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인천 북클럽] 공명: 창조, 섭리, 그리고 관계성

  • 과거 신학을 철학으로 하려던 토마스 아퀴나스 처럼 이제는 신학을 과학으로 하려는 시도들이 시도되고 있지는 않나 봅니다.

    증인 2020.01.08 23:38

 

모임 일시: 2019.12.9

장소: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 연구실
교재: 존 폴킹혼, <과학으로 신학하기> (모시는사람들)

 

 

2019년 마지막 모임을 박영식 교수님 연구실에서 가졌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존 폴킹혼의 <과학으로 신학하기>를 읽었는데, 내용이 쉽지 않아서 다들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5장부터 끝까지 읽고 이야기를 나누려 했는데, 실제로는 5장을 자세히 다루고 나머지는 간단하게 언급만 했습니다. 책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기억을 더듬어 토론 내용을 정리해봅니다. 

 

1. 폴킹혼의 과학과 신학의 역할, 목적을 분명하게 구분합니다. "과학의 관심사는 과정에 있고, 신학의 관심사는 목적과 의미에 있다"(161쪽)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학과 신학은 상호 공명할 수 있고,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보적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와 '왜'는 별개의 대답들이지만, 이들이 답을 내는 형식들은 양립하면서 서로 맞아떨어져야 한다." (161쪽)

 

2. 창조론은 시간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기원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법칙과 규칙 그리고 이론이 가능하게 하는 창조자입니다. 양자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의 법칙을 만든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 우주에 'Made in God'이라는 도장이 찍혀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우주를 관찰하고 연구해서 신의 흔적을 밝히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과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하는 것"입니다.(164쪽) 

 

그러고 보면 신학은 과거에 학문의 여왕으로 자리매김을 했지만 이제는 과학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거 같습니다. 신학은 과학의 결과를 수용하면서 그 내용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런 현실이 씁쓸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욱 분명하게 밝히려는 과학이야말로 과거 신학의 역할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3. 폴킹혼은 많은 과학자들이 인정하고 이야기하는 '인류학적 원리'를 통해 충분히 신학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인류학적 원리를 통해 다중우주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폴킹혼이 보기에 이는 너무 과도한 존재론적 낭비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런 과학적 사변은 오히려 과학정신과 상반된다고 말합니다.(172쪽)

 

 

4. 과학에서 말하는 '우연과 필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폴킹혼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은 신의 섭리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유전적 돌연변이가 없다면, 새로운 종들의 출현은 불가능할 것"이고,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실제 비율이 자연선택을 통해서 걸러지고 유지됨으로써 흥미로우리만치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들이 전개"된다고 합니다.(174쪽)

 

창조자 하나님은 일시적으로 개입해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을 통해 일하십니다. 아서 피코크가 말한 것처럼 "창조의 역사는 영원 속에 미리 그려진 고정된 악보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들과 창조자 모두가 참여하여 조금씩 만들어가는 즉흥곡으로 봐야 한다."(175쪽)

 

그렇기 때문에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뿐만 아니라 '연속 창조' 혹은 '계속적 창조'(creatio continua) 역시 같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발전에 반드시 신의 개입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발전은 "창조자가 창조에 부여하여 내재된 풍부한 결실성을 표출한 새로운 양태들로 이해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176쪽) 이미 완벽하게 만들어진 세계보다 진화하고 있는 세계가 더 멋진 세계일 수 있습니다. 

 

5.  진화론을 통해 창조를 이해하면 신정론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악과 고통은 "스스로를 형성해 가는 피조물의 세계가 지불해야 할 필연적 비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177쪽) 죽음과 탄생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격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유의지라는 어쩌면 위험한 선물을 통해서 구현되듯이, 이 자연 세계 역시 고통과 기형이라는 피할 수 없는 대가를 통해 더 좋은 세계를 형성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free will defence는  free process defence와 함께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6.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때 그동안에는 흔히 자연현상이라든가 법칙을 거스리는 방식으로 이해해왔는데, 오히려 자연을 완성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이 세상은 열린 성격을 갖도록 창조되었고 하나님은 이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일단 "자연의 제정자인 신은 틀림없이 자연 과정의 개방적인 기질 안에서 일하시지 그 기질에 반해서 일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184쪽) 초대교회의 교회 오리겐은 "더운 여름에 시원한 봄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습니다.(185쪽)

 

7. 양자이론이 가져온 새로운 세계 이해는 신학에도 여러 가지 통찰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양자이론은 "원자속 세계에 깊이 들어앉아 있는 관계성의 존재를 입증했다"라고 합니다.(188쪽) 이는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귐으로서의 존재'(being as communion)라는 진리를 간접적으로 알려준다고 합니다. 사랑의 상호 소통이라 불리는 페리코레시스의 핵심은 상호적 관계성이기 때문입니다. 폴킹혼은 "물리 세계에 대한 과학의 묘사는 이 세계가 삼위일체 신의 창조물이라는 믿음과 눈에 띄게 공명한다"라고 말합니다.(190쪽)

 

8. 폴킹혼의 책을 읽으며 그동안 과신대에서 들었던 내용이 조금씩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다시 한번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쉽게도 이 책은 절판되어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좋은 번역으로 새롭게 재탄생하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