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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 Q

[과신Q] 14. 과학이라는 밥상에 그리스도인들은 숟가락만 놓았다고요?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7. 7.

 

무신론자들의 비판

기독교에 적대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이기적인 종교인으로 낙인찍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분명히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야 할 이슈가 많습니다. 과학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한편에선 현대과학을 부정하는 창조과학 부류의 태도를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종교가 이미 과학에 의해 사살당했다고 주장합니다. 종교는 주관적이고 비과학적인 고대의 유산에 불과하다며 그 근거로 창조과학을 꼽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은 허수아비 공격입니다. 창조과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도 아니고 필수 요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오독한 도그마적 신앙을 가진 하나의 입장을 기독교 전체로 일반화해서 깎아내리는 일은 공평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무신론자들은 과학을 수용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비판합니다. 신을 믿는다는 행위 자체가 비과학적인데 현대과학을 아무리 수용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합니다. 자신들 관점에서 보면 창조과학의 젊은지구론이나 과학을 수용하는 진화적 창조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과학을 수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창조과학 지지자들처럼 과학을 부정하거나 음모론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오독하거나 성경의 진리를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태도도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는 책으로, 과학은 자연세계를 탐구하여 창조의 지혜를 밝히는 도구로 이해합니다. 과학의 결과는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드러낸다고 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건강한 시각입니다.

그런데도 무신론자들은 과학을 수용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놓는다고 종종 비판합니다. 과학이 밝혀낸 결과들을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신 것으로 이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의 결과를 대가 없이 얻어먹는 얌체들 같다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과학을 부정하는 창조과학의 입장은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고, 반대로 과학을 수용하는 진화적 창조의 입장은 무임승차라고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을 부정해도 문제가 되고 과학을 수용해도 문제가 됩니다. 무신론자들의 비판은 일단 신앙을 갖는 일 자체가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는 주장 같습니다.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무신론자들의 비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관계에 어긋나거나 무신론자들의 이해 부족에서 나온 엉뚱한 비판은 명확하게 답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의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

우선, 창조과학을 비판하는 무신론자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하는 사람이 자신의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과학의 영역에 대해 함부로 폄하하고 불신하거나 음모론을 제기한다면 제 발등을 찍는 셈입니다. 건강한 비판과 합리적인 의심은 좋지만, 누구보다도 더 기존 과학의 결과를 뒤집으려는 비판의식이 가득한 과학자들을 마치 어떤 목적을 위해 사실관계를 조작하는 음모론자처럼 취급하면 과학자들에 대한 모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신론자들의 비판에 창조과학으로 대항하면 오히려 심각한 상처만 입게 됩니다.

하지만 과학을 수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저 숟가락만 얹은 거라는 무신론자들의 비판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런 주장은 두부를 자르듯이 과학과 종교를 둘로 나누어서 마치 과학은 무신론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전제를 드러냅니다. 그런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 비판은 결국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 됩니다.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무신론자들이 밥상을 차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숟가락만 얹었다는 주장은 사실관계에 어긋납니다. 과학은 한두 사람의 영웅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닙니다. 언론의 조명을 받거나 유명한 상을 받는 스타 과학자들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수많은 과학자의 공통된 노력입니다. 아이작 뉴턴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내다본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수많은 과학자가 그동안 쌓아왔던 연구 업적 위에 기초해서 자신의 연구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라 해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설 수 없다면 멀리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인을 구성하는 많은 과학자는 누구일까요? 다들 무신론자일까요?

현대과학은 다양한 분야로 세분되어 있고 각 분야에서 일하는 현장 과학자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들 모두가 무신론자들일까요? 아닙니다. 정확한 통계는 찾기 어렵지만, 과학계에도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이슬람교나 불교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진 과학자들도 많고 종교를 갖지 않더라도 무신론을 따르지 않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무신론을 믿는 과학자도 많습니다. 주목할 점은 과학의 결과는 무신론자들의 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다른 종교적 배경을 지닌 수많은 과학자의 공통된 노력으로 현대과학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무신론자들만이 과학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면 곤란합니다. 다양한 종교적 입장을 가진 과학자들이 함께 밥상을 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많은 사람이 함께 숟가락을 들고 식사하는 중입니다.

