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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과학-신학 대화는 인격신을 논할 수 있는가?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6. 4.

 

과학-신학 대화는 인격신을 논할 수 있는가?

 

장재호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

 

 

과학과 종교의 대화,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지난 수십 년간 영미권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여러 신학대학에 관련 과목들이 개설되고 있고, 과신대를 중심으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퍼져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여러 생산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대화의 난제도 종종 등장합니다. 그 중 하나가 창조/진화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신의 인격성을 논하는 일입니다. 즉 과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논의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해도, 진화 과정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조직신학/종교철학에서 신 존재를 논증하는 데에도 비슷한 난제로 등장합니다. 우주의 근본 원인, 도덕의 근원, 미의 근원을 신으로 간주한다고 해도, 이 신이 인격적 모습을 지닌 야훼 하나님임을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신을 종종 언급했지만, 그가 말한 신이 영원한 가치나 신비의 궁극적 근원을 의미하는 것이지, 구약에 등장하는 인격적인 신의 모습으로 간주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Steven Hawking)은 자연의 비인격적 법칙만으로도 지금의 우주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신론 과학주의자들은 보통 우주가 맹목적이고, 무모하며, 비인격적이라고 봅니다.

 

 

이에 대해 과학신학자 존 호트(John Haught)는 『과학과 신앙(Science and Faith)』 2장에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서도 신의 인격성을 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호트는 우주가 비인격적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주의자들을 향해, 과학이 인격적 신에 대한 믿음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과학을 근거로 인격적 신을 배제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모든 자연 과학이 정의상 신에 대한 어떠한 가정도 제외해야 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학만으로 인격적인 신을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주의 진화 과정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호트는 하나님의 인격성이 성경에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주목합니다. 그는 구약의 전통에서 하나님의 인격성은 언약의 체결과 이행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시고 그것을 이행하시는 내용이 성경에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에 주목하며 호트는 우주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로 보인다는 점에서 접합점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우주가 결코 과학주의가 단언하는 것처럼 본질적으로 비인격적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주의 드라마는 처음부터 인격성의 함양을 약속했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창조적인 결과를 미래에 허용함으로써 그 약속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고 봅니다.

 

과학이 우주를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로 묘사했다면, 신학은 그 드라마를 하나님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미래를 향한 여정으로 읽어냅니다.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인격적인 돌봄은 그분이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미래를 피조물에게 선사한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호트는 하나님이 곧 세계의 미래라고도 말합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는 것보다 더 인격적인 돌봄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온 피조물에게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심어주는 것보다 더 큰 인격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알게 된 우주는 장대한 역사와 엄청난 규모를 비인격적 표현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이 광대한 역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배제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연의 모든 진화 과정을 하나님의 직접 개입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지만, 자연을 향한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이해하는 신실함 속에서 우리는 구약에 등장한 인격적 하나님을 말할 수 있습니다.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광대하고 오랜 세월의 우주 앞에서 인간은 그저 사소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호트와 같이 우주의 시공간적 광대함이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생명과 감정이 등장하고, 언약을 체결하고 이행하는 속성을 포함한 모든 의식적인 인격성이 등장하기 위한 드라마의 프롤로그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리학, 천문학을 포함한 과학의 새로운 발전은 우리에게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크기의 우주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자연을 거대한 드라마로 이해하는 관점은 세계에 인격적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세계를 향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시는 신 이해를 제공합니다. 오늘도 아직 끝나지 않은 대 자연의 드라마 속에 인격적으로 함께 하시며, 미래의 약속으로 전 피조물들을 이끄시는 인격적인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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