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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코로나 시대의 복음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 7. 11.

『코로나 19 이후 시대와 한국 교회의 과제』를 읽고

 

『코로나19 이후 시대와 한국 교회의 과제』|이도영 지음|새물결플러스|236쪽


  이 책은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2020년에 태어났다. 그 이후 2년이 더 지났지만, 이 책은 여전히 그 가치를 발휘한다. 바꿔 말하자면, 2년 전과 현재의 교회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저자는 총 6장에 거쳐 코로나의 의미가 무엇이며, 이러한 시대에 교회는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다. 마지막에는 ‘결론’이라는 장으로 책 전체를 요약해서 들려준다. 당신이 만약 인내심이 없는 독자라면 ‘결론’ 부분만 읽는다고 하더라도 이 책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코로나 발생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고 있다. 이것은 저자의 막연한 기분에 의한 추론이 아니다. 실제로 지구 온도가 1도 높아질 때마다 감염병의 발생 위험이 생긴다(참고 도서 : 6도의 멸종).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매우 슬프게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하나님이 한국 국민을 정신 차리게 하려고 세월호를 침몰시켰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이렇게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재난상황이 닥쳤을 때, 그것을 ‘심판’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제하시며, 그분이 만물의 주인이심을 보여주기 위해 바이러스를 뿌리셨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 가해자의 죄를 용서하는 십자가의 능력만 알 뿐, 피해자의 탄원을 신원해주시는 십자가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과연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죄의 영적인 추악함과 그 끔찍한 도덕적 현실을 그림처럼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이 일으키신 사건인 건가? 그렇다면 600만 명이나 학살한 홀로코스트도 우리의 죄성을 깨우기 위한 그림에 불과한가? (본문 47p.)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다. 정사와 권세와 싸우기 위해.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고통받고 계신다. 과연 하나님이 주의 주되심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일을 일으키셨을까?

 

  지금 이 시대에 교회가 집중해야 할 것은, 이 일이 ‘왜’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교회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느냐이다. 교회가 행하는 그 일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 될 것이다.

  흑사병이 전 세계를 죽음으로 물들이고 있을 무렵,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다. 이는 그들의 관습이 청결을 유지하게 해서 죽음에 덜 가까웠기 때문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이었다. 환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사랑을 보았고, 바로 그것이 복음이었다.

  하지만 현재, 교회는 어떠한가? 국가가 교회에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을 ‘영적고난’으로 오해하고 있다. 집합금지 명령은 교회에만 내린 게 아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모인다’는 행위를 금지시킨 것이다. 이것을 종교적 탄압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니, 교인들이 주일 성수를 한다고 다 모여서 오히려 바이러스를 전파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하여 기독교인들이 공공성을 잃어버렸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는 산속에 틀어박힌 무리가 자신들의 공동체 성장에만 힘쓰는 그런 종교가 아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는 그와 유사한 행보를 벌이고 있다. 오직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만이 서로에게 사랑의 대상이 되어 ‘그들만의 리그’에서 서로 복음을 주고받고 있다. 교회는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공동체다. 그리고 교회에는 공적인 이익 즉, 만인을 위한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될 때 세상은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해줄 것이다.

  책에서는 교회와 사회를 분리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교회가 공공성을 회복하고 공적인 기관으로서 사회에 공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고 본다. 예수님도 그렇게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좌파가 들으면 우파의 이야기 같고, 우파가 들으면 좌파의 이야기 같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말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세상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상일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직접 모이는 것보다는 랜선 예배를 드리는 등 다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공동체에 유익을 주는 일일 것이다. 어떤 교회는 마스크를 손수 제작하여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께 전달하기도 했다.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기, 자가 격리자들에게 생필품 전달하기, 의료인들에게 감사를 전달하기 등의 활동도 많이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러한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복음이다. 

  복음은 멀리 있지 않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사회구성으로서, 특히 그리스도인인 사회구성원으로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세부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장 이 책을 펼쳐보시기를 권한다.

 


 

글 | 이혜련 편집위원(1221hannah@hanmail.net)

아들 둘, 딸 둘과 하루하루 인생을 고민하는 평범한 주부. 하나님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다가 과신대를 만나 초보 기자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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