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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메노키오와 갈릴레오, 교회 권위의 위기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8. 27.

 

메노키오와 갈릴레오, 교회 권위의 위기

 

글_ 최종원 교수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과신대 자문위원)

 

 

1582년 이탈리아의 프리울리 지역에서 작은 방앗간을 하고 있던 메노키오는 이단 혐의로 고발되었다. 고발 당시 51세였던 그는 흙, 공기, 물, 불이 뒤섞인 혼돈의 상황에서 마치 치즈에서 구더기가 나오듯이 물질이 생성되었다는 우주론과 창조론을 주장했다.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이단 심문관에게 고문을 당한 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여 얼마간의 옥살이를 한 후 석방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메노키오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 십 수년이 지난 1599년 추기경 산타 세베리나는 메노키오를 ‘무신론자이자 상습범’으로 규정하고 재조사를 명했다. 세베리나는 메노키오의 사안이 심각하고 중대하므로 엄중하게 처벌해 본보기를 삼아야 한다는 것이 교황의 확고한 의지라고 밝혔다. 결국 메노키오는 16세기의 끝자락인 1599년 11월과 12월 사이 어느 날, 이단 혐의로 처형되었다. 그는 고문을 당하며 그의 사상에 영향을 준 배후를 묻는 질문에 끝끝내 “오직 저 스스로 읽었을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이탈리아 역사학자 카를로 진즈부르그(Carlo Ginzburg)는 1976년 이 재판에 대한 기록을 《치즈와 구더기》라는 책으로 남겨 그의 삶을 역사 속에서 복원하였다.

 

메노키오보다 약 30년 후에 프리울리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46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피사에서 갈릴레오(1564-1642)가 출생했다. 그는 가톨릭교회가 전통적으로 주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 즉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순환한다’는 천동설을 배격했다. 그는 이 때문에 가톨릭교회와의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1615년 교황청 종교재판소는 갈릴레오의 주장이 트리엔트 공의회의 주장에 배치되며 프로테스탄트주의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혐의를 씌운다. 흥미롭게도 이는 메노키오 재판에 적용된 혐의와 동일하다.

 

그 후 10여 년 넘게 평온한 일상을 누리던 갈릴레오는 1630년 《두 가지 주요 태양계 구조설에 관한 대화》를 저술하여 다시 한 번 천동설을 비판하고 지동설을 옹호했다. 1633년 교황청은 다시 갈릴레오를 이단 혐의로 종교재판에 회부하여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 후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갈릴레오 사후 그의 추종자들이 이 말을 지어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긴 하다).

 

 

약 30년의 간격을 두고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았던 두 이탈리아인의 삶,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민중과 당대 엘리트 과학자라는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요소가 적지 않다. 신분이나 사회적 명성 등을 비추어볼 때 동시대 같은 공간에 살았다 하더라도 동선이 겹치기 쉽지 않았을 이들을 하나로 엮어 주는 공간은 종교재판소이다. 그 공통된 내용은 당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생성된 새로운 사상과 과학의 주장에 대한 교회의 탄압이다. 갈릴레오는 그렇다 쳐도 일개 지방의 방앗간지기에 불과한 메노키오의 주장에 대해 교황청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삶과 주장이 개인의 돌출적인 주장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것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개혁을 통해 독점적인 지위를 상실한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사고와 과학 발전의 도전으로 권위의 위기를 겪는다. 그 결과, 가톨릭교회는 제도 교회의 전통뿐 아니라 성경의 권위를 재해석한다. 흔히 보수 프로테스탄트가 독점한 것으로 비춰지는 성경 영감설에 대한 본격적인 신학적 담론이 다름 아닌 이 시기 가톨릭교회로부터 비롯되었다. 스페인의 도미니크회 수사 멜키오르 카노(1509-1560)는 성경의 축자영감설 혹은 완전영감설을 주장했다. 역시 도미니크회 수사인 도밍고 바네즈(1528-1604)도 성령께서 성경의 모든 내용을 감동하셨을 뿐 아니라, 글자 한 자 한 자까지도 말씀하시고 암시하셨다고 주장했다.

 

17세기 유럽 교회가 겪은 위기는 교회 중심의 세계관이 무너져 내리면서 생긴 권위의 위기이기도 하다. 교회 자체적으로 반복되는 윤리적 위기와 함께 과학 발전이 던지는 신학의 위기도 있다. 메노키오나 갈릴레오를 대했던 교황청의 태도는 그 시대 종교의 과학에 대한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7세기 근대과학의 공세 앞에 가톨릭교회 역시 성경의 무오설과 교회의 전통이라는 논리로 대응했다. 천동설을 방어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이들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종교의 인식 범위 안에서 과학을 수용하겠다는 지극히 편협한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이 권위의 위기를 오롯하게 21세기 한국 교회가 경험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반지성주의와 유사지성주의로 드러나는 것 같다. 반지성주의는 다른 학문 분야의 정합성을 추구하는 시도를 포기하고 기존의 신앙고백적 입장만을 강화하는 것이다. 유사지성주의는 적극적으로 교리와 과학이 정합성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창조과학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도전받을수록 더 확고한 것에 집착한다. 간편하게 ‘진리 대 비진리’ 구도를 만든다. ‘창조 대 진화’라는 이 구도는 ‘신앙 대 불신앙’이라는 구도로 손쉽게 치환된다.

 

21세기 한국 교회 현장에서 창조와 진화와 관련해 다른 목소리를 내면 ‘성경을 믿지 않는다. 진화론자다’라는 식의 규정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을 수 있는 것으로, 논리로 설명해 낼 수 없는 신비를 설명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가정한다. 신비가 인간의 이해로 다 설명될 수 있다면 그건 신비가 아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당면한 과학의 도전으로 인한 위기를 교리에 대한 강조나 유사 과학 신봉으로 도피하는 것은, 진지해 보이긴 하나 어설픈 대응이다.

 

한국 교회의 창조-진화 관련 논쟁은 성경해석 방법이나, 신학 혹은 과학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권위와 권력과 관계된 문제이다. 교회나 신학계에서 창조-진화 논쟁을 제기하는 데에는 신학의 권위에 대한 위기의식과 더불어 신적인 교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주로 권위의 위기를 겪는 보수 신학과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진화론을 반박하고 창조과학을 묵인하거나 옹호하는 데서 그 성격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자신들이 설정한 신학적 틀 안에서 다른 것에 대해서는 눈을 막고 귀를 닫는 것은 지적인 오만이자 태만이다. 종교에 초월의 영역이 개입된다고 해서 맹목이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과학의 문제를 접근하는데 수용할 수 없는 선을 미리 설정해 놓고 토론하면 의미 있는 논의를 끌어낼 수 없다. 아카데믹한 논쟁의 기초는 오류의 가능성에 대한 개방성과 열린 결론이다. 우리는 이런 태도를 ‘학문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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