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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자문위원 칼럼] 생물다양성과 6번째 대멸종, 그리고 책임윤리 (2)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2. 8.

 

생물다양성과 6번째 대멸종, 그리고 책임윤리 (2)

 

오세조 목사 (팔복루터교회, 과신대 자문위원)

 

 

쓰레기 문제

 

‘크리스 조던’이라는 사진가가 태평양의 미드웨이 섬을 촬영하다가 발견한 사실은 이런 예상을 지지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크리스 조던은 미드웨이 섬을 방문해서 생태사진을 촬영하다가 자신이 직접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바로 하늘을 나는 새 중에서 가장 큰 새로 알려진 앨버트로스의 어미 새가 새끼들에게 주는 먹이 가운데 플라스틱 쓰레기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버린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어미 앨버트로스가 먹이로 착각해서 이것을 물어다 새끼에게 먹이로 주는 것이다. 결국 어미 새로부터 플라스틱 쓰레기를 받아먹은 새끼는 자신의 배속에 있는 플라스틱의 무게 때문에 날지도 못하고, 마침내는 플라스틱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우리가 크리스 조던의 사진을 보면 미드웨이 섬에는 어미 새이든 새끼이든 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죽은 사체들이 여기저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별히 시체는 썩지만 몸 내부에 있는 플라스틱은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한 생물종이 고통을 당하고 또 죽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전 지구적인 환경오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그 해결책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앞서 생물다양성 감소를 막기 위해 국가 간의 협약이 있는데 그것은 국가 정책상의 해결책이고 한 개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책임윤리

 

한스 요나스(Hans Jonas)라는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가 있다. 그는 우리에게 ‘책임윤리’를 제시한다. 한스 요나스 이전에는 책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념윤리’였다. 이를 잠시 설명하면, 현재 어떤 일이 좋지 않는 일이 발생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런 좋지 않은 일이 발생된 배경에는 이 일을 시작한 과거의 행동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주로 ‘지금과 여기’에 집중된 윤리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과거의 윤리는 인간의 영역에서만 주로 판단되는 윤리였다. 요나스는 이런 인간중심적이며 과거지향적인 윤리를 이제는  미래와 자연의 영역까지 확장하여 인간의 책임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에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이 현재의 행동이 미래세대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을 해서 만일 미래세대에 좋지 않은 결과가 예측된다면 그 책임을 현재에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미래에 대한 책임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책임의 범위를 인간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환경과 생태의 영역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잘못된 판단으로 버튼 하나만 누르면 핵무기로 인간사회를 쉽게 파괴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간다. 또한 이 지구상에 세워진 수많은 핵발전소가 잘못되면 엄청난 재해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 사회를 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울리히 벡’이라는 철학자가 주목하고 현대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명명했다.

 

16세기 과학혁명을 시작으로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제 하에 인간은 현대 과학기술의 무한한 진보가 마치 인류의 행복과 황금빛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꿈을 소망하고 과학기술을 발달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대해 개인은 오히려 대중 속에 또 익명성 속에 숨으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대과학기술의 속도를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윤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즉 현대 과학과 기술과 윤리 사이에 큰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 공백에 대해 한스 요나스는 자신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에 한 개인의 책임을 물으며 타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른 생태계 내에 다른 생명체와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연대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다.

 

정리하면 전통적인 책임개념인 과거지향적 책임 또는 인과적 책임에 그치지 않고 미래지향적이며 당위적 책임까지 책임의 범위를 확장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도 함께 묻고 있는 것이다.

 

요나스의 이러한 ‘책임윤리’는 현대 과학과 기술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과학과 기술 그 자체에서 찾지 않고 ‘윤리’의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는 방향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제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엄청난 힘을 과학으로부터 부여받았고 경제를 통해 끊임없이 충동을 받아 마침내 사슬로부터 풀려난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과학과 기술의 힘이 오히려 인간에게 불행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자발적인 통제를 통해 자신의 엄청난 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윤리를 요나스는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한스 요나스의 책임윤리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점을 시사해 준다. 하지만 그 한계점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한스 요나스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한 윌리엄 슈바이커(William Schweiker) 교수는 요나스의 책임윤리를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문제로 확장시키면서 ‘통전적 책임윤리’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쉽게 설명 드리면, 윌리엄 슈바이커 교수는 한스 요나스의 책임윤리에 ‘하나님 앞에서의 삶의 통전성’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 있어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생태신학

 

우리 기독교 신학 중에는 생태신학이라는 것이 있다. 다른 전통적인 신학보다는 그 역사가 비교적 짧지만, 지금 이 지구상에 발생하고 있는 생태계 파괴 또는 환경 파괴의 주범이 바로 창세기 1:28절의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는 이른바 문화명령때문이라는 기독교 외의 비판에 대해 기독교 신학자들이 응답하기 위한 자기반성으로부터 시작된 신학이다. 더불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구속신앙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에 대해 새롭게 제시되고 있는 창조신앙과 발맞추어 생태신학은 기독교 내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나가는 말

 

‘코로나-19’의 엄청난 대재앙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태신학의 영성과 함께 한스 요나스가 제시하는 책임윤리,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윌리엄 슈바이커 교수가 제시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통전적 책임윤리’를 가지고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바로 기독교라는 오명을 벗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늘 문제시되는 개교회주의, 성장주의, 물량주의에서 한국교회는 이제는 벗어나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대한 ‘청지기적 사명’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완수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핵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전통적인 신학에 머물러 있지 말고 고든 카우프만(Gordon D. Kaufman)이 제시한 ‘핵시대의 신학’ 등 포스트 휴먼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세계관과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장성익, 『환경에도 정의가 필요해』, 서울: 풀빛, 2017.

장윤재, 『포스트휴먼 신학: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서울: 신앙과 지성사, 2017.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기획, 최재천 외 6명, 『생물다양성은 우리의 생명』, 서울: 궁리, 2016.

 

 

글 | 오세조 목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House Research Institute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다가 귀국해서 루터대학교에서 목회자과정을 공부하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평택대학교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에서 박사과정(구약전공)을 수료했으며, 현재 용인에 위치한 팔복루터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루터대학교에서 '신학과 과학', '자연과학의 이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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