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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북클럽 이야기

<신, 인간, 과학> 1장 우주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9. 4. 12.

 

글_ 최경환

 

지난 4월 9일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님 연구실에서 부천 북클럽 모임을 가졌습니다. 함께 읽고 토론한 책은 여러 명의 학자들의 대담 내용을 엮은 <신 인간 과학>입니다. 오늘은 1장 우주에 대한 내용을 나눴습니다. 함께 이야기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봤습니다.

 

1. 신은 세계 밖에 있는 존재인가? 이신론자들은 신이 세상을 만들면 할 일을 다 했고, 세계는 프로그램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스피노자의 경우, ‘신 즉 자연’이라는 말을 했는데, 신은 세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움직이게 하는 것, 자연 자체,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범신론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범재신론도 있다(panentheism). 신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신이 자연을 품고 있는 그림이다.

 

그럼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판넨베르크는 삼위일체론적으로 설명하면서 범재신론과 유사한 설명을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초월해 계시지만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내재하고 성령이 세상을 감싸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정의 두 가지, ‘하나님은 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판넨베르크는 영을 바람이나 숨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실제에 가까운 설명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침투하는 바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질서와 같은 로고스의 역할, 성령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분으로 해석한다.

 

2. 과학에는 신이 필요한가? 필요 없다. 그런데 과학자는 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연 전체를 볼 수 없다. 부분을 볼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부분을 보면서 전체를 보고 싶어 한다. 삶에 대한 전체적인 지식을 알고 싶어 하고, 그 전체를 말하려는 욕구, 욕망은 종교적이라 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동기뿐 아니라 내용 자체도 종교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생명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3. 존재와 이유. 왜 인간은 뭔가를 궁금해 할까? 왜 원인을 찾고 싶은가?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일 수 있는데, 그걸 무시할 수 있을까? 인과율적인 세계관은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관에서는 이런 인과율이 깨진다. 왜 존재하는지, 왜 거기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원인 없는 사건이 존재할 수 있다. 적어도 원인이 있더라도 단순하게 제시할 수 없는 사건이 존재할 수 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것만이 원인은 아닐 수 있다. 원인의 그물망이 엄청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할 수도, 다 알 수도 없다. 원인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로 원인을 파악할 수는 없다.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4. 뒤르는 '자연과학은 대상 자체에만 매달리고 있다.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라고 말한다.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려고 하면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힘들다.

 

사물의 외면을 보고 관찰하려고 하는 사고, 반면 사물의 내면을 보려는 시선, 이 둘은 다를 수 있다. 과학은 대상의 일부를 쪼개서 관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구조의 연관성과 전체적인 구조를 보려는 시도는 과학적인 연구만으론 안 된다.

 

5. 직관과 상상의 방랑. 과학은 교과서가 아니다. 정답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직관과 비과학적인 상상이 과학자의 종교적 심성이 아닐까?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것. 뮈토스를 로고스로 설명하는 것, 하지만 뮈토스의 영역이 존재한다.

 

6. 모든 진리 주장에는 믿음이 걸려 있다.

 

7. 신앙은 어떻게 검증 가능한가? 종말에 이르러?

 

8. 우리 삶에서 원인과 결과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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