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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유전자 편집과 생명윤리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8. 30.

 

유전자 편집과 생명윤리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2018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International Human Genome Editing Summit에서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賀建奎)의 발표는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유전자 편집을 하여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면역력을 가지게 된 유전자 맞춤아기인 루루와 나나가 인공적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는 상당한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달리 치료법이 없는 심각한 질환에 한해 유전자 가위의 인간배아 연구가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으며 배아의 착상은 금지한다’는 세계 과학계의 연구 윤리 합의가 깨졌습니다. 미래 세대에 유전될 수 있는 유전자 편집 즉, 생식세포와 배아 대상 유전자 편집은 해당 기술 적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엄격히 금지돼야 한다는 학계뿐 아니라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약속이 허물어졌습니다.

 

이 허젠쿠이 사태가 미끄러운 경사길이 되어 제2 혹은 제3의 맞춤아기가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는 지금, 생명윤리정책학회지인 『생명, 윤리와 정책』에 게재된 ‘유전자 편집의 윤리’에서 저자 김상득 교수는 유전자 가위 기술 관련 생명윤리 논쟁 지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명윤리학자로서 저자는 의료윤리를 주로 연구했고 국내에서 유전자 윤리 분야를 본격적으로 열었습니다. 또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로 있습니다. 그리고 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나온 그는 대전 하나교회 담임목사로서 교회 사역을 담당하기도 했고 기독의료윤리와 관련하여 여러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존엄사를 통해 죽음을 선택하며 유전자 가위를 통해 탄생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인간이 신 노릇(playing God)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글에서 유전자 가위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과학기술 위험과 윤리적 논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위험과 관련하여 유전자 가위는 안전성과 보안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이 두 문제는 유전자 가위 기술에만 해당되지 않고 대부분 과학기술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환경 정화를 위해 유전자 편집으로 만든 미생물이 도리어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자연계에 유입될 경우 유전자 흐름이 발생하여 유기체 유전자 풀(gene pool)에 이상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험실에서와는 달리 밖에서는 의도와 다르게 닥치는 대로 다른 자연 생명체를 파괴하는 잿빛덩어리문제(grey-goo problem)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안전성 위험과 관련됩니다. 바이오테러리즘이라는 보안 위험도 있습니다. 바이오 테러는 물론이고 정부나 범죄 조직에 의한 생물 전쟁과 경제적 목적을 위한 협박도 이에 포함됩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러한 과학기술 위험뿐 아니라 생명윤리 측면에서도 여러 논쟁을 낳고 있습니다. 저자는 대상, 종류, 성격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유전자 편집 관련 윤리 논쟁의 지형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표 1 참조). 대상은 인간 대상인가 동식물 대상인가에 따른 구분입니다. 그리고 현존하는 유전체를 변형시키는 재설계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재창조로 유전자 편집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격이라는 축은 유전자 편집의 목적입니다. 치료인지 강화인지에 따라 편집 성격이 구분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상, 종류, 성격이라는 축으로 저자는 유전자 편집 관련 윤리적 논쟁점들을 12개 범주로 구분하였고 각각의 범주별로 윤리 논쟁이 제기될 가능성과 다양한 윤리적 접근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동물 및 인간생식세포 관련 유전자 편집, 유전자 성형과 맞춤아기 관련 논쟁을 중점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저자가 제시한 유전자 편집의 윤리 지형도에는 몇 가지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기존에 유전자 편집 관련 윤리적 문제를 해결해가던 공리주의 접근에 대한 경계입니다. 결과 중심인 공리주의 접근은 기술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여러 위험보다 크다면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유전자 편집의 윤리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둘째, 공리주의 접근에 대한 비판은 유전자 편집에 대한 다양한 윤리 접근의 필요성을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 중심 사고와 대척되는 동물권입니다. 동물 대상 실험에서 유전자 가위 활용은 동물이 지닌 도덕적 지위와 권리에 대해 윤리적 질문을 야기하면서 누구를 위한 유전자 편집인지를 묻습니다. 셋째, 비록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이익이 상당할지라도 무시할 수 없는 안전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간생식세포 대상 유전자 치료는 다음 세대에게 나올 수 있는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전병과 유전자와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예견할 수 없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기에 과학적인 안전성 입증이 아직은 어렵습니다.

