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교사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과신대 과학 선생님들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과신대 교사 모임에서는 청소년 캠프와 교재 개발을 위해 매월 한 번씩 모여서 열심히 회의하고 준비를 해왔습니다. 2020년에는 좀 더 내부 역량을 강화하고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올해는 자문위원 교수님 두 분이 함께 해주시기로 해서 더욱 기대가 됩니다.

 

지난 1월 18일에는 서광 선생님(밀알두레학교 과학 교사)께서 "창조에 대한 다양한 견해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현재 기독교대안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창조 관련 수업에 대한 분석과 다양한 입장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참여 수업을 통해 어떻게 창조에 관련된 수업을 진행하는지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기독교대안학교이기 때문에 다양한 입장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눈치가 보이고 학부모님들의 반발도 있다고 합니다. 

 

과신대 자문위원이신 이문원 교수님께서도 참석해 주셔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과학 교육에 대한 생각들을 나눴습니다.  이문원 교수님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혹은 교회학교에서 특강을 할 때,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이런 강의를 하기 보다는 그저 자연 현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 앞에서 감탄하고 경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론적은 논의를 학생들에게 하는 것은 그리 효과적이지 안하고 하셨습니다. 

 

창조의 반대는 진화가 아니라 우연이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오랜 시간 붙들고 연구한 분야에서 끝까지 창조에 대한 질문을 붙들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게 우연의 산물인지 아니면 창조된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죠. 연구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진화는 창조의 반대가 아닙니다. 진화는 창조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우주는 그리고 인간은 우연의 산물인가 창조의 산물인가? 이 문제를 고민하고 씨름하는 것, 어쩌면 이것은 받아들이느냐 못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입니다. 

 

창조의 영성을 계속 고민하고 우리의 생활과 연구에 체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연구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창조의 영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고민한 것들 속에서 신앙의 고민이 오기 마련입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조성호 교수님께서 "창조와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과신대 교사팀 2월 모임 안내

  • 주제: "창조와 영성"
  • 강사: 조성호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 일시: 2020년 2월 22일(토) 오전 10:30
  • 장소: 더드림교회 4층 (관악구 남부순환로 2016) https://bit.ly/31Uiuru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그대와 나는 표면장력surface tension이다.

  • 두통때문에 고생하셨군요~ 두통이 사라지기까지 몸을 동그랐게 말고 힘든 밤을 지내셨네요 ㅜㅜ 어려울 때일수록 표면장력처럼 우리 모두가 가깝게 뭉쳐서 살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온도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내면 참 좋겠습니다.

    휘페르테스 2020.02.05 11:06
  • 움츠림 하나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글이 나올 수 있군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김완식 2020.02.05 11:39

 

거리에 공기가 냉랭하고 쌀쌀맞다. 목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손도 동그랗게 꼭 쥐고 호호거리면서 걷게 된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부서뜨릴 것 같고 내 몸의 사방을 날카로운 가시들로 찌르는 것 같다. 추위가 내게 통증을 유발한다. 무참히 냉기가 엄습해 올 때,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할 수만 있다면 동그랗게 말아서 데굴데굴 굴러가고 싶어진다.

 

사랑의 기원에서 플라톤은 우리의 몸은 앞뒤로 똑같은 형상이 등끼리 맞붙어 있었다고 한다. 팔 네 개, 다리 네 개로 걷다가 빨리 가야 하면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굴러다녔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겨울엔 모두 이렇게 굴러다니면 좋겠다 싶다. 추울 때 몸을 움츠리는 것은 표면적을 줄여서 열을 최대한 덜 빼앗기려는 시도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리지만 거기엔 우리 몸이 생명에 집중하게 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추위라는 통증으로부터 우리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린 저절로 몸을 동그랗게 만든다. 생명의 구심점인 심장을 향해 우리 몸의 기관들이 일제히 모여드는 것이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것은 태양의 중심 온도보다도 더 뜨거운 생명의 시작이자 생명의 의지인 심장에 가까워져 소진된 생명을 주입받으려는 몸짓이다.

