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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SF영화와 기독교] 9.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선과 악의 경계에서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8. 31.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The Suicide Squad, 2021

액션 / 미국 / 132분 / 2021.08.04 개봉
감독 : 제임스 건
주연 : 마고 로비(할리 퀸), 아브리스 엘바(블러드 스포트), 존 시나(피스메이커), 조엘 킨나만(릭 플래그), 실베스터 스탤론(킹 샤크), 비올라 데이비스(아만다 윌러), 데이비스 다스트말치안(폴카 닷 맨), 피터 카팔디(씽커)

 

  3세기 초 사산제국의 예언자 마니는 세상을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했다. 영적인 빛의 세계와 물질적인 어둠의 세계가 존재하며, 전자는 선의 영역이지만 후자는 악의 영역이다. 그리고 우주와 역사는 이 두 영역의 싸움이다. 마니가 창시한 마니교는 초대 기독교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마니의 영향을 받은 마르시온 등이 주도한 영지주의가 그 대표적 예다. 빛인 영적 세계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지만, 어둠인 물질 세계는 지양해야 한다. 따라서 빛인 예수가 어둠인 물질적 몸을 입을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마니 뿐 아니라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이원론을 주장했었다. 플라톤은 보이는 세계인 물질 영역과 보이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도 형상인, 질료인 등으로 구분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구분된다. 이들의 영향 아래 초기 교부들도 영과 육을 구분하는 이원론을 가르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천상의 도시와 세속 도시인 두 왕국을 가르쳤다.

 

  이원론의 영향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고대의 이원론은 주로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를 구분했다면, 현대의 이원론은 피아 식별로 발전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한 에세이에서 말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나와 너를 구분할 뿐 아니라, 너를 적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이원론은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대립을 낳는다. 문제는 이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절대적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조금 더 발전시켜보면 세상에 선인과 악인이 완벽하게 구분될까? 완전한 선인과 완전한 악인이 가능할까? 기존의 영화들은 그런 설정으로 만들었다. 이를테면 우리가 익히 들었던 히어로들인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등이 그러한 캐릭터들이다. 물론 이들도 어느 정도 고민도 하고 흔들리지만 결국은 선의 실현을 성취한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델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제임스 건 감독은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그의 세계에서는 선과 악이 혼재하며, 선인과 악인의 구분이 애매모호하다. 즉 완전한 선인도 없고 완벽한 악인도 없다. 제임스 건의 캐릭터들은 선과 악을 공유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악에 더 가깝다. 이들은 선을 실행하려 하지도 않고 대의나 명분을 따르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울 뿐이다. 제임스 건의 신작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그런 영화다.

 

  여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범죄와 연관되어 있다. 마고 로비가 열연한 할리 퀸은 그 유명한 조커와 관련 있고, 로버트 뒤부아가 연기한 블러드 스포트는 슈퍼맨을 향해 총탄을 발사했고 그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피스 메이커라는 이름과 달리 오히려 폭력적이다. 그에게 평화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 뿐이다. 킹 샤크로 불리는 상어인간은 아예 선과 악의 구분이 없다. 그런데 이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운다. 아이러니 중 아이러니다.

 

  이 아이러니가 반대편 진영에도 펼쳐진다. 영화에서 악으로 규정되는 코르트 말테즈라는 나라는 헤레라를 몰아내고 실비오 루나 장군이 대통령이 되었다. 전자는 미국에 협조적이었으나 후자는 비협조적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입장에서 실비오는 악의 축이다.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을 가동한 것이다.

