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 vs. 창조과학

 

창조과학은 성경이 20세기의 과학 잡지를 읽을 때와 동일한 정확성을 가진 과학적 진술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헨리 모리스의 논제처럼, “성경은 과학교과서이다”일뿐만 아니라 과학교과서여야 한다. p. 35

 

윤철민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CLC | 2013. 5. 30 | 초판발행 | 244쪽 | 13,000원

 

 

저자 윤철민은 서문에서 이 책의 발행 목적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 첫째 단락의 일부를 소개한다.

 

창조신앙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신자들은 과학적 이슈보다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더 관심 있다. 또한 평범한 신자들은 과학이 아니라 성경으로 창조신앙을 공부하길 원한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성경을 사랑하는 신실한 분들에게 창조신앙과 관련된 성경본문을 개혁주의적 시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처음에 제목을 보고, ‘왜 “개혁신학 VS. 보수신학” 이 아니라, “개혁신학 VS, 창조과학”이지?’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개혁신학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의 서문과 첫 문단의 본문 인용구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 보수신학은 이미 창조과학과 그 맥을 같이 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자랑처럼 ‘우리 교단이 얼마나 보수적인데’라고 떠들고 다닌다. 그 때는 초신자였기에 보수적이지 않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창피했다. 그리고 창조과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도 창피했다.

 

지금 이 책은 과.신.대 추천도서 네 번째 책이다. 아마 처음부터 이 책을 읽었다면 평범한 주부인 나에게는 이 책이 많이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론 연대기] -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 - [아론의 송아지]를 지나오는 동안 약간의 지식이 쌓였기에,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동안 마치 상식처럼 알고 있던 ‘에덴동산에서는 모두 초식을 했을 것이다.’, ‘휴거’, ‘천년왕국’, ‘새 하늘과 새 땅은 에덴동산과 같은 것이다.’ 등등의 지식이 크나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네페쉬’라는 용어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네페쉬는 피를 가지고 있고 호흡을 하는 생물, 즉, 동물과 인간만이 네페쉬이다. 따라서 태초에는 죽음이 없었는데, 식물은 네페쉬가 아니므로 죽는 게 아니다. 인간의 몸 속에 있는 장내 세균의 죽음도 죽음이 아니다, 라는 식의 논리가 네페쉬 교리이다. 이 네페쉬 교리 때문에 재미있는 질문들이 많이 나온다. 그중 하나는 ‘타락 전에는 육식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까지 간다. 작가는 네페쉬 교리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를 여러 장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전혀 몰라도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아주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앞서 ‘아론의 송아지’에서도 잠깐 나왔듯이, 억지스러운 한자풀이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여기서는 한자의 근원인 갑골문자까지 다루고 있다. 갑골문과 그것의 변천, 현대에 어떤 뜻으로 쓰이고 있는지 표를 삽입하여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결론은 한자에 창세기가 담겼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원래 그 한자의 갑골문이 무슨 뜻을 품고 있지도 모르는 체, 현대에 나타내고 있는 뜻을 역으로 이용해 한자에 끼워 맞춘다는 것이다. 현대의 내 지식으로 성경의 배경지식을 무시하고 해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바로 이것이 ‘겉보기식 해석’이다.

 

 

개혁주의는 ‘겉보기식 해석’을 탈피하고 ‘속보기식 해석’을 하려는 움직임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나의 믿음에 끼워 맞춰 성경을 해석하는 큐티를 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내 상황에 맞추어 성경 말씀을 떠올리며, 그 말씀을 내 행위의 정당성으로 삼고 있었고, 내가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면 기도응답을 받은 것이고,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던 일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며, 나에게 나쁜 일이 벌어지면 사단의 농간이라 생각했다. 이것이 기복신앙이 아니고 무엇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경의 외면이 아닌, 내면을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창조과학적 신앙’이 아닌, ‘창조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방법의 친절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이혜련 기자 (1221hannah@hanmail.net)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