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임범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부교수, 과신대 자문위원)

 

 

오늘 오전 4시간 동안 근무하는 병원의 코로나 선별진료소 당직을 섰습니다. 의사가 진료하는 것이 무슨 특이한 일이냐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병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임상진료 커리어는 1999년 인턴 수료 이후 중지되었습니다. 코로나19 감염 사태로 인해 20년 만에 진료실에 불려 나온 것입니다. 군의관 시절 사격훈련을 받으면서 군의관이 총을 쏴야 하는 상황이면 그 전쟁이 승산이 있는 전쟁이냐라는 농담을 했는데, 병리학자가 환자 진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면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어지간히 큰 위기가 닥친 것인데 그래도 결말은 해피엔딩에 가까운 듯 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굳이 pandemic이라는 무시무시한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이번 코로나19 감염사태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모든 사람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정말로 100년에 한 번 있을 사건입니다. 거주지 주변에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뉴욕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한국에서도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형태의 삶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나쁜 예감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 삶에 밀접한 관계를 갖는 두 가지 사회집단도 커다란 변화를 거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의료계와 교회입니다.

 

의료계는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찬사는 의료계가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조금 복잡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언론에도 노출되었지만 의사들(그중에서도 개원의사 중심)의 이권단체인 의사협회는 정부와 질병관리본부의 방역 방침에 격렬하게 반대하였고 그 과정에서 감염 관련 학술단체들과도 갈등을 빚었습니다. 학술단체와 충돌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의사협회의 태도는 의학적/과학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손익계산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의사협회가 평소 보건당국과 충돌하던 지점이 원격의료였습니다. 그간 현 의사협회의 집행부는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환자들이 원격의료를 행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진 병원으로 직행하기에 동네병원이 무너진다는 이유로 원격의료에 반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의사협회는 원격의료를 더 이상 거부할 명분을 잃었습니다. 지금까지 잘 막아왔던 원격의료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봇물 터지듯 시행되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의 시대에는 동네병원 의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원격의료를 더 활성화해야 할 상황이 되었기에 지금까지의 결사항전의 자세가 엉거주춤 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골적으로 특정 정당을 밀어줬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비례대표 공천에서는 버림 받은 의사협회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흥미롭기도 합니다.

 

 

저의 더 큰 관심은 교회입니다. 교회 역시 큰 변화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교계 언론에는 “공예배를 폐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글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런 류는 주로 보수신학으로 분류되는 신학대학 교수들과 대형교회 목사들이 쓴 글입니다. 한국에서 감염이 어느 정도 억제되어 진정되는 것과 반비례해서 올라오는 글들은 더욱 공격적이고 선동적이 되어 갑니다(저는 이것도 매우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올라온 글은 대구 이외의 지역에서 공예배를 폐쇄하는 것은 예배거부죄라고 주장하고 있네요. 한국교회, 그중에서도 특히 보수신학을 따르는 분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이미 진리를 깨달았고, 가장 순전한 진리를 우리 교단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교리에 반대하면 순전한 기독교가 아니다.”

 

개신교 내에 다양한 교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성경해석에 다양한 견해가 있음을 반영하고 이것이 부정적인 일만은 아닙니다. 또 자신이 지지하기로 택한 교단의 교리가 더 우월하다는 신념을 갖는 것도 무조건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신앙이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가치판단을 어찌 안 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이런 고민이 필요 없다고 가르치는 교회를 너무 가벼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대화와 토론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배제하는 태도이고, 성경해석을 넘어서는 영역까지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한, 답이 이미 정해진 영역이라고 확장하는 태도입니다. 의학과 과학에 근거해 판단해야 할 예배당 방역 조차도 교리의 범주에 넣고 타협 불가를 외치며 예배 거부 죄를 운운하는 사람들 말입니다(창조과학과 관련해서도 많이 보던 모습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개신교가 많은 질문과 도전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그간 한국교회에 유행하던 “예배에 목숨을 걸자”라는 구호가 예전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고, 예배당 출석이 예배의 필수 요건인가?라는 질문이 줄기차게 제기될 것입니다. 예배라는 행위, 설교와 성찬이라는 행위의 가치와 형태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이며 교회의 정체성이 어디서 유래하는가까지 재정립해야 하는 단계가 올 것입니다.

 

아울러 한국 교회에서 사실상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던 ‘성직자’의 권위도 크게 하락할 것입니다. 의료계가 원격진료로 인해 동네의원 경영이 어려워질 것을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온라인 예배, 온라인 설교로 인해 작은 교회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아예 온라인 목회를 선언하는 목사들이 등장했을 때 기존 교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는지도 궁금합니다.

 

교회내 권위 구조가 흔들린 이번 코로나 19 감염사태가 그간 소외되었던 ‘평신도’들이 자유롭게 고민을 드러내고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매우 보수적인 교단에 속해있는 관계로 자기 교단 조직신학자가 과학에 대해 가진 견해를 단순 참고하는 수준을 넘어 의사결정의 근거로 삼아버리는 청년들을 드물지 않게 보아온 저로서는 이번 사태가 의미 있는 지각변동을 일으켜 주기를 기대합니다. 이 지각변동은 그간 과신대가 해온 노력이 더 수월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리라는 것 역시 기대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