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은 이신론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 음.. 제 생각에 너무 멀리가신 것 같습니다만..
    창조과학회에서도 해가 멈춘 것 뒤로간 것, 바다가 잠잠케된것, 홍해가 갈라진 것,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자연에 변화에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을 알고 계실겁니다(참고로 저는 창조과학회와 관계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만드시고 운영하시는 것은 크리스천이면 누구나 알고 믿고있는 내용일겁니다 ^^; 이런 전지전능하신 분이 우리를 한 점으로 창조 하실 수도 있으셨다면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도 창조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창조고학회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혹 하는 마음이 들엇지만 이내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구요 하나님을 과학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1리터 비이커로 바닷물을 측정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다고 생각했거든요 ^^& 1리터의 비이커는 과학입니다 그 비이커로 하나님을... ㅎㅎ
    왜 창조과학회를 비판적으로 생각하시는지... 물론 창조과학회가 비과학적인 부분으로 이야기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세상사람들이 보면 같은편끼리 열심히 싸우는 것처럼 보일까봐 조심스럽습니다...ㅠㅠ 하나님이 주신 비이커로 열심히 바닷울을 해이면서 하나님의 광대하심, 위대하심, 전지전능하심을 느끼는 것은 정말 기쁜일이지만 그 비이커로 너네가 맞는이 내가 맞는니 하는 것은 좀.....^^;
    짧은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

    여호수아유석 2019.10.29 09:25
  • 궤변그만하세요
    하나님은 지금도 창조의역사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당신이 신적개입의 영역을 남겨두는 겸손해보이는 논리를 펴도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하는데에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그 당시 결정론적 세계관이 무슨 여지없는 교만한 사상처럼 비유하시는데 잘못알고 계신겁니다 뉴턴시대 결정론적 사고관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찬양하는 세계관입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이해가 안되시죠? 참 어디서부터 말해줘야할지... 설명해주기도 어렵네요
    당신은 상당히 유신론적 합리적과학을 얘기하고 있는것 같지만 뼛속까지 유물론자 느낌나네요
    이말이 과하고 기분상하시면 진짜 지금부터라도 각성하고 겸손하게 제대로 공부해보세요
    창조의 영역을 남겨두며 은근슬쩍 하나님을 찬양하는듯한 그런태도는 칸트의 자연신론보다도 멋있어보이지 않네요
    당신이 무슨말을 하고있는지... 좀 아시려면
    포스트모던에 대해서 더 공부하세요

    배성목 2020.01.15 00:58

 

창조과학은 이신론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글_임택규

 

제가 현재 근무하는 직장은 전력회사입니다. 캘리포니아에는 3개의 전력회사가 있는데, 제가 일하는 회사는 캘리포니아 중부에서 남부에 이르는 130,000 평방킬로미터의 광할한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토의 넓이가 100,210 평방킬로미터이니까, 대한민국 국토보다 약간 더 넓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캘리포니아주에 2개의 원자력 발전소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샌디에고라는 도시의 바로 북쪽인 샌 오노프레라는 곳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는 몇 년 전에 폐쇄를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가동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단 하나의 원전인 디아블로 캐년 발전소는 주정부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원전 가동 허가가 만료되는 2025년까지 완전히 폐쇄될 예정입니다.

 

강화된 환경규제에 맞춰서 태평양 해안가에 있는 많은 화력발전소들도 차례로 폐쇄되고 있고 그로 인한 전력 생산의 감소는 풍력이나 태양에너지같은 무공해 재생에너지를 통한 발전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로 개발되는 태양력 발전소에 송전시설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의 경계에 있는 모하비 사막은120,000 평방킬로미터를 넘어서는 광활한 면적에, 여름 최고 기온이 섭씨 54도에 달하며, 연간강수량은 250 밀리미터 미만입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이 약 1,250 밀리미터 정도이므로, 이렇듯 건조한 기후와 엄청난 일조량을 가지고 있는 모하비 사막은 정말 태양력 발전에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태양력 발전소가 잘 찍혀 있습니다. 

