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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그대와 나는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 다.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3. 31.

 

우리의 존재방식ㅡ"걷기의 무렵"



걷는다는 것,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늘 걸었는데 문득 숨을 들이마시고 내뿜으면서 한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내 몸의 움직임과 발걸음이 경이롭게 여겨진다.

등과 허리를 펴고 머리를 곧게 세우고 다리를 뻗어 똑바로 걷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됐을까? 우아하고 세련되고 아름답기까지 한 그대의 걷는 동작을 보라.

도구를 이용하기 때문에 인간이듯이 두 발로 걷기때문에 인간이라 할 수 있다. 페북을 열심히 하고 있고 산책로를 걷고 있는 그대와 나는 인간임을 확인 중인 셈이다. 혹시 그대의 발이 곰 발바닥 같이 못생겼다고 불만이 있었다면 다시 한번 꼼꼼하게 들여다보길 바란다.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보다 더 크고 나머지 네 발가락과 나란하게 평행을 이루면서 앞을 향해 있는 그대의 발은 못생겼든  크든 작든 상관없이 걷기에 적합한 모양과 기능을 갖추고 있으니 불평할 일이 아니다. 딱 그 발이어야 우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걷다 보면 마음의 속도가 걸음의 속도를 따라간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노라면 서로의 거리는 마음의 거리가 된다. 팔이 스치고  가끔씩 손이 닿을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마음의 경계선은  뭉개진다. 

바람이 불어와  가까이에 있는 그대의 향기가 전해오면 막 세수하고 나왔을 때의 비누냄새처럼 싱그럽다. 한참을 걷다 보면 두 발이 걷고 있는지 생각이 걷고 있는지 이야기들이 걷고 있는지 분간이 안 되기 시작한다. 

몸은 그대와 내가 유쾌하게 웃는 소리에 잘잘하게 몸서리치며 진동하는 공기들만큼 계속 가벼워져 간다. 걸으면서 가끔씩 바라보는 그대의 옆모습이 붉어져 있는 것은 저녁노을에 물들었기 때문이겠지. 내가 반짝 빛나 보이는 건 한강을 가로지른 다리에  장식된 골드빛 조명이 내 눈에 가득 들어와 있어서였겠지. 

우린 그렇게 걸으면서 문득문득 서로가 멋쪄보일 때와 만나기도 한다. 그대 걸음이 나보다 몇 걸음 더 앞서 가고 있을 때 성큼성큼 따라가는 것은 그대의 말소리를 듣고 싶은 이유이며 그대가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보고 싶은 이유이다.

보폭을 맞춰 바짝 다가서는 것은 그대의 영혼과 닮아진 얼굴을 하고 싶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대가 조금만 천천히 걸어준다면 나는 앙증맞게 움이 트는 잎사귀를 감상하고 보라색 제비꽃의 향기를 맡고 그리고 가지를 흔들어 그대에게  매화비가 내리게 할 수도 있으리라. 

 

 

그대와 내가 혼자서 걷는 시간은 우리의 존재와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 인류는 존재증명의 한 방법으로 걷기를 했다. 걷는 행위는 고인류학자들이 인간의 특징으로 손꼽는 것 중의 하나이다. 호모 에렉투스인 그대와 나는 진정한 호모사피엔스다. 

존재증명을 너머 걷기를 시작하면서 우리 인류는 손이 자유로워져 "함께"에 적합한 인간이 되었다.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살게 되었으니 혼자 걷는 그대의 손이 허전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걷는 것은 내가 속한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세계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거리를 두어 세계로부터 떨어져 있는 시간이다. 대나무처럼 비워내고 또 비워내서 곧게 서는 시간이고 적당한 거리에 홀로 있으면서 도토리처럼 채워지는 시간이다.

혼자 있는 것이 외롭지 않은 것은 가끔씩 마주 지나가는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다. 혼자서 걷는 그대와 나는 조금만 가볍게 '소외"에 우리를 내어주기로 하자. 그러면  한결 사분사분  사유의 세상으로  걸어 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대와 나는 걷다보면 무한한 가능성처럼 끝도 없이 펼쳐지고 열린 길을 만난다. 그 길은 우리 앞에 결코 한계란 없는 무한한 가능성들로 가득한 세상이고  그 가능성의 세상을 목도한 우리에게 두려움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2000년 동안이나 견고한 뿌리로 굳건하게 서 있는 바오밥나무의 여여如如함을 알고 있는 그대와 나는 가슴을 더욱 활짝 펴고 담대한 걸음이 된다.

봄의 무렵은 걷기의 무렵이다. 해 질 녘, 개와 늑대의 시간은 그대와 사뿐걸음으로 수다하고 싶어 진다. 노을의 때에 혼자서 걸어야 한다면 나는 하이데거가 되고 루소가 되고 칸트가 되어 보고 싶다.  그대와 나는 걷는 존재 호모 에렉투스다.

 



먼 길

 

이재무

이 세상 가장 먼 길
내가 내게로 돌아가는 길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왔다
내가 나로부터 멀어지는 동안
몸속 유숙하던 그 많은,
허황된 것들로
때로 황홀했고 때로 괴로웠다
어느날 문득 내게로 돌아가는 날
길의 초입에서 서서 나는 또,
태어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새처럼
분홍빛 설렘과 푸른 두려움으로
벌겋게 상기된 얼굴, 괜시리
주먹 폈다 쥐었다 하고 있을 것이다

 

백우인 기자 (bwoo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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