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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콜로퀴움

바울의 아담 해석, 어떻게 해야 할까?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9. 11. 12.

 

제17회 과신대 콜로퀴움 "바울의 아담 해석"을 듣고

 

요약정리: 최경환

 

 

'바울의 아담 해석'이라는 주제는 신약학, 그중에서도 바울신학에서는 그리 주목을 받은 주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주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고, 권연경 교수님 역시 이 주제를 피해 갈 수 없었다고 하네요. 1시간이 넘게 열강을 해주신 권연경 교수님의 강연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보겠습니다. 

 

지금 이 주제가 다시 부각되는 이유는 오늘날 과학에서 말하는 인류의 기원과 아담의 역사성 문제가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바울이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해서 언급한 부분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고, 만약 아담의 역사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신자의 구원도 흔들리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최종적 보루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아담 해석'이라는 주제는 신약학, 그중에서도 바울신학에서는 그리 주목을 받은 주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주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고, 권연경 교수님 역시 이 주제를 피해 갈 수 없었다고 하네요. 1시간이 넘게 열강을 해주신 권연경 교수님의 강연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보겠습니다. 

 

 

지금 이 주제가 다시 부각되는 이유는 오늘날 과학에서 말하는 인류의 기원과 아담의 역사성 문제가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바울이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해서 언급한 부분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고, 만약 아담의 역사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신자의 구원도 흔들리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최종적 보루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죄와 죽음의 기원이 허구라면, 이를 해결하는 그리스도의 복음 역시 허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설명이 진실이라면 오늘날 진화론적인 설명은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과학의 설명이 맞든지 아니면 바울의 설명이 맞든지.

 

이 두 설명 체계의 통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울의 아담 해석은 유연하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역사적 아담을 포기해도 바울의 그리스도 복음은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바울의 아담 해석을 그 당시의 문화적 한계이자 시대적 한계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아담의 실존 여부와 상관없이 죄와 죽음의 실존을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피터 엔즈는 <아담의 진화>(CLC, 2014)에서 바울의 복음은 역사적 아담 없이도 가능한지를 탐구합니다. 결국 논의의 쟁점은 바울의 설명을 부분적으로라도 부정하는 성경 해석이 타당한가로 좁혀집니다. 바울이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끌어온 아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역시 늘 논의되는 이야기로 어디까지가 성경의 권위이고 어디까지가 문화적 상대성이냐는 물음과도 연관됩니다. 

 

권연경 교수님은 바울이 아담을 언급하지 않고서 죄와 죽음을 언급하는 본문들을 살펴보면서, 아담과 죽음이 반드시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의 경우, 죄는 율법과 연결되고, 로마서 1장이나 에베소서 2장의 경우도 죄와 죄책을 언급하는 본문에서 아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말하기 위해 아담이 반드시 동원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대속적인 설명 부분에서도 성경에서 그것을 아담의 죄와 연결하는 부분은 없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본문으로는 고전 11:1-16과 딤전 2:12-15이 있는데, 두 본문 모두 바울은 창세기를 독창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자기만의 주장을 펼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성과 여성의 차별에 대한 바울의 주장을 그저 오늘날에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말로 무시합니다. 이 두 본문은 바울의 명시적 권고였는대도 말이죠. 그렇다면 바울이 아담을 언급한 부분은 복음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일까요? 아니면 문화적 산물일까요? 

 

바울의 아담 해석은 고전 15장과 롬 5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고전 15장에서는 아담의 몸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대조하면서 이야기합니다. 첫 사람 아담의 몸과 둘째 사람 그리스도의 몸이 대조를 이루면서 그려집니다. 롬 5장에서는 "한 사람"의 비극적인 행위가 어떻게 "모든 사람"의 죽음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담의 행위와 죄와 죽음의 관계가 구체적인 인과관계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과 "모든 사람"이라는 대조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개인의 행위가 전 세계적인 파장을 가져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국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력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권연경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1. 바울은 역사적 아담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했다.

2. 바울은 다양한 목적으로 아담(하와)을 언급한다.

3. 바울은 아담과 죄와 죽음을, 혹은 아담과 죽음을 연결하고, 그리스도께서 이 죄와 죽음을 해결하신다고 말한다.

4. 하지만 죽음이 항상 죄의 결과로 제시되는 아니다. 죄 이야기 없이 죽음과 부활이 대조되기도 하고, 죽음이 피조적 존재 자체의 본질인 것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5. 아담/그리스도의 대조는 한 행동의 전 세계적 파장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6. 아담이 죄와 죽음의 원인이지만, 아담이나 모든 사람의 “죄책”이 바울의 관심은 아니다.

7. 바울은 아담이 야기한 죄의 통치와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준 은혜의 통치를 대조한다.

8. 바울의 당면 관심은 이 통치 개념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해명하는 데 있다.

9. 바울에게서 복음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역사적 아담이라는 살점 한 파운드를 잘라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보다 구체적인 탐구와 치밀한 사색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는 바울 외, 다른 신약 저자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방식을 숙고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2부 대담 시간에는 민경구 교수님과 함께 구약과 신약에서 아담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으며, 원죄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민감한 주제여서 그런지 약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정직하고 진솔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풀어가려는 진지한 태도가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성서학과 신학은 철학이나 사회학 혹은 종교학과 같은 인접 인문학과의 대화 혹은 대응을 통해 그 내용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면, 앞으로는 과학이 더욱 중요한 대화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현대 과학은 발전과 도전은 신학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치고, 기존의 교리와 가치에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역사성 논쟁뿐 아니라 인간론, 기독론, 종말론 등 다양한 기독교 교리가 이제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할 운명에 처했습니다. 이 도전이 두려워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직하게 직면하고 어떻게 우리의 전통과 신학을 해석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앞으로 과신대도 성서학자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성서를 새롭게 읽고 해석하는 해석 공동체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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