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데이비드 J. 헬펀드 저, 노태복 역, 더퀘스트, 2017

 

글_ 윤세진 (구일고등학교 과학교사, 과신대 실행위원)

 

 

과학은 하나의 전공이나 분야가 아니다. 과학은 체계적으로 사고하겠다는 약속이며, 가설을 검증하고 사실을 관찰함으로써 우주를 설명하고 지식을 쌓아가겠다는 맹세다. - 아툴 가완디(Atul Gawande) - (47쪽)

 

요즘 코로나바이러스증후군-19(Covid-19)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언론이나 SNS를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정도들이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그 덕분에(?) 너도 나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용어가 익숙해졌고, 어떤 사람은 그 특징이나 증상 등을 웬만한 의사 못지않게 알기도 하고 설명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 나름의 잘못된 대처 방식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1] 삶과 죽음이 달려 있고,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그런지 의사나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보다 더 호소력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나마 일반인들의 이러한 것은 애교 수준이다. 요즘에는 가짜 뉴스를 넘어서 사이비 과학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사이비 과학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런 그릇된 정보 중 일부는 과학으로 가장해 전문용어를 구사하고 회의를 개최하며 학술지까지 발간한다. 일부 집단에서 이렇게 부르면 정치적으로 옳지 않지만,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사이비과학’이라고 명명한다. 겉으로는 과학의 언어와 형식을 표방하지만, 과학의 기본 원리를 뒷받침하는 모든 내용을 거부하는 뚱딴지같은 지식의 집합체를 정의하는 말이다. 이 사이비과학은 오류 가능성에 구애받지 않으며, 진정한 과학 탐구를 추구하는 이들의 사상과 업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23쪽) 

 

과학 기술의 시대에 과학과 기술을 도용하는 이런 사이비 과학은 빨리 사라져야 하지만, 쉽사리 없어지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에 과학은 어렵고 나는 과학을 잘 몰라도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과학을 공부하기 싫어한다. 또한,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도 “과학”을 제대로 배우기보다는 나열된 지식을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과학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과학을 빙자해서 사람들을 속이려는 시도들이 너무 많다. 이런 사이비 과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과학을 제대로 배워 “과학적 소양”[2]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과학자로서 일반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다. 특히, 1장의 공원 산책하기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주변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에서 과학적 사고의 필요성과 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특히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 - 기후변화 같은 - 를 해결하려면, 낭만적인 접근보다는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어렸을 적 가졌던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과학적 사고(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장의 과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그 견해가 다양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이는 자신이 제시하는 과학에 대한 견해도 일반적인 것이 아닌 자신만의 견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과학에 대한 견해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특히 과학을 “진리를 찾는 활동이라기보다는 ‘자연의 반증 가능한 모형을 찾기 위한 체계’라고” 정의하는 것을 통해 과학에서 중요한 점은 포퍼(Karl Popper)에 의해 강조된 비판적인 사고라는 사실을 언급하여 수학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의 차이를 설명해 준다.

 

이후의 장에서는 과학을 좀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을 제시해 주어 “과학적인” 사고를 접하게 해 준다. 아주 큰 숫자를 이해하는 방법(3장)에서는 원자의 크기와 태양계의 크기 등을 다루면서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많은 숫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중에 인상적인 것은 시각이 0.02초보다 더 빠른 시간은 직접 지각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사람은 연속적인 시간을 시각이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간격을 뇌에서 메꿔 주며, 이 원리를 이용해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봉투 뒷면에서 발견한 것들(4장)에서는 숫자를 다룰 때 추산(혹은 어림)하는 방법, 즉, 알 수 없는 양을 대략적으로 추산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수를 다룰 때 맥락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어떤 숫자가 제시되는 상황을 알지 못하면, 그 숫자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예를 든 것의 하나가 미국 언론의 식인 상어에 대한 헤드라인 문제이다. 언론에서는 식인 상어 문제로 호들갑을 떨고 있었지만, 정작 저자의 추론에 의하면 식인 상어에 물려 죽는 사람은 연간 100만 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는다. 반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은 30분에 두 명, 흡연으로는 130초마다 두 명이 죽는다. 맥락이 없는 숫자는 이렇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프를 보는 방법(5장)에서는 그래프를 과학적으로 그리는 방법과 함께 이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확률과 통계(6장, 7장)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8장)에서는 확률과 통계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을 다루면서 과학적인 측정에서 나타나는 오차와 그에 따른 표준편차, 가우스 분포, 푸아송 분포 등의 개념을 설명한다(사실 이 부분의 개념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상관관계가 있는 두 양에 대해 인과관계로 설명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도되는 많은 기사에서는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을 대부분 그 둘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석하여 보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자들이 이 책의 8장을 정독했으면 좋겠다.

