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강가에 울려 퍼지는 볼레로 - 이사야 43장
이스라엘 백성의 인생 오디세이는 한 마디로 불안과 안심,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의 진동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고요.
이사야 42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과 포로생활 가운데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탄원도 듣지 않고 절망적인 상황에 그들을 계속 가두어 둔다고 불평을 하지요. 전쟁과 포로, 억울함과 분냄, 절망과 저항 그리고 원망 속에서 그들은 묻고 또 묻습니다. 야훼 하나님, 그분이 누구시지? 그는 어떤 하나님이시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지? 우리는 누구지? 묻습니다. 묻는 것은 어찌 보면 존재의 몸부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음은 존재의 근원과 이유를 찾아 나서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은 하나님께서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못 듣고 못 보는 자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창조이야기를 만날 때면 스페인 무곡 볼레로를 듣는 것 같습니다.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는 관현악 편성을 달리해서 선율을 반복적이고 점차 고양하는 끈질긴 힘이 있습니다. 작은 북의 반복적인 리듬 위로 길고 긴 선율이 반복되고, 이 선율이 반복될 때마다 새로운 악기들이 더해지면 선율은 그 무게에 못 견뎌 결국 무너지는 형태입니다. 점점 심장으로 파고들어 심장이 분출해버릴 것 같은 진동수의 볼레로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고 강력한 하나의 선포로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을 전달하는 방식과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사야 43장 1절은 두려움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들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자연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인간은 존재의 위계에서 만물의 영장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인간 중심적인 생각에 빠진 우리의 착각입니다. 우주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은 인간만의 창조주가 아니며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저마다 모두 특별합니다. 인간이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이사야 43장 1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주신 데에 있으며, 성경 66권은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내 것이라 말씀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정체성이 노예인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알게 하시며 2절에서는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써 우리의 두려움의 대상을 바로 보게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들은, 강을 건널 때 물도 침몰시키지 못하고 불 가운데를 지날 때 타지도 않으며 불꽃이 사르지도 못합니다. 어떤 것도 해하지 못하며 위협하지 못합니다. 생명 싸개 안에 있는 그들에게 상황과 환경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시편 29편 3절에 다윗의 시를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엄청난 강물 소리, 천둥소리 속에서 번개와 지진과 산불 속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이며 네 구원자라고. 그러니 두려워 말라(3절)”고 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어떠한 값을 치르셨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애굽과 스바를 속량물로 주셨고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제 몸인 아들까지도 이 땅에 보내셨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과 온 세상에 성령을 부어주실 분, 우리들의 메시아. 임마누엘. 그분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네 자손을 사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모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5절)
시편29편에서 천둥소리는 이제 천사들이 하나님께 “영광! 영광!” 하며 외치는 소리입니다. 다윗은 폭우가 쏟아지는 들판으로 뛰쳐나가 손을 번쩍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외칩니다. 춤을 추며 찬양하고 노래하며 우리에게 손을 내밉니다. 시편 29편은 우리를 왜 이토록 사랑하시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물음에 대한 대답일 것입니다. 시편29편은 깨달음의 기쁨과 환희를 노래합니다.
구원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은 내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신 자라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찬양과 경배와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두려움의 자리, 불가능의 자리, 바벨론 강가에서 소망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불러내 주십니다. 수금을 들라. 찬양하라. 시온을 흔들어 깨우는 메시아의 소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글 | 백우인
감신대 종교철학과 박사수료. 새물결플러스 <한달한권>튜터. 신학공부하면서 과학에세이와 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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