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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책

미움 받을 용기와 인간이해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9. 3.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와 아들러의 “인간 이해”를 읽고

 

 

모든 것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벗겨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나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재림하시고, 심판하시는 모든 것들이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과학과 신학의 대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우리가 다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조직신학에서의 마지막 연구 분야가 “인간론”이라는 말을 언뜻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론”은 개인적으로 현재 가장 관심이 많이 가는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저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엄청난 의미로 다가오고 있고, 그래서 인간을 본연의 인간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사로서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성서학자인 우찌무라 간조 선생께서 “한 사람을 알려면, 전 인류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했을 때,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너희의 스승은 단 한 분 하나님이다”는 성경 구절을 통해 “인간은 인간을 가르칠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이 교사가 할 일이겠구나”라는 나름대로의 교육(개똥)철학을 갖게 되어, 여전히 무지 가운데 있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 맛보며,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 맛을 공유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과신대에 발을 들인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였습니다. 그동안 과학과 신학의 훌륭한 전문가들로부터 양질의 강의를 들어서 많이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학교 현장에서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과 자주 상담하면서 심리학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 첫 책이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이었고, 두 번째 책이 아들러의 “인간 이해”였습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1956년 교토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부터 철학에 뜻을 두고, 교토대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을 전공하였습니다. 1989년부터는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하면서, 고대 그리스 철학과 아들러 심리학에 관해 왕성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한 학자이며, 현재 일본 아들러 심리학회가 인정한 카운슬러이자 고문입니다. 이 책의 공저자인 고가 후미타케는 20세 말에 아들러 심리학의 상식을 뒤엎는 사상에 큰 충격을 받고, 기시미 이치로 선생을 끈질기게 찾아가 문답식으로 아들러 심리학을 배운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점이 바로 철학자와 청년 간의 치열한 논쟁이었습니다. 그런 논쟁을 읽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의 각 현안별로 이런 대화 문화가 꽃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 이해”의 저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1870년 2월 오스트리아 빈 근교에서 태어나 1937년에 작고한 빈 정신분석학의 거장입니다.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어 알려진 프로이트, 그리고, 칼 융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위의 “미움받을 용기”가 출간된 2014년부터 일반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학자입니다. 저는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대해서는 주워들은 것만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프로이트, 융, 아들러를 비교해서 연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만, 아들러의 심리학이 가장 인간적이고 제게 큰 도움이 된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아들러가 학교 교육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22개의 아동 병원을 운영하면서 아동 교육과 치료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아들러가 겸손과 실천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이론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직접 그런 상황을 겪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러는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형이 매우 명민했던 반면, 자신은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허약 체질이었고, 밑의 남동생이 어려서 죽는 것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안팎의 고통을 잘 이겨낸 아들러가 인간 이해의 최고 적임자는 “참회하는 죄인”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이와 같은 철저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라는 말이 있어서, 개인적인 느낌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보다, 이 두 권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문장들을 아래와 같이 초서하여 보았습니다. 괄호는 쪽수입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키워드

 

  • 프로이트의 트라우마를 부정하는 아들러의 목적론(37)

  • 현재의 불행한 상태는 자신의 선택의 결과이다(54-57)

  • 용기의 심리학: 자유를 선택하여 미움받을 용기, 변화하겠다는 용기(63)

  •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105-106)

  • 나는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권력투쟁에 발을 들이게 된다(120-123)

  • 아들러 개인심리학의 행동 목표: 자립할 것, 사회와 조화를 이룰 것(126)

  • 아들러 개인심리학의 심리적 목표: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 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126)

  • 과제 분리,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163)

  •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177)

  • 인정받기를 바라지 말라(177)

  • 자유란 미움을 받는 것이다(186-187)

  • 공동체 의식/감각을 가져라(217-218)

  • 인간관계는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이다. 남을 칭찬하려고도, 남에게 칭찬받으려고도 하지 말라(227-228)

  •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가라(251)

  • 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여 자기를 수용하라(261)

  • 인간의 최대 불행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287)

  • 인생은 선이 아니라 점의 연속이다.(300-301)

  •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319)

 

아들러의 “인간 이해” 키워드

 

  • 인간 이해의 근본적 문제들은 지나친 교만과 자만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안 된다. 그와 반대로 진정한 인간 이해는 겸손하게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15)

  • 인간에게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인지도 모른다.(25)

  • 열악한 오늘날의 교육 현실에서 진정한 인간 이해는 오직 “참회하는 죄인”에게만 가능하다.(26-28)

  • 생명이 없는 자연의 움직임과 인간의 정신활동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여기에 인간의 자유 의지를 둘러싼 쟁점이 등장한다. ‘인간 공동생활의 논리’라든가 ‘절대적 진리’라는 우리의 개념은 부분적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개념들과 일치한다.(42-43)

  • (인간은 물질적 존재 상태를 부정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우리의 공동체 의식은 가족을 넘어 그의 동료, 민족, 인류, 동물이나 식물, 생명이 없는 존재들, 온 우주에 이르기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62)

  • 리가 마치 다른 사람인 듯 행동하고 느끼는 이 능력의 원천은 우리에게 내재된 공동체 의식의 존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우주적 감정이며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전 우주와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피할 수 없는 특성이다.(83)

