적 불가능성의 판단에는 결국 ‘현재의 과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아는 자연법칙은 완벽하거나 최종적이지 않습니다.

자연법칙은 모든 자연현상이 복종하고 따르는 어떤 절대적 권력이 아닙니다. 물론 과학자들은 자연세계에 모종의 절대적인 법칙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바로 자연의 합리성입니다. 하지만 이상적인 자연법칙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제한된 자연법칙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관측하고 실험을 통해 인지하고 찾아낸 자연현상의 패턴을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자연법칙은 자신을 위배하는 현상을 막아낼 능력이 없습니다.

사실 자연법칙을 깨는 예외적인 현상은 계속 발견되어 왔습니다. 새로 발견된 현상에 맞게 자연법칙이 수정되어온 지속적인 과정을 과학사가 보여줍니다. 가령, 운동하는 물체는 시간에 따른 궤적이 결정됩니다. 대포를 쏘면 대포알이 어디로 떨어질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입니다. 하지만 양자 현상은 이 법칙에 위배됩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건이 발생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고전물리학이 불완전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연법칙은 수정되고 양자론이 탄생했습니다.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운동하면 시간도 다르게 흘러가고 공간도 달라집니다. 고전물리학에 위배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공간에 대해서 제대로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공간의 개념을 바꾼 상대론이 등장했습니다.

과학은 경험적인 학문입니다. 점진적이고 근사적으로 자연현상을 더 잘 설명하는 법칙을 찾아가는 과정이 과학입니다. 자연법칙에 어긋나 보이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실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아는 자연법칙의 한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물리적 불가능성은 현재의 제한된 과학 지식에 근거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기적으로 보이는 일이 100년 후 평범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타임머신을 타고 수천 년 전 과거로 가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동영상을 찍어서 보여준다거나, 인공지능 음성비서와 대화를 시연하면 신과 같은 대우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고대인들에게는 기적으로 보일 테니까요.

 

 


합리성과 자연법칙 안에 존재하는 기적

 


그리스도인들은 기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도 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물론 논리적 불가능성을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동그란 삼각형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하나님을 모순된 존재로 만드는 셈이 됩니다. 하나님은 악한 하나님이 될 수 있을까요?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선하기 때문에 악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악한 하나님이라는 말은 모순입니다.

기적을 믿는 신앙은 하나님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거나 확률이 매우 낮은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자연의 인과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는 고대인들에게 중력법칙을 깨는 기적처럼 보이겠지요. 하지만 비행기의 이륙을 자연법칙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듯이, 우리가 경험하는 기적은 우리의 무지와 과학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해 보일 뿐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과학이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은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가변성, 그리고 과학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하나의 근사일 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물리적 불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완벽하지 않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확률이 매우 낮은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확률이 낮은 사건이라고 해도 발생 가능성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빅뱅우주론은 양자 요동을 통해 확률이 매우 낮지만 빈 공간에서 물질이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쩌면 기적은 매우 확률이 낮지만 그래도 물리적으로 가능한 사건이 일어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과학의 합리성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기적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세계에 부여하신 합리성과 자연법칙의 틀 안에서 기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논리적 불가능성 혹은 물리적 불가능성으로 보였던 사건들은 사실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절대적인 자연법칙을 통해 섭리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연법칙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면, 아직 과학이 다 파악하지 못한 놀라운 자연법칙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적처럼 보이는 일을 하나님이 행하시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연법칙의 주인이라면 그 자연법칙에 얽매일 필요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고백해야 할 신비의 영역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기적을 행하시는 것일까요? 인간의 경험을 초월하는 신의 행위를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과학의 언어로 신의 섭리를 기술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신앙을 과학으로 풀어내라는 유혹을 종종 받지만 결국 그런 시도는 시계 침을 갑자기 한 시간 뒤로 돌리는 작위적인 시계공과 같은 불완전한 그림을 그려낼 뿐입니다.

기적은 믿음으로 고백해야 할 신비의 영역입니다. 엄밀한 과학적 설명은커녕, 단순한 스케치조차 하지 못하더라도, 그래서 종종 합리적 이해의 부족으로 불만과 의심이 쌓이더라도,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는 신비의 영역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 더 읽기

기적 / C.S. 루이스 지음 / 이종태 옮김 / 강영안 감수 / 홍성사 펴냄
정교한 논리로 기적의 실제성을 변증하는 책. 저자는 기적을 “자연에 대한 초자연적 힘의 간섭”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이것이 믿음 이전의 철학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기적의 자연법칙(8장)과 기적의 적합성(12장) 등을 다루며 기적과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출처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글 |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과학과 신학의 대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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