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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진리를 알아가는 재미: <창조론자들>을 읽고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11. 5.

 

로널드 L. 넘버스 | 창조론자들 | 신준호 옮김

새물결플러스 | 2016. 5. 25 | 940쪽 | 50,000원

 

 

과신대 추천도서를 순서대로 읽고 서평을 한다는 기획을 처음 생각했을 때, 맨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는 <창조론자들>이라는 책을 내가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한편으로 이 책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길래 이렇게 두꺼운가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책들처럼 창조과학을 비판하거나 진화적 창조를 옹호하는 단순한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단순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로널드 L. 넘버스는 이 책을 위한 자료조사를 몇 년이나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자료조차 모으려 애를 썼다는 것이 책의 전반을 통해 드러난다. 책은 총 18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장마다 마지막에 친절하게도 요약과 복습을 위한 장이 들어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정통역사서가 아닌 야사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이 책은 창조론자들의 역사를 속속들이 파헤고 있다. 저자는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유쾌하나 신랄한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 내게 지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창조론자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이 ‘사이비 과학자’라는 것과 그 세력이 매우 크다는 것 정도였다. 최근에는 ‘홍수지질학’이라는 것이 소위 창조과학자들의 논리를 뒷받침해준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본 결과, 놀랍게도 ‘홍수지질학’은 창조과학의 거의 모든 것 같다. 그런 반면 이 큰 세력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홍수지질학자인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의 의견이 창조론자들에게조차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웠다.

 

나는 과학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고, 학교 다닐 때 받은 과학수업도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런데 창조론자들의 역사를 따라가보면, 미국에서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학교에서 같이 가르치느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 계속 있어왔고,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꽤 중요한 사안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과학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고 해서 그것이 지역 정치 문제로까지 발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창조론자들은 그 세력을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북미, 아프리카 그리고 한국에까지 확장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창조론자들에 대해 아주 일부만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신앙의 세계가 무척 좁은 곳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과학자, 신학자들이 단순히 ‘나만 옳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어떤 사유를 통해 결론에 다다르며, 때로는 힘겹게 도달한 결론에서 반대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을 보았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진리를 계속 탐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책을 읽어오면서 ‘창조과학은 무조건 틀렸어.’, ‘날-시대 이론은 구식이야.’, ‘점진적 창조가 맞는 건 아닐까?’ 하면서 뭔가 하나의 결론을 내리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진리에는 계속 물음표가 붙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했던 ‘창조론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이 책을 읽으며 거부감이 들기보다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을 집필한 작가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나도 모르게 흑백논리로 몰고 가던 생각이 조금은 바뀌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한다.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진리이며, 그 진리가 무얼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인생의 모든 것은 선하거나 악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내용은 분명히 내 기준에서 ‘악하다’ 편에 속한 것들에 대한 것인데, 속사정을 알고 나니 선하거나 악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재미가 있다. 이것은 진리를 알아가는 재미이며, 견문이 넓어지는 것에 대한 재미인 것 같다.

 

비록 많이 두껍기는 하지만 이 책을 나와 같은 주부나 청소년, 또 진리에 관한 궁금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분명 나와 같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이혜련 과신대 기자 (1221hann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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