둘째, 근대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분명히 엿볼 수가 있습니다. 현대과학뿐 아니라 근대과학의 탄생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인물 중에도 그리스도인들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서구를 지배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넘어 새로운 시각으로 우주를 보는 혁명적 관점을 제안했습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다양한 관측을 통해 지동설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발전시켰습니다. 많은 자료를 통해 행성들의 운동을 규명해서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공전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요하네스 케플러는 자신을 천문학의 제사장이라고 불렀습니다. 근대과학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행성들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영국의 로버트 보일은 근대화학의 기초를 세웠다고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근대과학의 성립에 한 축이 된 17세기 영국 왕립학회에 청교도가 많았다는 사실도 짚어볼 수 있습니다. 근대과학이 성립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손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밥상을 차리는 주인이었습니다.

셋째, 더 근원적으로는 기독교가 근대과학의 탄생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꼭 짚어야 합니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성립할 때도 기독교의 역할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자연세계가 제멋대로 불규칙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과학은 탄생할 수 없습니다. 산신령이나 용왕님이나 도깨비가 자연현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무슨 일이든 마구 일어난다고 보는 미신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자연현상의 규칙성을 찾거나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노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미신적 세계관을 넘어 자연현상의 탈신화화가 일어나고 자연세계가 합리적이라고 가정해야만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우주를 연구하고 과학도 발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수학이나 과학이 유럽보다 앞서 존재했던 아랍이나 중국, 인도에서는 왜 과학혁명이 먼저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왜 서구 유럽에서 근대과학이 태동하게 되었을까요? 서구 유럽이 기독교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전능한 신이 질서 있게 우주를 창조했고 규칙적으로 우주를 운행한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 관점은 자연세계의 합리성과 규칙성을 가정하기 때문에 고대 자연관을 넘어 과학이 태동할 토대를 마련해주었다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역사학자 호이카스는 유럽에서 과학이 태동하는 과정에 기독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은 합리적인 자연관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데, 기독교가 바로 이런 배경을 제공했다는 말입니다.

 


 

과학이라는 학문을 가능하게 만든 배경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발전한 개신교 신학이 근대과학이 탄생하는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반론도 많습니다. 유럽에서 문예 부흥이 일어나면서 그 배경 아래 과학이 태동했다는 견해도 설득력 있게 제시됩니다. 물론, 근대과학을 탄생시킨 가장 근원적인 동력이 기독교였는지 혹은 다른 배경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탄생하는 데 기독교가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과학이 전제하는 합리적인 우주, 질서 있는 자연세계, 자연법칙의 존재라는 관점은 도대체 어디에 기초하는 것일까요? 우주는 처음부터 합리적이었다거나 자연세계는 원래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주장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자연세계의 합리성은 그보다 더 근원적인 원인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질문은 과학 범주를 넘어서는 철학 혹은 신학의 질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합리성을 묻는 말에 기반해서 기독교의 신관과 자연관이 과학의 밑바탕이 된다는 점에 주목해보면, 기독교가 과학의 탄생과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동력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이 차려놓은 과학이라는 밥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숟가락만 얹고 얻어먹는 것은 아닙니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밥상을 차리는 일에 처음부터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군다나 가지런하게 밥상을 차려놓고 먹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 즉 과학이라는 학문을 가능하게 만든 배경에 바로 기독교의 신관과 자연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아니었다면 밥상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 더 읽기

근대과학의 출현과 종교
R. 호이카스 지음 / 손봉호 옮김 / 정음사 펴냄
이 책은 근대과학이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면서부터 급격한 혁명을 이루었다는 생각을 정반대로 뒤집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이 종교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신과 자연에 대한 그리스적 자연관과 성경적 자연관을 비교 검토하고, 근대 혁명기의 과학은 성경적 자연관이 그리스적 자연관을 극복하는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출처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글 |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과학과 신학의 대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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