 

내게 두통이 주는 통증은 그 어느때 보다 더 강렬하게 아니 맹렬하게 나를 심장으로 파고들게 한다. 경험한 통증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두통이다. 응급실에서 고통을 호소할 때 1부터 5까지 등급을 나눠서는 얼마만큼 아픈지 숫자로 말하라고 했었다.

 

몸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고통에 아우성치는 그 처절한 아비귀환의 순간을 5로 표현하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가? 그당시 병원에서의 나는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였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얼굴을 가슴쪽에 파묻고 팔로 무릎을 감싸 동그랗게 움츠리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은 늘어진 엿가닥처럼 아주아주 천천히 흐르고 그렇게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백야를 맞고 수척한 새벽을 맞이할 때 쯤, 밤새 생명을 살게 하려는 몸부림이 승리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의 몸은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을 희망하기에 밤새 끌어안은 건 생명의 의지였다.

 

우리의 기억은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놀랍고 신비하게도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때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회복하고 돌아오게 한다. 그대와 나는 엄마의 양수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280일을 사는동안 우리의 몸을 동그랗게 말고 지냈었다. 그 공간과 그 시간이 우리 삶에서 가장 안전하며 온전히 의존적이며 오직 생명의 의지 자체였던 때였다는걸 기억하는 걸까?

 

몸을 동그랗게 마는것은, 엄마와 연결되어 사랑 안에서 동그랗게 유영하던 그때로 우린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닐까? 따뜻하고 충만하고 넓고 아늑한 우주, 함께 호흡하며 엄마의 심장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지내던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샬롬의 시공간. 그대와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건 아닐까?

 

 

몸을 동그랗게 마는 것은 표면장력을 극대화 시켜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몸짓이다. 추위에 몸을 움츠리는 것, 두통으로 몸을 동그랗게 마는 것, 외로울 때 어깨를 감싸며 점점점 영혼 안으로 수축하는 것, 두려움으로 그대 품 속으로 파고드는 것,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대와 나의 생명을 향한 표면장력이다. 표면장력은 우리의 생명의 의지만큼 크다.

 

백우인 팀장 (bwooin@naver.com)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우리의 진짜 적은 무지다.

  • 최성일 선생님, 너무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특히,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과학책을 들자는 말씀에 적극 찬성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완식 2020.02.05 11:48
    • 김선생님, 감사합니다^^

      휘페르테스 2020.02.12 08:19 DEL

 

2020년 첫 행사부터 제게는 아주 좋은 공부였습니다. 공동포럼의 내용은 이미 뉴스엔조이 기사를 통해서 잘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저는 기독교 고등학교의 교사로서 이번 행사를 통해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기독교 학교에서 영어교사로 3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데,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진화론과 관련된 과학 지문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되는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처음 접한 것이 헨리 모리스의 <현대 과학의 성서적 기초>였습니다. 그 책만으로도 분명 행복한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창조과학자들과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포럼에서 다룬 그대로, 대부분의 보수교단이 가르치는 창조신앙은 자연스럽게 창조과학으로 연결되었고, 저도 그 조류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창조과학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들, 가령, 구소련 붕괴와 자본주의의 확장으로 인한 무한 경쟁 문제,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 기독신앙이 있는 사회 지도자들의 부정, 종교 간의 대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들어오는 이슬람 문화, 동성애 담론 등등의 각종 사회 문화적 현상들을 소화하고 이해하기에는 “창조과학과 근본주의 개신교 신학”은 너무 편협하여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는 이런 시대적 모습들이 부분적이지만 모두 들어있었습니만, 그 다양성들을 어떻게 소화해서 가르쳐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었습니다. 그렇다고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은 재미도 없고 비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색다른 보충수업을 항상 모색하고 있습니다. 4년 전에 “청소년 소명아카데미”라는 여름방학 방과후 수업을 마련하여 아이들에게 직업과 비전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교육하고자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육과정 중 문화에 대한 토론 시간에,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짧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다들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라 당연히 반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2학년 학생 중 한명이 찬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도 충격을 좀 받았었습니다. 고등학생 중에서도 동성애에 대해서 탈교회적 생각을 하는 학생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저도 당시에는 잘 알지 못해서 그 수업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 하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공동포럼으로 인해, 고등학교 교단에서 이전보다는 좀 더 쉽고 친절하게 진화론과 창조과학, 공산주의, 동성애, 이슬람이라는 시대적 이념과 과제에 대해서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이 유익했는지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1. 발제1 – 2019년, 한국 개신교인의 근본주의 신앙관에 관한 인식 조사(신익상 교수, 성공회대, 연세대)

