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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신앙 문제에서 자유스러운 의견 개진의 중요성에 대하여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 1. 12.

 

1. 흔히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 약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성도를 질책하시는 말씀 중 하나도 ‘믿음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이고, ‘믿음이 강하다, 약하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믿음에 대하여는 여러 사람들이 정의하고 있지만, ‘믿음이란 어떤 사실을 알고(지식) 이를 받아들이고(동의)하고 신뢰하는 것’이라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말씀이 귀담아 들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믿음, 자신 있게 대답하라], 찰스 스펄전 외, 생명의말씀사, p.12-30에서 인용) 신뢰하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결국 믿음이란 자신이 알고 받아들인 것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키는 행위라 볼 수 있다.

 

3. 믿음이 강하다, 약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믿음이 강하다, 약하다라는 식으로 믿음을 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조금 부적절한 표현으로 보인다. 누가복음 17:5-6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 하자 예수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믿음은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그러므로 믿음이 약하다는 것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훼손된 믿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뭔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의심이 들어서 그 믿음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가 된 것이다.

 

4. 그렇다면 온전한 믿음은 어떻게 갖게 되는 것일까?  내가 믿겠다고 결심하면 되는 것인가? 다시 말해서 믿음은 의지의 문제인가?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2000년의 예수님 십자가 사건을 나를 구원하기 위한 사건으로 믿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성령님이 내 이성을 초월하여 믿어지게 해주어야 믿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믿음은 의지의 영역이 아니고 신비의 영역이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믿어질 수 없는 것도 믿어지기 때문에 신비다.

 

5. 그러면 우리가 ‘믿음이 없다’ 또는 ‘믿음이 약하다’는 말을 하거나, 듣게 되는 것은 단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기 때문만일까?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명저 [자유론]에서 다른 각도로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6. 밀은 어떤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유 토론과 반대 의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의견에 대한 판단 오류는 ‘무오류의 독단’에서 나온다고 한다. 토론 없이 어떤 진리를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독단이며, 독단에 의한 진리의 강요는 받아들여지기 힘들고 믿음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어떤 진리를 확신하기 위해서는 반대의견에 대하여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을 같이 듣고 판단할 때 스스로의 의문점도 해소되고 확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7. 신앙 문제에 있어서 무오류를 가정한다는 것은, 어떤 교리를 스스로 확신의 과정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나를 대신해 결정한 내용을 그대로 진리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되거나, 반대쪽이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이 하는 말을 무시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8. 밀은 기독교 역사상 어떤 주장이나 교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발생한 오류에 대하여 몇 가지 사례를 들고 있다.

 

9.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을 당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당시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그를 하나님을 사칭하는 불경한 괴물처럼 취급했던 것이다. 그들은 명백하게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예수를 사형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다 인격적으로 악한 사람들이 였던 것은 아니다. 충분히 존경받을 경건한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때 그들이 느끼는 증오와 분노는 순수한 신앙적 태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이 예수의 말을 듣고 자신의 옷을 찢는 등 극단적인 반감을 나타낸 것은 성경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10. 만일 우리가 그 당시 유대인으로 태어났더라도 그 사람들과 크게 다르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데반 집사에게 돌을 던져 죽게 한 무리 중에는 사도 바울도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가 무오류라고 믿고 있는 신앙은 이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11.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황제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철학자 황제였다. 그는 전제 군주였지만 평생 순수하게 정의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교육받은 스토아 학파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인자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가 책임져야 할 약간의 과실조차도 모두 그의 관대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불 수 있다. 그의 저서 [명상록]은 고대의 지혜를 최고도로 표현한 윤리적 소산으로서, 세상에서는 윤리적으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큰 차이가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인류가 성취한 모든 인간성의 절정에 선 인물이고,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지성을 가졌으며, 기독교의 이상을 구현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인격을 지녔는데, 현실에서는 기독교를 해로운 종교로 여기고 박해한 인물이다.

 

12. 그는 단지 당시 세계관에 의거하여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다. 그는 당시 로마 사회가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더 나빠지지 않는 이유는, 사회가 통일되어 있었고, 공인된 신을 믿고 숭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사회를 분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황제로서의 의무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 결속을 해칠 수 있는 기독교를 탄압하여 와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입장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사형수를 신으로 숭상하고, 그의 살과 피를 나눈다고 하는 기독교는 신성과는 거리가 멀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기괴한 교리체계를 가진 야만적인 종교로 여겼던 것이다.

 

13. 지배자 중에서 가장 고상하고 온건한 황제가 엄숙한 의무감에서 기독교 탄압에 앞장선 것이며 이는 역사상 매우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만일 기독교를 후대인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아니고 마르쿠스 아우렐레우스 황제의 의하여 로마제국의 종교로 채택되었다면 세계의 기독교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유가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은 역사가 말하고 있는 사실이다.