 

과학의 특징에 대한 재 언급과 그와 관련된 뇌의 특성(패턴을 찾으려는 성향과 그로 인한 문제점), 모형에 대한 설명을 다루는 9장은 또 다른 측면에서 과학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장에서는 프록시라는 개념이 중요시되는데, 이는 측정할 수 없는 어떤 정량적인 데이터가 그 특성이나 측정도구의 한계로 인해 측정할 수 없을 때 그 데이터를 대신 측정할 수 있는 대용물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를 프록시라고 한다(218쪽). 예를 들면 특정한 시기 이전의 고기후에서 산소 동위원소의 비율을 통해 기온을 추정하는 경우이다.

 

과학적 사고 습관의 필요성(10장), 과학이 아닌 것들(11장), 잘못된 정보와 비합리적인 결정의 문제(12장), 우리가 가져야 할 과학적 태도(13장) 등에서는 우리가 접하는 많은 정보들을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여러 자료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책 중간중간에 수학적인 계산 과정이 나와 있어 그 부분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학이 수학의 도움을 받아 자연현상에 대한 이론적 모형을 세우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그 정도의 수고로움은 필요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얼마 상승하는 위험하다는 것에 대해서 얼음과 물의 밀도를 비교해보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 사실 해수면 상승은 빙하가 녹는 것보다는 기온 상승으로 인한 바닷물의 팽창이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

  2. 우리 뇌는 패턴을 찾도록 진화했지만, 편견 없이 종합적인 데이터를 찾는 데는 미숙하고, 따라서 뇌는 객관적이고 공평한 패턴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냥” 패턴을 찾기 때문에 잘못된 패턴을 찾는 경우도 많다는 것.

  3. 과학의 세계는 증명이 관건이 아니다. 그것은 수학과 철학의 몫이다. 흔히 과학은 정확성을 추구하는 정밀한 분야라고 알려져 있지만, 과학은 측정과 설명에 내재적이고 불가피한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으며, 자연계의 모형을 세우고 검증할 그러한 불확실성을 통계를 통해 명시적으로 설명한다”(369). 불확실성을 통계를 통해 명시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과학은 자연이라는 실재에 조금씩 다가가는 하나의 근사(approximation)”[3]라는 말과 통하는 점이 있다. 

과학이라는 활동은 그릇된 생각을 교정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기 위한 여러 습관과 기법을 개발해냈다. 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마도 회의주의다. 많은 사람들은 회의주의를 꽤 부정적으로 여기지만, 그것이야말로 과학자의 최고의 자질이다. 누군가의 데이터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 한 측정이 어떤 외부적 효과에 의해 편향됐거나 혼동됐는지를 늘 살피는 것은 과학에서 필수적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모형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그 모형을 자연에 관한 더 나은 설명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잠정적인 근사로 인식하는 태도는 훨씬 더 필수적이다. 누군가의 데이터가 그가 세운 모형과 일치하더라도, 그때의 행복감은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철저하게 회의적으로 살피는 비평가에 의해 누그러져야 마땅하다. (585쪽)

 

과학자는 건전한 회의적 사고, 판단을 미루는 자세, 그리고 올바른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는 에드윈 허블의 말은 단지 과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에 어떤 분야에 속하든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지.

 

과학은 어렵다. 그러나 과학은 우리 일상에 많이 들어와 있으며,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내용도 많이 있다. 과학에 좀 더 친해져 보면 어떨까? 아니, 그 이전에,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 보는 시도를 해 보면 어떨까?

 

 


[1] 류충열(2020.04.01) 가짜 뉴스가 코로나 19보다 더 무서운 사회. http://www.hi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94

[2] 과학적 소양이란 개인적인 의사 결정, 사회적 문화적 사건에의 참여, 경제적 생산을 위해 필요한 과학적 개념과 과정에 대한 지식과 이해, 능력 등으로 정의된다. (NRC 저, 서혜애, 오필석, 옹재식 번역(2000). 국가과학교육기준. 서울: 교육과학사)

[3] 우종학(2017).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82쪽. 서울: 새물결플러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