 

넷째, 인간 강화를 위한 유전자 편집은 윤리적인 문제뿐 아니라 사회정의 문제도 함께 일으킬 수 있습니다. 허젠쿠이 사태가 본격적으로 일으킨 맞춤 아기 문제를 생각해 보면, 안전성 뿐 아니라 다음 세대 동의 문제도 있으며 부모에 의한 아기 유전자 결정의 정당성에 대해 윤리적 물음도 제기됩니다. 그리고 사회정의 역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될 수 있습니다. 계층 간 부의 차이나 차별은 유전자 편집에 대한 접근권에 차이를 낳게 되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전자 불평등이라는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함의로 유전자 편집 관련 윤리적 문제와 사회정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민주적 숙고가 따라야 합니다. 특히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유전자 편집에 대한 접근 기회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하며 유전자 편집의 혜택 또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민주적 숙고 과정을 통해 법을 제정하고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김상득 교수의 글 ‘유전자 편집의 윤리’가 지닌 미덕은 유전자 편집의 윤리 지형도를 제시하여 여러 논쟁을 정리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공리주의 계산이 가리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들추어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윤리적 접근법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 역시 유전자 편집 생명윤리 논의를 심화시킬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윤리 논쟁 범주화를 위해 제시된 종류와 성격이라는 축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치료이고 어디서부터가 강화인지 그 구분이 모호한 바처럼 재설계와 재창조의 구분 역시 그러합니다. 현존하는 유전체에 대한 변형은 재설계이자 동시에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재창조로 이어지는 인공적인 기초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비판한 공리주의 접근은 자유주의적 윤리관을 보입니다. 공리주의 윤리에 따르면, 부모의 선택을 통해 자녀의 병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생식세포 대상 유전자 치료는 도덕적 필수이자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권리와 생식의 자유라는 점에서 맞춤 아기를 위한 유전자 편집은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부모의 선택과 권리를 지지하는 자유주의적 윤리관을 보입니다. 마이클 센델은 『공동체주의와 공공성』 이러한 자유주의적 윤리관이 자칫 자유주의적 우생학으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런데 공리주의 대신 저자가 보여준 여러 윤리 접근 역시 개인의 권리, 특히 소유권과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윤리관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율성 존중의 원칙,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 등이 그러합니다. 자유주의 윤리관은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합리적 판단을 바탕으로 성립하기에 책임 있는 윤리적 입장을 제시해 주지 못합니다. 윤리학자 다니엘 칼라한(Daniel Callahan)이 말한 바처럼, 자유주의 윤리관에 입각한 윤리 접근법들은 개별적인 생명윤리 논쟁에서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지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 시대처럼 경제적 이익이 우선시 되는 상업화 맥락에서 유전자 편집에 대한 자유주의 윤리관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저자는 결론에서 민주적 숙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편집 접근 기회균등과 연구결과의 평등한 분배를 위한 절차를 민주적 숙고를 통해 공정하게 이루어가자는 것입니다. 이는 기술이 지닌 정치성 일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기술 발전과 혁신 과정에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합의가 따르게 됩니다. 기술자의 개발 동기와 윤리관, 기술자의 가치판단에 영향을 미친 문화, 보상체계, 국가의 법적 수단과 지원 제도, 공동체의 문화적 가치판단 등이 영향을 미칩니다. 아쉽게도 저자가 강조한 민주적 숙고는 절차적 측면에서만 강조될 뿐 기술 발전과 혁신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와 관련하여 민주적 숙고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여러 아쉬운 점도 있지만, 김상득 교수의 글 ‘유전자 편집의 윤리’는 유전자 편집을 둘러싼 여러 윤리적 논의 지형을 정리하여 보여주면서 심화된 유전자 편집 윤리 논의를 위한 시작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전자 편집에 대한 민주적 숙고의 강조는 유전자 편집 전문가와 생명윤리학자만이 윤리적 고찰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유전자 편집이 갖는 사회 및 윤리적 파급을 고려해 이 기술의 활용 방식을 결정하는 것 역시 사회의 여러 구성원에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는 여러 기독신앙단체에게도 유전자 편집에 대한 목소리를 요청합니다. 신학적 사유 속에서 유전자 편집에 대한 윤리적 규준을 제시하며 기독신앙단체들은 민주적 숙고 과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 | 김재상

과학과 신학의 대화 정회원 및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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