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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새로운 천사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6. 8.

 

헤겔 철학의 푯대는 진보다. 개인과 민족과 국가 그리고 세계사의 행보는 프로메테우스적이지 않고 날갯짓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같다. 역사는 불을 훔친 죄로 독수리에게 끊임없이 반복해서 간을 쪼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나 발이 묶인 채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에 처한 시지푸스가 아니라 어둠의 현실 속에서 과거를 등지고 미래의 새로운 빛의 세계를 내다보며 비상을 시작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다. 다시 말해 역사는 동일한 질서의 영원한 회귀와 원운동을 가리키는 것이라 오해할 수 있으나 생동하는 움직임인 생성과 소멸 그리고 새로움이 등장하는 원운동이며 진보와 발전을 향해 고양되어 간다. 

 

나는 헤겔의 역사관에 불만이 스멀거린다. 헤겔의 역사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향해 부단히 날갯짓을 하기에 분주하다. 과거는 지나온 시간 속에 묻어두고 현재는 지나쳐 가는 터널일 뿐이다. 하나의 원에는 수많은 원이 여러 단계를 거쳐 이루는 것이며 우리의 삶은 이러한 과정에 있는 작은 원들이다. 오늘 우리의 한 걸음은 무엇인가 치명적인 매혹으로부터의 이끌림으로 도달하기를 욕망하지만, 당대에는 계속 지연되는 도착점, 그러니까 제논의 화살이다. 왜냐하면, 정상까지 도달하여 날갯짓을 다 마친 후에 이마의 땀을 식히며 시간을 뒤돌아 볼라치면 아직도 올라야 할 끝나지 않은 계단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헤겔이 말하는 역사의 종말, 당대의 인간은 언제나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중간지대만 살다 간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성이 다스리는 이성적인 세계, 신적 정신과 일치하는 세계, 곧 모든 인간의 자유와 정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메시아적 기다림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미래를 향한 갈망과 기다림이라는 메시아니즘에 붙들려 사는 존재들이며 미네르바의 부엉이들이다. 

 

앙겔루스 노부스(angelus novus), 파울 클레(1920)

 

이에 반해 발터 벤야민은 과거에 시선을 두고서 '지금 여기'의 구원을 말한다. 파울 클레가 그린 앙겔루스 노부스(새로운 천사)는 과거를 응시한 채 미래를 등지고 날갯짓을 한다. 천사는 자기가 꼼짝 않고 응시하던 어떤 것으로부터 아스라해진다.  우리들의 수많은 사연이 놓여 있는 곳, 희망을 향해 던져 놓은 약속들, 얼굴을 마주 보며 푸근하게 웃어주던 행복한 순간들이 과거에 있다. 반질거리는 물살이 빗살을 긋느라 부드럽게 일렁이다가 그 위를 낮게 날개짓하며 나는 물새들의 요란함에 살짝 출렁이기도 했던 평온한 오후가 선물처럼 과거에 한 점을 찍는다.

 

새로운 천사는 이러한 삶들과 기억들의 잔해더미 앞에서 보석을 찾듯이 간절하게 날갯짓을 하며 그곳을 헤집는다. 그러나 미래라는 낙원에서 폭풍이 어찌나 거세게 불어오는지 천사는 날개를 펼친 채 우두커니가 된다. 이 폭풍의 이름은 '진보'다. 벤야민은 역사의 미래가 아닌 지금이 바로 메시아가 도래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 말하려 한다. 과거에 버려진 것들 속에 희망의 원석을 찾아내 그것을 여기에서 우리가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메시아는 그러니까 지금, 당대를 살고 있는 우리인 것이다. 거머쥔 두 개의 창 중 하나를 던짐으로써 우리는 우리 삶의 전쟁기계로 등극해야 한다. 

 

동시대성을 사는 우리는 어찌 됐든 날갯짓을 해야 한다. 동시대성이란 무엇인가?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들어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시대성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과거 어느 한순간도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사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새로운 천사이며, 낚싯줄에 걸린 과거의 것들을 재료 삼아 미래에서 오는 밧줄을 부여잡고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내야 할 몫이 우리에겐  있다. 

 

또한 생명의 본성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담쟁이가 벽을 타고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려는 지독한 미래에 대한 갈망이 있듯이 생명은 뒤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미래를 앞질러 가는 지향성이 있다. 그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모호하고 불투명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새날을 향해 힘껏 날갯짓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들이다.

 

 


 

글 | 백우인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새물결플러스에서 과학 관련 신학책을 소개하는 튜터로 활동하고 있다. 과신VIEW에서는 과학과 예술과 신학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글로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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