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설(creationism) 논쟁을 넘어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으로

 

창조설(creationism) 논쟁을 넘어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으로

 

김정형 (장로회신학대학교)

 

 

한국교회의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은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을 창조설(creationism)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창조 세계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주장으로서 창조설은 창조자 하나님에 관한 교리로서 창조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상이다. 영어의 ‘creationism’을 ‘창조론’으로 번역하면서 오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creationism’을 ‘창조론’ 대신 ‘창조설’로 번역할 것을 제안한다. ‘창조론’이란 용어는 창조자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가리키는 말로서 이미 아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는 한국교회의 창조 신앙이 다양한 창조설 사이의 논쟁을 넘어 성서와 기독교 전통의 창조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창조설은 창조자 하나님의 성품이나 계획보다 창조 세계의 기원과 역사와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창조 신앙을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독교 사상사 속에는 다음과 같이 다양한 창조설이 존재했다.

 

• 평평한 지구 창조설 (flat earth creationism)

  • 지구 중심 창조설 (geocentric creationism)

    • 젊은 지구 창조설 (young-earth creationism)

      • 간극 창조설 (gap creationism)

        • 날-시대 창조설 (day-age creationism)

          • 점진적 창조설 (progressive creationism)

            • 진화적 창조설 (evolutionary creationism)

 

이 스펙트럼에서 위로 갈수록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에 더 충실하고, 아래로 갈수록 현대 과학 이론에 더 수용적이다. 한편 이 스펙트럼 상의 다양한 창조설 입장은 모두 창조자 하나님을 전제하고 있지만, 창조론의 핵심 내용에 해당하는 창조자 하나님의 성품이나 계획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창조 세계의 기원과 역사와 모습에 관해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말하자면, 다양한 창조설 사이의 논쟁은 성서와 기독교 전통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창조론의 핵심 진리를 비껴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창조설 논쟁을 넘어서 성서와 기독교 전통의 창조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창조 세계의 기원과 역사와 모습에 관한 한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모든 그리스도인은 ‘전능하신 아버지, 유일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과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자’(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 대한 보편교회의 신앙고백에 동참하고 있다.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이 신앙고백은 세상과 인간의 궁극적 기원이 하나님에게 있을 뿐 아니라, 세상과 인간의 궁극적 운명 역시 하나님에게 달려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온 세상의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다. 이것이 참된 의미에서 기독교 창조 신앙의 핵심 진리이며, 신학적 의미에서 참된 창조론의 중심 내용이다.

 

창조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궁극적 기원이 되시며 궁극적 운명이 되신다는 우리의 신앙고백은 우주와 인간의 시간적 기원을 추적하는 역사적 · 과학적 연구와 상당히 다른 차원에 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다.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과 땅에서 펼쳐지는 우주와 생명의 역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서로 차원이 다른 두 영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점에서 나는 다니엘 밀리오리(Daniel L. Migliore)의 다음 진술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기간과 단계와 과정에 대해 우리의 과거의 가정이 아무리 광범위하게 수정된다 하더라도, 이것은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우리 신앙의 중심적 주장에는 본질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