  • 누군가에게 최대한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그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된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권위주의에 대한 철저한 배격)(85)

  • 태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주의력 결핍이나 관심 부족 상황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주의력 결핍은 동료 인간에 대한 관심 부족이 원인이다.(126)

  • 우리는 오로지 경험적 사실에 의한 확증된 길을 걸을 뿐이며 우리가 꿈을 통해 발견한 사실들이 다른 관찰 결과에서도 입증되고 확인될 때만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140)

  • 여성의 열등함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181)

  • 모든 행동과 표현 양식은 공통의 한 점을 향해 모아진 것이며, 그가 어느 지점에서 움직이든 간에 그의 목표를 알게 되면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인식할 수 있다.(203)

  • 인간의 성격은 우리에게 있어서 도덕적인 판단 근거가 될 수 없고, 그 사람이 자신의 주위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또 어떤 연관성 속에 처해 있는가 하는 사회적 인식의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232)

  • 삶의 기쁨이란 삶의 진정한 조건을 긍정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254)

  • 이렇게 해서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인류가 이미 섬뜩하리만큼 확실하게 예감했던 관점에 다다르게 된다. 그것은 성경책에도 나와 있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도다”라는 구절이다.(256)

  • 단지 자신의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종교적 욕구의 만족을 그릇된 방법으로 추구하는 현상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신과 닮으려는 노력의 흔적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263)

  •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면 누구나 동등하다는 법칙(Gesetz der Gleichheit alles dessen, was Menschenantlitz tragt)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274)

  • 개개인을 공동체와 연결시켜 주는 연대감을 통해서만 사람들의 불안은 제거될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음을 의식하는 사람만이 불안 없이 생을 통과해 갈 수 있다.(291)

  • 인간 이해를 위한 세 가지 삶의 과제: 사회적 과제(나와 너의 관계의 문제), 직업의 문제, 사랑과 결혼의 문제. 한 사람이 이 세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방법과 그가 저지르는 과오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로부터 우리는 그의 개성, 인격, 삶의 방식에 관한 결론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우리의 인간 이해에 대한 자료를 얻고 활용하게 될 것이다.(294)

  •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타인과 완전히 똑같이, 평등하게 느끼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관점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진보를 의미하며 그것은 우리를 도와 심각한 오류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다.(320)

  • 권위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인가...... 그 밖에도 저절로 인정받을 수 있는 권위가 아니라면 권위는 강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는 모든 아이가 자신의 정신적 발달 단계에서 만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학교는 아이들에게 유리한 정신적 발달의 요구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어떤 학교를 좋은 학교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학교는 정신기관의 발달 조건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 학교만이 비로소 “사회적 학교”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356)

  • 이렇게 유아기 때부터 시작된 열등감은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우월감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것들은 사소한 형태로는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형제들 간의 경쟁이나 학교에서 벌어지는 점수 경쟁으로 나타나지만, 범위를 넓혀 보면 인간 삶의 크고 작은 모든 권력관계 속에 나타난다. 심지어 가장 평등해야 할 친구나 연인 관계, 부부 간에도 우위(권력)를 차지하고자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투가 계속되기 때문에 인간은 따뜻한 동지애를 잃어버리고 서로에게 높은 담을 둘러치며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그로부터 연유한 갈등과 고통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그것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그것과 씨름하게 된다.(367, 역자 홍혜경 님의 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두 등불, 공공신학과 개인심리학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에 나오는 키워드들이 다 아들러의 “인간 이해”에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시미 이치로는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 개념들과 철학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여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심리철학을 아주 잘게 부수고 잘 소화시켜서, 세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독자의 입술에 조금씩 흘려서 먹이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알고 있는 상식에 반대되는 충격적인 주장들이 있어서 가끔 싸리에 걸리기도 했었지만, 저의 경우는 잘 삼켜서 정신발달에 큰 영양분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러의 심리철학을 이 책을 통해서 쭉 들으면서, 저는 이상하게 이분이 성경 강해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항상 받았습니다. 아들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네 가지 키워드는 공동체 의식, 열등감, 우월(인정)욕구, 허영심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공동체 의식은 우주적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어서, 마침 공부하고 있던 삐에르 떼야르 드 샤르댕(1881~1955)과 아는 사이였나 라고 반문했을 정도였습니다.

 

포스트 코로나는 이전과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바일 것입니다. 때마침 공공신학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공신학과 함께 인류 사회에 큰 등불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것이 제 소견이자 바람입니다. 인간이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수 있는 존재가 된 인류세에 우리가 우주적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인간과 우주를 잘 보전하고 가꾸어 나가면 참 좋겠습니다. 아들러가 강조한 “참회하는 죄인”으로서, 우리 마음속의 열등감이라는 지옥의 불꽃을 잘 제어하고, 허영심이라는 악덕의 바람을 최대한 빼고, 삶과의 현실적인 연대감을 회복하여서, 진실로 “남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고, 남들에게 주는 것이 남들로부터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는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 매일매일의 삶의 원리가 되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어 봅니다. 

 

 

글_ 최성일 기자 (ultracha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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