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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그대와 나는 표면장력surface tension이다.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2. 5.

 

거리에 공기가 냉랭하고 쌀쌀맞다. 목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손도 동그랗게 꼭 쥐고 호호거리면서 걷게 된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부서뜨릴 것 같고 내 몸의 사방을 날카로운 가시들로 찌르는 것 같다. 추위가 내게 통증을 유발한다. 무참히 냉기가 엄습해 올 때,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할 수만 있다면 동그랗게 말아서 데굴데굴 굴러가고 싶어진다.

 

사랑의 기원에서 플라톤은 우리의 몸은 앞뒤로 똑같은 형상이 등끼리 맞붙어 있었다고 한다. 팔 네 개, 다리 네 개로 걷다가 빨리 가야 하면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굴러다녔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겨울엔 모두 이렇게 굴러다니면 좋겠다 싶다. 추울 때 몸을 움츠리는 것은 표면적을 줄여서 열을 최대한 덜 빼앗기려는 시도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리지만 거기엔 우리 몸이 생명에 집중하게 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추위라는 통증으로부터 우리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린 저절로 몸을 동그랗게 만든다. 생명의 구심점인 심장을 향해 우리 몸의 기관들이 일제히 모여드는 것이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것은 태양의 중심 온도보다도 더 뜨거운 생명의 시작이자 생명의 의지인 심장에 가까워져 소진된 생명을 주입받으려는 몸짓이다.

 

내게 두통이 주는 통증은 그 어느때 보다 더 강렬하게 아니 맹렬하게 나를 심장으로 파고들게 한다. 경험한 통증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두통이다. 응급실에서 고통을 호소할 때 1부터 5까지 등급을 나눠서는 얼마만큼 아픈지 숫자로 말하라고 했었다.

 

몸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고통에 아우성치는 그 처절한 아비귀환의 순간을 5로 표현하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가? 그당시 병원에서의 나는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였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얼굴을 가슴쪽에 파묻고 팔로 무릎을 감싸 동그랗게 움츠리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은 늘어진 엿가닥처럼 아주아주 천천히 흐르고 그렇게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백야를 맞고 수척한 새벽을 맞이할 때 쯤, 밤새 생명을 살게 하려는 몸부림이 승리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의 몸은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을 희망하기에 밤새 끌어안은 건 생명의 의지였다.

 

우리의 기억은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놀랍고 신비하게도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때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회복하고 돌아오게 한다. 그대와 나는 엄마의 양수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280일을 사는동안 우리의 몸을 동그랗게 말고 지냈었다. 그 공간과 그 시간이 우리 삶에서 가장 안전하며 온전히 의존적이며 오직 생명의 의지 자체였던 때였다는걸 기억하는 걸까?

 

몸을 동그랗게 마는것은, 엄마와 연결되어 사랑 안에서 동그랗게 유영하던 그때로 우린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닐까? 따뜻하고 충만하고 넓고 아늑한 우주, 함께 호흡하며 엄마의 심장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지내던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샬롬의 시공간. 그대와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건 아닐까?

 

 

몸을 동그랗게 마는 것은 표면장력을 극대화 시켜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몸짓이다. 추위에 몸을 움츠리는 것, 두통으로 몸을 동그랗게 마는 것, 외로울 때 어깨를 감싸며 점점점 영혼 안으로 수축하는 것, 두려움으로 그대 품 속으로 파고드는 것,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대와 나의 생명을 향한 표면장력이다. 표면장력은 우리의 생명의 의지만큼 크다.

 

백우인 팀장 (bwoo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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