 

 

사진 윗쪽 부분에 번쩍번쩍 빛나고 있는 세 군데의 발전소는 태양광 발전소로 오해하기 쉽지만 태양열을 사용하는 발전소입니다. 거울이 반사시킨 태양빛을 집광타워에서 모아서 그 열로 물을 끓여서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합니다. 사진 아랫 부분 중앙에 크게 보이는 발전소는 햇빛을 잘 흡수하는 검은색을 띄기 때문에 태양열 발전소로 오해하기 쉬우나 저런 형태의 검은색 패널을 가진 발전소가 태양광을 이용하는 발전소입니다. 태양에서 복사된 빛 입자가 패널 표면에 닿으면 그 에너지를 흡수한 전자가 방출되는 현상을 이용해서 전력을 생산하는 형식입니다.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발표한 광전현상을 이용한 발전 형태입니다. 

  

이러한 발전소들은 당연히 송전시설을 필요로 합니다. 수십 마일 때로는 수백 마일에 달하는 송전시설 및 변전시설들 없으면 당연히 생산한 전력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수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어쨌든지 이러한 발전소, 송전시설, 혹은 변전시설이 완공이 되면 그때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떠한 시설물(Asset)이 완공된다는 것은 그 시점부터 그 시설물은 공학적인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경제학적으로는 그 시점부터 재화를 창줄할 수 있다는 점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어떤 시설물의 건설을 완성한다는 것, 프로젝트의 목적을 달성을 달성한다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준공과 더불어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부정적인 현상도 있습니다. 바로 감가상각(Depreciation)이 시작된다는 것 입니다. 완공된 시설물들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점 노후가 진행되고 잔존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보관하고 보수하며, 때로는 시설물의 이 부분 저 부분을 신품으로 교체해주지 않는다면 곧 그 시설물은 기능을 제대로 발현할 수가 없게 되버립니다.

 

 

근대과학이 태동하면서 이신론(Deism)적인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신론적 신관은 과학적 결정론에 힘입어서 태동했습니다. 인류가 자연이 운행되는 법칙을 전부 파악할 수 있다면 인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결정론이 발생했던 것 입니다. 이러한 결정론 속에서는 하나님의 능동적인 개입을 통해 이루어지는 역사는 더 이상 요청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기적들은 우리의 정확한 계산을 틀리게 하는 귀찮은 변수에 불과하게 된 것이지요. 

 

자연을 기계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기계의 구동원리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 기계가 미래의 어떤 시점에 어떻게 작동할 지를 충분히 계산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그 기계가 우리 계산과 다르게 작동을 한다면 그러한 오작동은 자칫하면 대형 사고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때 설치하셨던 이 법적인 질서에 의해서 정교하게 작동하는 자연이라는 기계가 갑자기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은 우리의 정확한 계산에 의한 예측을 빗나가게해서 끔찍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오작동의 변수일 뿐입니다. 이러듯 이신론적인 세계관 속에서는 하나님의 기적 혹은 능동적인 개입마저도 거부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신론은 근대적 의미에서 무신론의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결국 이러한 이신론이 현대의 과학적 무신론으로까지 연결되어 있지요. 이러한 이신론 혹은 무신론적 세계관은 현장에서 구조물을 축조하고 그것을 통해서 편익과 재화를 창출하는 회사에 근무하는 엔지니어인 저에게는 굉장히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준공된 후에도 적절한 관리를 통해서만 시설물의 가치와 성능이 유지된다는 점을 매일매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창조과학회에서 진화론이 이신론적이라고 공격하기도 합니다. 저에겐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지요. 진화론은 물론 과학이론에 불과하지만 저는 그 속에 무한한 신적 개입(Divine Intervention)의 여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속에 개입하시고 피조물들을 보살피시며 사랑으로 다스리셔서 풍성케 하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섭리를 우리가 통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6천여년 전, 6일 창조 이후에 자연계에 아무런 개입이 없으셔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제겐 이신론적으로 느껴집니다. 만약 창조 이후 하나님께서 자신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이 자연에 아무런 개입이 없으셨다면 이 자연은 과연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네 진입로를 재포장하고, 골목길에 설치된 가로등을 재정비하는 구청 토목과 직원들의 모습을 통해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