 

14. 교회 안에서 자유로운 신앙토론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교회에서 일반 성도는 설교나 성경공부에서 일방적으로 목회자의 가르침을 듣거나 질문에 대답하는 정도이지, 스스로 자신의 생각으로 질문하거나 목회자의 가르침에 반하는 개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는 오랫동안 교회에서 내려온 전통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신앙적으로 개방적이어야 할 개신교가 천주교보다 더 심하다고 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인을 지명하는 경우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성인으로 지명된 자에게 성인의 자격이 없다고 비판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를 승인하고 그의 비판적인 말에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인다고 한다.

 

15. 밀은 반대의견이 결코 진리가 아닌 오류라 할지라도 비판이나 토론을 허용하지 않고 억압하면서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독단이라고 한다. 밀은 오늘날 살아 있는 믿음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러한 교회의 독단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의 신앙은 그들의 상상과 감정과 이해력에서 행동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죽은 신앙으로 머물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단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격언과 훈계를 신성시하고 신조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라 했다.

 

16. 오랫동안 그렇게 내려오다 보니 이러한 신조에 의거해 자신의 행동을 인도하거나 검증하는 그리스도인은 천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자기 행동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그 사회의 관습이거나 그 종교단체의 관습이라고 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한편으로는 자기 행동을 규율하는 하나의 규범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오류가 없는 진리라고 생각하는 성경 말씀의 묶음을 갖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말씀과 상당히 합치되거나, 그다지 합치되지 않거나, 또는 정반대되는, 여하튼 대체로 기독교 신조와 세속생활의 이해관계와 제안 사이의 타협에 불과한 일상적인 판단과 실천의 묶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 신자들은 이 두 가지 묶음 중에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하여는 경의는 표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행동을 규범하는 것은 후자라는 것이다.

 

17.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어라’.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위와 같은 말씀을 믿지만, 행동을 규율하는 살아 있는 믿음이라는 관점에서 말한다면 그들이 이러한 말씀의 규범을 믿는 것은 바로 그것에 근거해서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범위 내에서라 한다. 오히려 이러한 믿음은 남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거나 세상사람들이 찬양할 만한 것의 근거로 제시될 수 있을 뿐이다.

 

18. 만일 어느 그리스도인에게 이러한 규율을 실천하는 것은, 그동안 그들이 현실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 조차없는 무한한 것을 요구하는 것임을 상기시킨다면 매우 극단적인 신앙의 강요라고 반응할 것이다. 그는 이러한 말을 성경에서 읽거나 말씀을 들을 때는 경의를 표하지만 자신의 일상생활이 반드시 그 공식에 합치되어야 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들 주위에 있는 이 사람 저 사람을 둘러보며 어느 정도까지 그 말씀에 따라야 하는지 저울질하며 살아가고 있다.

 

19. 그러나 초기 기독교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만일 초기 기독교의 신자들의 믿음의 수준이 지금과 같은 것이었다면 기독교는 그저 멸시받은 히브리 민족의 민족종교에서 로마제국의 국교로까지 확산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그들의 공격하던 적들도 “이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라!” 라고 말했음을 보면 그들은 확실히 그 후 기독교의 경우보다 그 신조의 의미를 더욱 생생하기 느끼고 실천했음에 틀림없다.

 

20. 아마도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기독교가 중세 이후 오늘날에 이르러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고 여전히 유럽국가와 그 후손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자신의 신조에 대하여 다른 일반 기독교인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엄격한 신자들의 경우도 그들 마음 속에 비교적 강한 활동 부문이라고 하는 것은 칼빈이나 녹스 또는 성격적으로 훨씬 그들 자신과 가까운 인물의 신조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1. 밀은 이런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은 수동적으로 그들 마음 속에 공존할 뿐, 매우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말을 들을 때 느끼는 것 이상으로는 아무런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어떤 종파의 표상인 신조가 모든 공인된 타 종파의 공통된 신조보다 더 많은 활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보다는) 그가 소속된 종파의 신조의 의미를 계속 살려 나가려고 더 많은 수고를 감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확실한 이유 하나는 특정한 신조는 다른 종파에 공통된 신조보다도 공격을 받는 이유가 더 많고, 따라서 반대자들에게 대항해 방어해야 되는 경우도 더 많기 때문이다. 싸움터에서 적의 그림자가 없어지면 가르치는 자는 물론 배우는 자도 모두 즉시 전선에 선 채로 잠들어 버린다.”([자유론] 문예출판사 제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 p.102에서 인용) 

 


 

글 | 송윤강

과신대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과학강연, 영화, 도서 등 과학 관련 리뷰를 기고하고 있다. 현재 아름다운서당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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