 

  영화가 진행되면 선과 악의 구분이 더 모호해진다. 미국 정부는 헤레라에게 비밀 프로젝트를 맡겼는데 불가사리 모양의 우주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오래전 미국 우주선에 유입된 이 외계 생명은 인간을 숙주로 삼아 번식하는 존재들이다. 미국은 이 실험을 자국이 아닌 코르트 말테즈에 위탁했다. 헤레라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반 체제 인사들을 이 비밀 프로젝트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들을 불가리의 숙주로 이용했다. 반면 실비오 루나는 이 외계 존재들을 통해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장악하려 한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누가 더 윤리적으로 비난 받아야 할 존재들인지 헷갈린다. 외계 생명체의 생체 실험을 주도하는 미국이 나쁜가? 미국의 비호 아래 자신의 정치적 정적들을 생체 실험의 도구로 사용하는 헤레라인가? 헤레라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아 외계 생명체를 무기로 삼아 세계 정복을 꿈꾸는 실비오 루나인가? 실비오 루나를 제거하기 위해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투입한 미국 요원 아만다 윌러인가?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죽여 나가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멤버들인가?


 

  제임스 건의 영화에서 선과 악은 모호하고 뚜렷한 경계선은 사라진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살아남는 자가 선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누군가 그랬듯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고 생존한 자의 정의다. 승리한 자는 선이고 패배한 자는 악으로 규정된다. 그런데 이것은 옳은가?

 

  종교개혁자 루터는 말했다. 인간은 선인과 악인의 이원론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존재라고 그는 말했다. 루터는 ‘simul justus et peccator’(인간은 선하면서 동시에 악하다.)라고 했고 이어 ‘peccator in re, justus in spe’ (현재로선 악하나 소망 가운데 선하다.) 라고 선언했다. 그는 인간은 본질상 악하나 주어지는 은총 가운데 선하다고 선언되며 선한 존재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결국, 인간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존재이지 그것이 완벽하게 분리된 이원론적 존재가 아니다.

 

  20세기 과학적 발견의 주요 화두인 양자역학의 세계는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빛은 전자기 에너지 파동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얼마 후 막스 플랑크와 알베르토 아인슈타인은 빛은 어떤 상황에서는 파동이 아니라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빛은 파동인가? 입장인가? 이러한 이원론적 생각은 이후 폴 디랙이 양자장 이론을 통해 대안을 제시했다. 빛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라는 것이다. 하이젠베르그는 이것에 기초하여 그 유명한 불확정성 원리를 천명했다. 빛은 파동인가? 입자인가? 쿼크는 무질서인가? 질서인가? 현재의 결론은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며, 쿼크는 미시 세계에서는 무질서이나 거시 세계에서는 질서다. 존 폴킹혼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양자 세계는 양자 세계의 논리 안에서 말이 됩니다.”

 

  뉴턴의 기계적 물리학의 세상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 물질과 비물질의 구분인 이원론이었다면,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선과 악의 공존, 물질과 비물질의 공존, 빛과 어둠의 공존이 이뤄지는 통합의 세계 아닐까?

 


 

  물리학자이자 신학자인 존 폴킹혼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교리가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이해 가능하다. 마틴 루터의 인간관에 따르면 ‘우리는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다. 제임스 건의 세계관에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캐릭터들은 악인이면서 선인이다. 달리 말하면 악인들이 만들어 낸 선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조금 덜 나쁜 악인(the less evil)이다.

 

  나는 제임스 건의 B급 캐릭터들(수어사이드 스쿼드- 블러드 스포트, 할리 퀸, 킹 샤크)이 잭 스나이더의 A급 캐릭터들(저스티스 리그-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보다 더 친근하게 여겨진다. 마치 세상 모든 악을 제거하고 완벽한 선을 구현할 것 같이 폼 잡는 인물들보다 솔직 담백하고 거침없이 움직이는 생존형 캐릭터들이 의도지 않게 이뤄내는 선한 결론이 더 와 닿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의인이 있고, 자신이 의인인 줄 아는 죄인이 있다.’ 전자들이 이뤄내는 조금은 어설픈 진짜 영웅들의 세계가 나는 좋다.

 

 


 

글 | 김양현

하울의 움직이는 아빠로 방송과 잡지에 영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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