 

신교수님께서는 2019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2019년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 조사” 자료를 자세히 분석해 주셔서 유익했습니다. 요약하자면, 2019년 한국 개신교인들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근본주의적 신앙관에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신교수님의 분석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한국 개신교 관련 어휘는 “정체성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배타성”이었습니다. 나날이 복잡성을 더 해가는 21세기에서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개신교는 정체성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근본주의 개신교는 첫째, 교리 확립을 통해 자기 확신을 강화하고, 둘째,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에 위협이 되는 외부의 적을 배격하게 되었지만, 후자의 방법에 치우쳐있다고 요약하셨는데, 매우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제가 느낀 대로 결합해 보자면, 21세기의 한국 개신교는 “내적인 빈곤을 외부의 적과의 싸움으로 가리고 있거나, 아니면, 내적인 빈곤 때문에 외부의 적과 더 가열찬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교수님의 분석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면서, 저는 두 가지 해결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한국 개신교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기 위해 내적 빈곤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들이 내적으로 빈곤하다는 정직한 고백이 필요하다.

 

둘째, 진화론, 공산주의, 동성애, 이슬람 등의 시대적 거대 담론을 다 외부의 적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 각각에 대해 기독교적 기준만을 적용하려고 하지 말고, 과학적인 탐구를 과감히 늘려나가야 한다.

 

적고 나니, 간단히 말해서 둘 다 “공부합시다”라는 말이 되네요. 하나님께 내적 빈곤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도와주심을 바라며 “새로운 성경 읽기”를 통해 신학을 재정립하여 내적 풍요를 다시 찾고, 그 힘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경청하고 공부함으로써 공통분모나 또는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신교수님이 마지막으로 덧붙이신, “우리의 진짜 적은 무지다. 우리는 정신의 알맹이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 때문에 위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2. 발제2-한국 개신교는 왜/어떻게 창조과학에 빠졌는가?: 문화사회학, 지식사회학, ANT접근(김현준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이신 김현준 교수님은 주전공인 지식사회학을 기반으로하여, 한국개신교가 왜/어떻게 창조과학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크게 네 가지, 자세히는 9가지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목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문화/종교적 환경
1-1. 세속화 및 과학발전(과학주의)에 대한 불안과 그에 대한 문화적 방어(문화전쟁)
1-2. 과학의 문제점과 문화지체
2. 국가적, 제도적, 교육정책적 환경
2-1. 과학기술자 양성(위주) 국가정책
2-2. 국가차원에서 과학정신의 상대적 결핍; 과학교육의 부실; 과학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
3. 이해관계 번역(translation of interest) 실천의 행위자-연결망, 동맹의 결성
3-1. 기독교세계관 학문운동의 창조과학지지
3-2. 동맹의 역사적 근원
3-3. 동맹 확장 전략1
3-4. 동맹 확장 전략2
4. 창조과학자들의 내적 동기와 자기 서사

 

김교수님이 이러한 요인들을 설명하면서 공통적으로 가장 강조한 것은 “창조과학의 핵심은 과학이 아니라 신앙의 위기에 대한 변증적 성격을 지니는 종교적 담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창조과학이 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를 설명한다고 했습니다. 신교수님도 지적한바와 같이 한국 개신교 창조과학의 뿌리는 미국인데, 김교수님은 미국의 세대주의, 안식교, 헨리 모리스에 뿌리를 둔 창조과학이 박형룡, 김준곤, 김영길을 통해 한국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창조과학자들이 지적설계론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적설계론도 1987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도버 카운티 교육위원회가 활용하기 시작했고, 현재 꽤 호응을 얻고 있지만, 지적설계론이 종교적 세계관과 세속적 세계관을 소통시키고 상호 학습효과를 가져오는 ‘공통의 언어’일 수 있을지는 재고해야한다고 발제문 각주에서 비평하였습니다.

