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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특별기고] 바이러스의 출현과 과학신학의 신정론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3. 5.

 

바이러스의 출현과 과학신학의 신정론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하나님께서 바이러스도 창조하셨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창조는 ‘좋은(בוט, 창 1:4, 10, 12, 18, 21, 25, 31)’ 창조이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좋은(선한) 창조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면서도 쉬운 해석이 하나님께서 바이러스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고 보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바이러스가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존 파이퍼(John Piper)는 코로나가 우리를 회개로 초대하기 위해 준비된 하나님의 우레와 같은 신호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일부 목사들도 코로나 19를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했다. 바이러스가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약자들에게 특히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사용해 불특정 다수를 죽게 만드시는지를 설명하기 힘들다.

 

하나님께서 전염병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내용이 성경에 종종 등장한다. 모세가 출애굽 하기 전 이집트에 내린 10가지 재앙 중에 전염병도 포함된다(출 9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율법 중에도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염병을 보낸다는 내용이 있다(레 26:25, 신 28:21). 실제로 하나님께서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전염병으로 몰살시키려 했지만, 모세의 간청으로 돌이키기도 하셨다(민 14장). 또한,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인구조사를 함으로써 전염병의 심판을 받았다(삼하 24장, 대상 21장).

 

하지만 고통을 잘못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하지 않는 성경 본문들도 있다. 시편 44편의 기자는 고통을 인과응보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시 44:17-19).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않았고, 주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어도 고통이 올 수 있다고 고백한다. 즉 인간에게 닥치는 어려움을 모두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욥기는 고통을 심판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강조한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통을 인과응보로 해석하지만(“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욥 4:7), 하나님은 자신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신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기에, 하나님의 사역을 인간이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일”이며 동시에 “깨닫지도 못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욥 42:3).

 


 

이처럼 성경은 고통의 원인에 대해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으므로,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지금의 상황에 문자적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 특정 본문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성경 전체와 맥을 같이하는지를 살펴야 하며, 성경 본문의 역사적·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학 시대에 맞는 신정론을 어떻게 전개할 수 있을까? 과학신학에서는 인간뿐만 아니라 전 피조물이 진화의 과정에서 겪는 고통의 문제에 집중한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진화 과정에서 수많은 동물이 고통을 겪고 있다. 또한 살아 움직이는 지구가 일으키는 화산, 지진, 쓰나미, 폭우 등으로 인해 많은 고통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과학신학자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신정론을 전개한다.

 

 

 

첫째로, 하나님의 창조는 피조물이 스스로 자신이 되도록 충분한 자유를 부여하는 창조라고 본다. 존 호트는 하나님의 창조를 “내버려 두는(letting-be)” 창조로 설명했는데, 이것은 ‘사랑’의 하나님은 정의상 피조물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가 되도록 설득하신다는 의미이다. 이 경우, 악과 고통의 문제는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자유를 부여받은 피조물에게 있는 것이다. 폴킹혼(John Polkinghorne)은 현대 과학으로부터 제기된, 전제군주 같은 모습이 배제된 이신론적 하나님(Deistic Absentee Landlord)에 대한 이해가, 큰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계속해서 피조물을 돌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더 잘 드러내 준다고 주장한다.

 

둘째로, 하나님이 피조물과 함께 고통을 당하신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서 자신을 비우신 케노시스(kenosis, 빌립보서 2장) 사건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피조물의 고통에 공감하시며, 고통을 함께 당하신다고 보는 것이다. 머피(George L. Murphy)는 십자가 사건을 창조에 연결해, 자연에서의 고통과 죽음을 하나님의 자기 비움으로 설명한다. 피콕(Arthur Peacocke)은 하나님께서 세계의 창조 과정 안에서, 창조 과정과 함께, 창조 과정 아래에서 고통을 당하신다고 주장한다.

 

셋째로, 고통을 조화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지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악으로 보이는 부분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사우스게이트(Christopher Southgate)는 진화의 역사를 인간이 등장하기 한참 전에 오랜 시간에 걸친 창조의 밝은 면(관용, 용서)과 어두운 면(이기심, 사악)이 공존하는 이야기라고 본다. 크리간(Nicola Hoggard Creegan)과 호트는 자연선택으로 말미암은 피 흘림과 고통이 진화 과정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진화의 “어두운 면(dark side)”이라고 보았다. 마크 해리스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 가운데 고통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이것을 창조의 “그늘(shadow side)”이라고 불렀다. 즉 고통은 없애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조화로운 세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넷째로, 진화 과정에서의 고통은 새로운 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으로 본다. 태초의 창조는 완성된 창조가 아니며, 따라서 하나님은 지금도 창조 중이고, 종말의 때에 새로운 창조를 통해 죽음과 고통이 없는 세계를 완성하신다는 것이다. 샤르뎅(Pierre Teilhard de Chardin)은 진화 과정이 그리스도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고 보고, 그리스도를 진화 과정의 정점, 즉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라고 불렀다. 몰트만(Jürgen Moltmann),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테드 피터스(Ted Peters) 등 많은 학자가 자신들의 신학을 전개하며 미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새로운 창조의 관점에서 현재의 고통을 설명하는 것은, 글로리아 샵(Gloria L. Schaab)이 지적한 것처럼, 미래에 중점을 둔 나머지 과거와 현재의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미래에 위치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따라서 과학신학 입장에서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한 대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 해로운 바이러스를 만드셨다기보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스스로를 실현해 가도록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셨고, 그 자유의 일환으로 바이러스가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당하는 피조물과 함께 고통을 당하시는 분이며, 그들을 위로하시는 분이시다. 나아가 인간에게 해로운 바이러스라 하더라도 온 우주가 최상의 상태로 존재하기 위해 그 바이러스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해로운 바이러스도 하나님의 계속된 창조 과정 중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 때에 바이러스로 인한 고통과 눈물을 닦아주실 것을 소망할 수 있다. 새로운 창조 때에는 새로운 물리·화학 법칙들이 작용할 것이기에, 현재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지금과는 다른, 죽음과 고통이 없는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글 | 장재호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조직신학(Ph.D), 현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

 

 

 

이 글은 2020 감신대 포럼 "코로나 시대의 신학적 성찰"에서 장재호 교수님이 발표한 글 "바이러스도 하나님께서 만드셨는가?: 과학신학의 관점에서 본 바이러스의 출현과 신정론" 일부를 편집했습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bit.ly/2N3sb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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