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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판교 북클럽] 1 제곱 밀리미터, 1 페타바이트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2. 7.

 

최근에 돈을 주고 USB Disk나 Hard Disk를 따로 산 기억이 없습니다. 무슨 무슨 행사 때마다 회사명이 인쇄된 USB 저장 장치를 받아둔 것이 집안 구석을 돌아 다니고 있고 수명을 다한 노트북에서 떼어낸 2.5인치 HDD나 SDD 저장장치가 역시 기억해 둔 어딘가에 있죠. 요즘 주로 이용하는 것은 클라우드 저장소이고 돈을 주고 산 것도 그렇습니다.


아마 제가 처음 들고 다녔던 디스크의 용량은 720KB 였던 것 같습니다. 구멍을 뚫어서 양면을 사용했던 플로피디스크였죠. 이후 처음 사용한 하드 디스크의 용량은 120MB였던 것 같습니다.

 

1 페타바이트는 요즘 흔해진 1 기가 바이트의 약 1,000배인 1 테라 바이트의 약 1,000배에 해당하는 단위입니다. 이제 개인 저장장치의 용량으로 1 테라바이트가 흔해진 시대이니 살아있는 동안 1 페타바이트 저장장치를 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겠습니다.

 

커넥톰 연구를 위한 뇌 조직 1 제곱 밀리미터에서 구할 수 있는 이미지의 양이 방금 언급한 1 페타바이트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현재 이 데이타는 아마 디스크 전용 장비나 클라우드 저장소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겠죠. 영화에서 보듯이 컵 아래에 USB Disk나 SD card를 붙여서 보안 요원을 속이고 전체 이미지를 유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습니다.

 

< 과학과 기술 >


승현준 교수의 ‘커넥톰’ 후반부에서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과학 이론(혹은 가설)과 기술” 이것은 마치 2개의 수레바퀴와 같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역사의 한 축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과학자가 연구 만큼이나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이는가 봅니다. 대표적인 예로 갈릴레이가 천체 망원경을 만든 것을 들 수 있겠고 ‘커넥톰’의 저자 승현준 교수가 삼성전자 AI 연구에 참여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겠습니다.

 

< 뇌과학자는 명검의 달인? >


뇌과학에서 필요했던 기술은 현미경 기술, 염색 기술, 자르기 기술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계학습(머신러닝)도 중요한 기술이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자르기 기술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20세기 초반의 니콜 톰슨이라는 한 연구원은 당시의 최신 기술이었던 초마이크로톰 칼을 이용해서 여러마리의 예쁜꼬마선충(3번째 그림)의 단면들을(4번째 그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위해 열심히 칼질을 했다고 합니다.


예쁜꼬마선충의 대략적인 길이는 1 밀리미터인데 전자현미경 용으로 약 8천번으로 나눠 자른다는 것이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하기나 한건가요? ㅋ~


그것을 했다는군요. 뇌과학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달리 뇌과학자는 노가다의 달인 같습니다.

 

 

< 12년 이상 걸린 작업 그리고 >


12년이나 걸렸던 신경세포 분석작업의 대상은 인간의 뇌가 아니라 예쁜꼬마선충이었습니다. 1 밀리미터 길이의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을 완성하는 데에 12년 이상 걸린 것이죠. 그보다 약 1,000배 이상 큰 쥐의 뇌, 또 그보다 약 1,000배 이상 큰 인간 뇌의 커넥톰을 완성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요? 인간 뇌의 커넥톰을 완성하는 데에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 머신러닝 >


요즘 많은 분야에서 그렇듯이 커넥톰을 완성하기 위해서 뇌과학자들이 기대하는 기술 역시 머신러닝일 것 같습니다만 “놀랍게도 오늘날의 컴퓨터는 경계를 식별하는 일에 그리 능숙하지 못하며 심지어 우리에게 아주 명백하게 보이는 경계선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264-265)고 합니다. 기술적 한계 상황에 빠진 뇌과학자들을 위해서 http://eyewire.org 에 들려 약간의 도움을 주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곳에서 뇌의 이미지들을 칠하는 재미있고 간단한 게임을 함으로써 누구나 직접 커넥톰의 작성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그래서? >


세포수 959개(수컷은 1031개), 신경세포 302개인 예쁜 꼬마선충의 커넥톰을 완성했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의 정신활동, 기억활동, 판단능력 등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 뇌의 연구는 완성한 경험이 있는 예쁜 꼬마 선충의 확장일 것 같습니다. 거의 분석 불가능할 것 같은 자료의 방대함, 기술적 어려움과 같은 난제들이 앞을 막고 있습니다만...(그렇다고 틈새의 신을 부르는 주문은 외우지 맙시다)

 

“우리는 1 입방미터의 피질을 손으로 재구성하는 데에 1 백만 인년persan-year이 걸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p. 264)

처음으로 지구를 벗어나 우주궤도에 진입한 인간은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었을까요?(유리 가가린은 임무 수행하느라 그럴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같은 관점에서 작은 예쁜 꼬마 선충의 커넥톰을 완성한 연구자는 이 유기생명체의 정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발견했을까요?

 

사실 요즘 저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잘 하지 않습니다. “정신, 영혼”이란 용어는 종교, 인문학, 자연과학 등에서 함께 쓰는 용어이겠지만 이 사이에는 연속성과 함께 불연속성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이죠. 제 내면에서 잘 섞이거나 융합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일종의 명상, 기도, 시와 같은 영역이지 마치 과학과 신학이 이론적으로 통합되는 무엇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강사은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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