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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와 기독교] 7. 체르노빌 1986: 다른 가능성은 존재한다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7. 20.

체르노빌 1986 Chernobyl: Abyss,  2021

액션, 스릴러 / 러시아 연방 / 136분 / 2021.06.30. 개봉
감독 : 다닐라 코즐로브스키
주연 : 다닐라 코즐로브스키(알렉세이 카르푸신), 옥사나 아킨쉬나(올가 사보스티나), 필리프 아브데예프(발레라), 니콜라이 코작(보리스)

 

우리는 내일 아침 태양이 뜰 것을 의심치 않는다. 태양은 어제까지 어김없이 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이 들 때 내일 아침 일어날 것을 믿는다. 어제까지 그래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거 경험은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데이비드 흄은 이것을 ‘균일성의 원리’라고 말했다. 흄은 어떤 사람이 4개의 달걀을 깨뜨렸을 때 싱싱한 것을 발견했다면 당연히 5번째 달걀도 싱싱할 것이라 확신할 것이라 한다. 하지만 흄은 경고하고 있다. 5번째 달걀이 상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흄은 과학자라면 ‘균일성의 원리’를 백 퍼센트 확신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다른 가능성은 존재한다.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4분경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원자로가 폭발했다. 사고 당시 담당자들은 단순화재로 인식하고 소방서에 화재 진압 요청을 했다. 1차에 소방관 14명이 출동했고, 이어 보충 인원이 추가되어 새벽 5시경 외부 화재는 진압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소방관들에게 이상 반응이 생겼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과 피부의 표면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방사선 피폭이 일어난 것이다. 소방관들은 모스크바의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모두 사망하였다.

 

소방관들의 피폭 사실을 알게 된 체르노빌 관계자들은 상부에 보고했고, 모스크바는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소집한 비상 위원회에서 역시 담당 장관조차 별일 아니라고 보고했다. 단순 화재 사고로써 며칠 내로 수습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반면 소방관들의 피폭 사실을 알고 있던 레가소브 교수는 이것은 단순사고가 아니라 원전이 폭발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레가소브 교수가 제시한 근거는 흑연으로 추정되는 검은 물체들이었다. 소방관들은 흑연에 접촉되었고 피폭이 일어났다.

 

레가소브 교수는 흑연은 우라늄이 원자로의 덮개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며 이것이 외부에 발견된다는 것은 곧 우라늄 원자로의 폭발 및 균열이 일어난 증거라고 주장했다. 자리를 뜨던 고르바초프는 회의를 다시 주재하고 긴급 대책반을 구성하여 사고 현장에 급파한다. 물론 레가소브 교수는 담당 장관과 함께 현장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레가소브 교수의 주장 이전에 담당 소장과 장관은 왜 단순사고라고 확신했을까? 자신들의 실수를 은폐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이들은 흄이 말한 균일성의 원리에 함몰되어 있었다. 그들은 원자로에는 2중, 3중 안전장치가 되어 있었고 이제까지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원자로 폭발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도 자신들의 과학적 지식 및 경험에 근거하여 주장한 셈이다. 그러나 원자로는 폭발했고 원자로의 노심을 감싸고 있던 흑연이 뒹굴었고 방사능은 걷잡을 수 없이 실시간으로 유출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영화는 이후 방사능 유출 및 원자로 제2의 폭발 위기를 극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려나간다. 1차로 출동한 소방관들의 헌신은 급한 불을 끄는 희생적 행동이었다. 이어 원자로 온도를 낮추기 위한 냉각수의 유입을 영화는 표현한다. 전력의 차단 때문에 냉각수 밸브는 수동으로 작동해야 했고, 이 일에 3명의 대원이 목숨을 담보로 오염된 원자로 근처로 향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들은 급기야 밸브를 작동하는 데 성공했고 2차 폭발은 막을 수 있었다.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당연한 예상과는 달리 3명은 이후 상당기간 살아남았다고 한다.

 

암흑의 순간에 빛은 더욱 빛나고 위기의 순간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했듯이, 지상 최대의 끔찍한 원전 폭발 사고에서 이름 없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1차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들, 피폭의 위험을 알지만 현장을 지도했던 레가소브 교수, 원자로에 접근하기 위해 땅굴을 파는 일에 동원된 광부들, 지역 주민들을 대피하기 위한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원자로의 피폭된 흑연을 치우는 일에 헌신한 무명의 군인들, 이들로 인해 체르노빌은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만약 제2의 폭발이 일어났다면, 우크라이나, 벨로루시는 물론 인근의 헝가리, 체코, 핀란드, 독일 등 유럽 전역에 걸친 방사선 피폭이라는 끔찍한 재앙이 일어날 수 있었다.

 

영화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경고한다. 과학과 기술의 영역에서는 백 퍼센트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탈리아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도 자신의 저서에서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세상을 과학적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야말로 과학적 사고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 이것은 자신이 확언한 내용까지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신의 신념은 물론 가장 확실했던 신념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시험대에 올리는 능력이다.”(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쌤앤파커스)

 

그렇다. 우리는 체르노빌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또한, 일본의 후쿠시마 사건에서 동일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지식 내에서 가장 안전한 설계를 확신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는 지진과 해일은 일어났고 후쿠시마 원전을 초토화했다. 균일성의 원리가 무너지는 순간을 전 세계가 목격하는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해야 한다. 원자력은 우리 삶에 유용한 도구이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되돌릴 수 없는 끔찍한 재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하기에 유럽의 국가들은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닐까? 비용을 들여서라도 만약의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는 길이 탈원전이기 때문 아닐까? 다닐로 코즐로브스키 감독의 예언적 묵시가 영화관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경종을 울리는 메가폰이 되기를 희망한다.

 


 

글 | 김양현

하울의 움직이는 아빠로 방송과 잡지에 영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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