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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초파리 전쟁과 이보디보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 6. 9.


바나나와 참외와 블루베리를 먹을 때까지는 몰캉하게 달콤하고 아삭하고 좋았다. 오렌지는 즙이 줄줄 흐르는 걸 감안하면서 맛깔스럽게 베어 먹어야 맛있다. 제대로 맛이 들어서 단 냄새가 거실 가득하여 이대로 꿀벌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잠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초파리들이 껍질 주변에서 마구 날아다니더니 내 얼굴과 입술 주변을 넘본다. 

자연발생설이 맞았던 것인가? 분명 밀러의 S자관 실험에서 틀린 것으로 드러났는데 순식간에 이 초파리는 어디서 나타난 것이지? 방충망, 배수구 등에서 들어온다고 친절한 네이버가 정리해 놔서 끄덕거리기는 했다만 참 어이없다. 초파리의 존재는 생물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생명체다. 저 생명체가 없었다면 돌연변이에 대한 지식과 유전학이 오늘날처럼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발생 생물학의 놀라운 성과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마운 생명체이긴 하다만 저걸 어떻게 해야 하나 참 당혹스럽다. 게다가 살림을 맡아서 하는 청소년이 막 투덜대면서 앞으로 집에서는 아예 과일을 먹지 말란다. 장보기 메뉴에서 빼겠다고 선언한다. 어이없다. 이런 상황 적응 안 되지만 청소년이 상황적으로 갑인 것 같아서 일단 수그리고 있기로 했다. 초파리를 처리 하겠다고 손바닥으로 파리 잡듯이 한참을 쫓아다니며 박수치고 다닌다. 이 상황에도 나는 그러라지~ 하며 꿋꿋하게 초파리를 신기해하다가 골똘해진다. 

'이보디보(Evo-Devo)'? 혹성탈출에 나오는 시저의 종 이름인가 치즈 이름인가? 199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신조어이니 낯선 것은 당연하다. 이보디보는 진화 발생 생물학(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을 줄인 말로, 발생학적 접근을 통해 진화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이보디보가 발 딛고 선 지층에는 여러 가지의 퇴적암들이 있고 그 지각변동의 근원지에는 1859년, 다윈, 종의 기원이라는 세 개의 꼭짓점이 있다.  

 


다윈이라는 이름, 정확히 말해 종의 기원, 아니 좀 더 좁혀서 다윈의 진화론은 참으로 강물같이 사회 전 영역으로 흘러들었다. 1859년 다윈이 『 종의 기원』을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내놓았을 때, 그것은 인간의 인식이라는 대지에 대단한 진도의 지진을 발생시켰다. 진화 이론이 생물학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학과 경제학 인류학에 영향을 주었으며 힘에의 의지를 말하는 니체의 철학뿐만이 아니라 예술 등 모든 영역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말하자면  진화 생물학은 “만능산(universal acid)”이 되어서 무엇이든 그것에 닿으면 녹여버리는 것이었다. 

다윈 이래로 유전학이 통계와 확률론의 도움을 받아 수학적인 모듈링이 가능해진 집단 유전학이 된다. 자연선택과 집단유전학으로 진화론을 설명하는 근대적 종합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정작 중요한 발생학이 밀려나면서 변이를 일으키는 발생 메커니즘은 배제되었다. 그런데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발생유전학이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화려하게  등극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기술이 점점 좋아져서 분자단위의 유전자 구성 물질과 서열까지 연구가 가능해진 것이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다름 아닌 호메오 박스다. 유전자가 발현될지 말지를 결정하는 스위치인 셈인데 이것은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루이스가 초파리의 체절, 즉 머리, 가슴,배를 형성하는 '호메오(homeo)' 유전자를 발견하고 이후에 유전자를 이루는 염기서열을 독일의 두 생물학자(에릭 위샤우스와 크리스티안네 뉘슬라인-폴하르트)가 밝혀냈다. 호메오 박스란 초파리의 체절을 형성하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이라고 보면 되고 이것들이 DNA→RNA로 전사되는 과정에서 스위치 역할을 한다. 이것을 알아낸 그들은 199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히스토리를 갖고 발생학은 결별했던 유전학과 만나서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는 이보디보로 꽃을 피워내는 중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느냐는 시인의 노래는 옳다. 시인은 언제나 선지자이면서 예언자다. 최고의 존재여야 할 인간이 침팬지의 DNA와 서열이 싱크로율 98퍼센트에 근접했다는 사실 앞에서 인간의 이성이 휘청거리고 있을 것까지 앞서 짐작했을 테니 말이다. 

이보디보는 뉴스메이커가 되었다. 날이면 날마다 놀라운 사실들을 밝혀낸다. 까만 콩을 닮은 쥐 눈과 초파리의 눈 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포유류의 눈은 카메라 눈이고 초파리의 눈은 겹눈이다. 그런데 쥐의 눈 유전자를 초파리 눈에 갖다 놓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보자. 

각각의 배아에서 눈의 발생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제거하고서 쥐의 배아에는 초파리의 유전자(Eyeless)를 이식시키고, 초파리의 배아에는 쥐의 유전자(Pax-6)를 이식하고 기다려보자. 놀랍게도 생쥐 배아에서는 생쥐의 눈이, 초파리 배아에서는 초파리 눈이 발생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호메오 박스의 역할의 중요성이다. 진화에서 단백질의 구조를 결정하는 구조 유전자보다는 스위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쥐의 눈 자리에 초파리 눈의 유전자가 들어와도 호메오 박스가 '아냐 아냐. 그거 아니야. 넌 쥐의 눈을 만들어' 라는 지령을 내리면 그대로 쥐의 눈이 발생한다. 

 


척추동물의 스위치 역할은 혹스 유전자라고 부른다. 목뼈 숫자를 비롯해 각 기관을 만드는 유전자들은 모두 같은 유전자 서열을 갖고 있되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생이 이루어진다. 팔이든 날개든 앞발이든 모두 같은 유전자 박스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며 발생 여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차이가 발생한다. 하마터면 초파리 다리가 나올 뻔했고, 하마터면 두 팔 대신 천사 날개가  될 뻔했고, 곤충들처럼 겹눈이 되어서 환상적인 색감을 경험할 수 있을 뻔했다. 혹스 유전자 덕분에 우리는 제대로 된 인간의 표현형을 드러내고 있으니 참 감사할 일이다. 

위안이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정우성이든 송혜교든 그들의 표현형을 드러내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은 우리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그 스위치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질서정연, 일목요연한 외모가 되느냐 자유방임주의나 무정부상태의 정치체제스러운 외모가 되느냐가 결정된다. 단백질의 구조도 중요하지만 혹스 유전자의 스위칭에 따라 우린 같으면서도 다른 고유한 우리의 아우라를 가진다. 

앞으로도 계속 이보디보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생명의 신비는 흥미진진 그 자체인데 그것의 시초에 초파리가 있었다니 고맙다만 눈앞에서 윙윙거리는 저 초파리는 박멸의 대상이다. 흠... 트랩을 어떻게 놓아야 하나. 살충제를 살포해? 그래서 얼떨결에 의도치 않게 나도 같이 흡입하고 혼절을 해버려? 

 


 

글 | 백우인

감신대 종교철학과 박사 수료. 새물결플러스 <한달한권> 튜터. 신학 공부하면서 과학 에세이와 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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