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신뷰/기자단 칼럼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읽고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8. 6.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물리학자로서 1939년 태어났습니다. 그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천천히 읽으면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관해서 만난 학자 중 가장 폭이 넓고 깊은 학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물리학의 길, 동양 신비주의의 길, 두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차례대로 자세히 그러나 일반인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알기 쉽게’라는 것은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독자층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는 합니다만, 과신대 회원분들은 다 관심 있는 독자분들이기 때문에 ‘알기 쉽게’라고 쓸 수 있겠습니다.

 

필자 자신이 물리학자이기 때문에, 1부에서 자세히 설명된 상대론과 양자역학에 이르는 현대 물리학의 발자취는 아주 전문적이면서도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2부의 동양 사상에 대한 설명에서 프리초프 카프라가 힌두교, 불교, 노자, 공자 등을 아주 깊이 있게 알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매우 놀라게 됩니다.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인 두 사상을 꿰뚫고 있는 서양의 물리학자가 이 두 세계를 연결하여 설명하자 정말 놀라운 깨달음이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동서양의 만남으로 이토록 온전한 전일성에 가까운 세계관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럼, 남북의 만남으로는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이 책을 1975년에 출판했습니다. 이 책의 영문 제목은 “The Tao of Physics”입니다. “물리학의 도”라는 특이한 제목입니다. 정통 물리학자가 동양 철학의 “도”를 책 제목으로 삼은 것 자체가 서양의 정신세계에 일대 충격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다음으로 읽고 싶어진 책은 그의 1993년 공저 Belonging to the Universe: Explorations on the Frontiers of Science and Spirituality입니다. 우리말로는 “그리스도교의 아주 큰 전환”입니다. 그 이유는 이 1993년의 저서에서 프리초프 카프라는 “과학과 신학의 관계”를 아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신학, 특히 기독교 신학의 패러다임 전환을 본격적으로 소개 내지는 제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게도 이 후자의 책의 핵심을 이루는 사상들 여섯 가지가 프리초프 카프라의 첫 저서인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서 공유합니다.

 


 

과학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여섯 가지 사고(411~420쪽 요약)

 

<1> 부분과 전체의 관련성: 양자역학으로 인한, 환원주의에서 전일론으로 전환. 부분들의 속성을 통해서 전체를 이해하는 동시에 부분들의 속성은 전체의 역동성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부분들은 더 이상 명확히 규정할 수 없음. 어떠한 부분도 존재하지 않음. 우리가 부분으로 부르는 것은 안정되어 있는 하나의 양태(pattern)에 불과함. 동양사상의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사상과 일맥상통함.

 

<2> 구조(structure)를 통한 사고에서 과정(process)을 통한 사고로의 변화: 과정이 일차적이며, 모든 구조는 근원적인 과정이 드러난 것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질량은 에너지의 한 형태임. 물질적인 실체의 개념과 기본적인 구조의 개념을 과학에서 제거함.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계속적으로 서로 다른 것으로 변화하고 있는 역동적인 양태들, 즉 연속적인 에너지의 율동임. 동양 신비주의 전통들과 같음. 시바의 우주적 춤의 이미지. "당신이 무엇을 보느냐는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3> 관찰자의 결정적 역할(양자역학 하이젠베르크) - "자연에 대해서 말하려면 반드시, 동일한 시간에 우리 자신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객관적 과학에서 인식론적 과학으로의 전환.

 

<4> 과학은 확고한 기반 위에 세워진 든든한 건물이 아니라, 어떤 기본적 실재, 즉 어떤 기본적인 상수, 법칙, 방정식 따위가 없는 관계들의 그물이다(제프리 츄(Geoffrey Chew)의 부트스트랩(구두끈) 이론). 자연은 물질로 된 기본적인 토막처럼 어떤 기본적인 실재로 환원될 수 없으며 자기모순이 없음을 통해서 완전히 이해되어야 함. 사물들은 상호 모순이 없는 관계들에 의해서 존재하며, 모든 물리학은 그 구성 성분들이 서로 모순이 없어야 하고, 자기들끼리 모순이 없어야 한다는 요구를 따라야 한다. (대승) 불교의 기본적, 보편적 사고.

 

<5> (궁극적) 진리로부터의 근사적인 (진리) 기술로의 전환: 과학은 결코 완전하고 명확한 이해를 제공해 줄 수 없다. 과학자들도 진리(기술과 기술된 현상 사이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이 진리라는 의미에서)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들은 실재에 대한 제한적이고 근사적인 기술들을 다룬다. "과학은 잠정적인 대답을 통해서 자연 현상의 본질에 더욱 깊이 도달하려는 일련의 더욱 미묘한 물음들을 향해 나아간다."(루이 파스퇴르)

 

<6> 인간을 포함하고 있는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태도로부터 협조와 비폭력의 태도로의 전환. 17세기 프랜시스 베이컨의 가부장적 남성적 세계관과 마녀 재판식 자연관의 부정. 생태학적 세계관. "자연의 질서를 따르려는 자는 도의 흐름을 따라 흘러간다."

 


 

이러한 여섯 가지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소개하면서, 프리초프 카프라는 이에 따라 우주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이 탄생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제 발견은 공간, 시간, 물질, 대상, 인과 등과 같은 개념들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러한 개념들은 우리들의 세계의 경험 방식에 매우 기본적인 것이므로 그 개념들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물리학자들이 어떤 충격을 받았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로부터 새롭고도 아주 다른 세계관이 나왔고, 그것은 현재의 과학적 탐구에 의하여 아직도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79~80쪽)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프리초프 카프라는 떼야르 드 샤르뎅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프리초프 카프라와 떼야르 드 샤르뎅은 둘 다 기독교 신학(사상)의 지평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설득하고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두 분의 생각의 공통점은 인간과 우주의 재발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같이 부족한 존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의 교리로서 박제화시킬 수 없는 생명력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오늘날 인류의 일부 지성들은 인류의 모든 사상이 "인간론"에 모여들고 있고, 그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물질세계를 통해서 인간과 만물과의 통일과 인간의 생사 너머, 또는 존재 너머의 세계까지 들여다보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서양 과학과 동양 철학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위대함이 일상화, 제도화, 문화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라는 칭송을 받은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업적은 칭송하지만, 그의 전쟁철폐와 군비축소를 통한 평화주의 운동은 아직도 인류 사회에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문제입니다. 우리가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많은 "있음직한" 이야기들을 하지만, 항상 아쉬운 것은 그러한 담론의 일상적 적용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아쉬움이 해소되는 것은 항상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 꿈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함께 이 길을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글 | 최성일 (ultracharm@naver.com)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과신대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과알못의 과학여행기"를 연재했으며, 과학 고전을 통해 과학적 방법론과 세계관을 소개하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