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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나는 나의 기억인가?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12. 1.

 

나는 나의 기억인가?

 

김성신 교수 (한양대학교 심리뇌과학과, 과신대 자문위원)

 

 

뇌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하니 주위에서 필자에게 치매에 대한 질문을 많이들 하신다. 2-30대 젊은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40대 이상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고 (물론 필자도 그렇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나 부모님을 둔 자녀들은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치매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다. 필자도 박사학위 과정 때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기억과 학습에 대한 뇌과학적 기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지만 사실 과연 인간이 치매를 정복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지 궁금하다. 현재까지 치매의 원인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고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도 발달했지만 치매를 치료하는 방법은 요원하기만 하다. 누군가 치매치료제를 만든다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어쩌면 인류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동시에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치매가 그토록 두려운 질병인 이유는 우리의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기억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나’ 라는 사람에 대한 정체성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경험한 사건들에 대한 기억의 총합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류가 기억의 본질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를 하게 된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1950년대 초 환자 H.M.으로 알려진 헨리 몰라이슨 (우연히도 이 원고의 마감일인 12월 2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마지막 날이다) 은 당신에는 그 기능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금은 기억형성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뇌의 구조물로 밝혀진 해마체를 제거한 수술을 받은 뒤로 순행성기억상실증을 앓게 되었다. 그에 대한 50년 이상 이어져온 수많은 연구는 그가 과거의 기억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나 새로운 기억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림  1.  헨리 몰라이슨  (Henry Molaison, 1926-2008).  환자  H.M.  으로 알려진 그는 뇌에서 양측 해마체를 제거한 수술을 받은 뒤로 순행성기억상실증을 앓게 되었다 .  그의 수술을 집도한 스코빌 박사의 외손자인 저널리스트 디트리치는 환자  H.M.  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하였다 .

 

브렌다 밀러 (Brenda Milner, 1918-현재, 무려 102세나 되는 여성 과학자) 가 그에 대한 실험을 통해 발견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순행성기억상실증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운동 기술을 습득하고 기억하는 것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아래 그림에서처럼 거울로 비치는 별의 모양을 따라서 그리는 운동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그는 조금씩 그 능력이 향상되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는 이 과제를 이전에 수행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에게 실험을 설명하는 사람은 매일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고 과제도 처음 하는 과제였다. 심지어 그는 30년 넘게 그와 함께 연구를 했던 브렌다 밀러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운동기술은 꾸준히 향상이 되었던 것이다. 즉 해마체를 제거하였기 때문에 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억은 사라진 반면 그의 운동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점점 운동 기술이 향상되었던 것이다. 이 실험 이후 그에 대한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의 추가 연구를 통해 인간의 뇌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다른 기억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처럼 그에 대한 50여년의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기억과 학습에 대한 해마체의 기능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가능해졌다. 그는 제대로 된 과학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뇌과학의 발전에 혁명적인 공헌을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림 2. 브렌다 밀러의 실험. 환자 H.M. 의 해마체가 제거되었음에도 운동기억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이를 통해 인간의 뇌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다른 기억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후로 천문학이 망원경의 발명을 통해 급속도로 발전하였듯이 뇌과학은 인간의 뇌를 수술하지 않고 관찰할 수 있게 한 핵자기공명영상 (MRI)의 발명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더 나아가 90년대 초 뇌혈류 흐름을 통해서 변화되는 혈액 내 산소포화도를 측정하여 뇌의 활동을 매우 높은 공간 해상도로 관찰할 수 있는 기능성핵자기공명영상(fMRI)의 발명은 인지신경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확립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제 인류는 살아있는 인간의 뇌의 인지기능을 뇌의 활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심지어 영적인 부분조차도 뇌가 결정한다는 소위 ‘뇌결정론자’ 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필자 역시 연구자로서의 기본입장은 인간의 행동을 뇌의 구조나 활동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가령 학습능력의 개인차를 뇌이미징을 통해서 예측하려고 하는 것도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이다. 최근 필자가 본 논문에는 뇌의 측두정엽 회백질의 용량이 클수록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는 결과가 있었는데 (상당히 높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임) 이는 뇌의 구조가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개인의 인격을 결정한다는 흥미로운 결과이다. 또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싸이코패스들의 전두엽의 활동이 현저하게 낮게 관찰되는 것도 보고가 되었고 최근에는 정치적인 성향 (보수적 또는 진보적) 도 뇌의 활동을 통해 예측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졌다.

 

사실, 뇌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19세기에서부터 구체적으로 출현하게 되었는데 철근이 머리를 관통해 전두엽을 손상시킨 사고를 당한 유명한 피니어스 게이지에 대한 연구가 그에 대한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이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 성격이 괴팍하게 바뀌었는데. 그 이후로도 앞서 언급한 환자 H.M.에서처럼 뇌의 특정영역이 파괴되면 사람의 기억뿐만 아니라 행동 패턴, 인격 또는 성격도 바뀌는 사례가 보고 되면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도 결국은 뇌가 결정한다는 ‘뇌 결정론’의 주장이 많은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그림 3. 피니어스 게이지 (1823-1860). 철도건설현장에서 쇠막대기가 관통하는 사고 (1848년) 직후 의식에는 영향 받지 않고 10주 후 회복 하였으나 괴팍한 성격으로 바뀜

 

현대 뇌과학은 더 나아가서 우리의 뇌의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기억과 관련된 실험 중 MIT의 도네가와(Susumu Tonegawa, 1939-현재) 교수는 생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광유전학 (optogenetics)이라는 방법으로 특정 기억을 삭제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아직까지 불가능하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러한 실험들이 가능해져서 인간에게 적용되어 우리의 기억을 조작한다면 어떤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도 우리의 기억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할 때 누군가에게 특정한 믿음을 심어주거나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가올 미래는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기억과 학습의 능력을 모방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인공지능은 효율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반드시 인간의 뇌의 작동원리를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고 사실 실리콘 반도체를 기반으로 구현되는 컴퓨터 시스템이 유기물인 뇌의 기능을 동일하게 구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먼 미래에 뇌의 기능에 대한 대부분의 사실들이 밝혀지고 이를 인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뇌결정론자들의 말처럼 인간의 의식과 자유의지 또는 우리가 영혼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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