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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의 눈으로 본 기독교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12. 2.

 

생물학자의 눈으로 본 기독교

김영웅 과학자의 신앙공부 | 선율 | 2020

 

글_ 정훈재 (과신대 정회원)

 

 

페친 김영웅 박사님의 <과학자의 신앙공부>를 이제야 완독했습니다. 에세이라 생각하고 금세 읽을 듯 했는데, 읽어나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짐작했던 것보다 더 깊이 생각하며 읽어야 했네요. 처음엔 목차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이런 주제로 챕터를 구성했다니. 이를테면 이런 제목들입니다.

 

수정, 줄기세포, 철분, 근육, 인슐린, 바이러스 한센병, 알츠하이머, 소시오패스, 미세환경, 암세포, 분화, 사멸, 면역, 자가면역, 면역결핍, 알레르기, 통풍 등등

 

크리스천 과학인, 공학인이라면 연구를 하다가 이런 비슷한 상념에 빠져본 경험이 많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현상은 내가 사는 인간 사회의 이런 모습하고 닮았네', 또는 '이런 현상은 얼마 전에 묵상한 말씀 내용을 생각나게 하네.' 오래전에 다녔던 교회 청년부에서 매월 나오던 월간지에 열역학에서는 흔한 개념인 Activation Energy를 가지고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문과 쪽이었던 한 친구가 '재미있는 글이었다'고 감탄하면서 얘기했기에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상념들을 이렇게 깊이 확장시켜 보지 못했고, 이렇게 다양한 주제하고 연결시켜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다양한 현상들을 신앙과 삶의 여러 이슈들로 절묘하게 연결합니다. 바이러스의 '전달'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단순한 '전달'이 가지는 잠재적 한계를 짚어내고, 지식적인 '전달'이 아닌 '형성'이어야 한다는 지점까지 사고를 확장합니다. 미성숙한 세포에서 성숙한 세포를 낳는 세포 분화의 신비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나'가 아닌 '남'을 향한 삶이라는 것을 그려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이 책의 전반부인 1부 '생물학과 신앙공부'와 2부 '생물학과 교회 공부'에서 나오는 주제입니다.

 

이 책의 3부는 조금 더 논쟁적인 주제인 '과학과 신학의 조화'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진화, 유전자 편집, 인류의 기원, 파괴와 창조, 티핑 포인트, 일용할 양식 등의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진화라는 과정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포함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진화라는 방법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실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는 저도 강력히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컨셉을 제 전공인 재료 공학에도 비슷하게 적용하자면, '양자역학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을 통해서 현대의 반도체 산업이 기반이 만들어졌고, 얼마나 많은 유익을 우리가 누리고 있습니까. 태초에 하나님께서 심어 놓으신 그러한 창조질서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유전자 편집'에 대한 장은 조용히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유전자가위 CRISP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상당히 쉽게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는 불치병인 유전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의 길을 열어줄 수도 있지만, 다른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간에게 이성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자고 말합니다. 결국 합리적인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저도 동의하는 바는,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에서 결국 오늘날 지난 어떤 세기보다 인간의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로 이끌어 오셨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100년 전에 비해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보면, 낙관적일 수 있는 이유는 많다고 봅니다.

 

3부의 남은 장인 '파괴와 창조', '티핑 포인트', '일용할 양식'에서의 인사이트들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결론과도 같은 문장을 향해 흘러갑니다. 여러 주제들을 하나하나 거치고서 도달한 결론은 저자가 지켜나가고 싶은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저자는 '일용할 양식의 비밀을 은혜로 알게 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저 오늘도 묵묵히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고 싶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겸허한 삶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4부 '좋은 아빠'와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간략히 풀어내면서 하나님 안에서 용기를 내서 정직했을 때,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는지를 담담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많이 아팠던, 지금은 건강한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피부로 체험했다고 합니다.

 

 

에필로그는 솔직히 불만이었습니다. 보통 에필로그는 정리하고 요약하면서 짧게 끝내야 하는데, 이건 뭐 완전히 새로운 챕터였습니다. 다 도착한 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알고 보니 아직도 많이 남은 것을 알게 된 마라토너가 그런 느낌일까요. 저자의 직업적 삶에 대한 얘기였는데, 완전히 하나의 독립된 챕터로 승격되었어야 할 귀한 내용인데, 에필로그에 조용히 숨겨 놓았네요. 심지어 다른 챕터보다 더 길어요. ㄷㄷㄷ OTL

 

에필로그의 내용은 뭔가 제 과거의 직업적 삶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깊이 몰입하면서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특히 잘못된 결과를 고수하던 지도교수와 결국 그 문제를 같이 직면해야 했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저자가 고백하는 '성공 지향의 가치관은 자기기만이며 우상숭배며, 가면을 쓴 야누스'라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내용은 지금 섬기는 교회에서 참여 중인 일터 신앙 사역하고도 연결이 되는지라 개인적으로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직업적 삶의 터닝포인트라 여겨지는 지점에서 눈 앞에 다가온 '성공'의 이미지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을 지켜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과학이라는 분야에서도, 그 양심을 지키는 길이 '성공'의 길과 멀어지는 것으로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의식의 차원에서 뿐 아니라, 무의식의 차원에서까지도 양심을 지켜야 온전한 실험 데이터를 확보하고 해석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로서 아빠로서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과학의 현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사유하고 삶으로 녹여내는 저자의 모습에서, 치열하게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가끔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더없이 든든한 동역자의 모습을 봅니다.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주변의 크리스천 과학자, 공학자에게 추천합니다.

 

(주의사항: 생물학적 지식이 부족해도 어렵지 않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가 에필로그가 아닙니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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