 

김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미국과 한국의 창조과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었으며, 도날드 넘버스의 “한국이 창조론의 수도가 되었다”는 말을 통해, 한국 개신교의 창조과학 문제가 세계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창조과학은 시작에 있어서 반지성적이지는 않았지만, 유통과 확산에 있어서는 지역교회/비전문가/평신도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필요로 했다는 분석에서, 다시금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성적인 탐구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한국의 열심있는 개신교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과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에는 ‘자연과학 연구도 신앙의 실천일 수 있음’을 강조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놈프로젝트를 완성한 프랜시스 콜린스를 비롯한 분명한 예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문의 모든 영역을 기독교적으로 만들려 하는 창조과학의 시도가 있고, 그 결과 창조과학은 ‘기독교적 과학’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 점은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신학과 과학은 다루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혼합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박형룡 박사도 이 점을 처음에는 주장했지만, 1970년대 이후의 근본주의 신학과 창조과학의 급류에 의해 사라지고, 근본주의 신학과 반진화론이 한국의 보수 개신교단들의 주류가 되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근본주의적 창조과학이 세력이 강하여 세계 기독교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개신교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고 나오기 위해서는 참으로 오래고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라”는 칼 바르트의 말을 패러디하여,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과학책을 들자”는 운동을 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자신을 알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문제는 하나님이 무한하신 분이시고, 또 알고 보면 우리 자신도 알쏭달쏭한 구석이 매우 많으므로, 짧은 인생, 서로 싸우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두 권의 책인 성경과 우주를 함께 공부하며 그 즐거움을 누리면 참 좋겠습니다. 2020년 과신대 활동을 통해 즐거운 소식들이 널리 퍼지고 그 소식을 따라 많은 분들이 누림과 나눔에 참여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84편 11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장 18절)

 

최성일 기자 (ultracharm@naver.com)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이혜련 회원님을 소개합니다.

  • 이혜련기자님, 알찬 인터뷰 감사합니다~! 네 자녀 모두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휘페르테스 2020.02.05 12:15
  • 진솔한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별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는 시간은 부인할 수 없다는 말은 정말 아름다운 시적 표현 같아요^^

    김완식 2020.02.05 12:28

 

1. 과신대 회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어떻게 과신대를 알게 됐는지도 소개해주세요.

 

1976년 겨울에 태어나, 26세에 결혼을 했고, 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한국의 진짜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최대관심사가 육아, 요리, 살림이었지요. 취미는 소설책 읽기였고요. 과신대는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근본주의, 문자주의, 세대주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엄청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고민을 하던 중, 남편이 친구를 통해 과신대를 먼저 알게 되었지요. 저는 처음에 남편이 무슨 이단 종교에 빠진 줄 알고 엄청 걱정을 했답니다. 그런데 저희 부부는 과신대를 알게 된 최근 3년간이 삶에서 가장 많은 기도와 묵상, 성경공부를 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2. 과신대 행사에 자주 참여해주시고, 저희 과신대를 위한 좋은 의견도 많이 제시해 주셨는데요. 평소 말씀하신 것처럼 평범한 주부의 입장에서 저희 과신대 행사나 강의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처음에는 과신대 정회원이 되는 것이 굉장히 망설여졌어요. 과신대는 아주 똑똑하고(특히 과학과 신학 분야에) 진지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단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같은 (과학, 신학에 대해 무지하고, 평범한) 사람이 정회원이 되어도 되는 걸까?’라는 고민을 아주 오래 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정회원비를 대신 내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일단 가입을 했지요.^^ 정회원이 되고 나니까, 왠지 정회원으로서 기초강의 정도는 들어야 될 것 같고, 권장도서 정도는 읽어야 될 것 같은 의무감이 팍팍 들었어요.

 

<기초강의1>을 들었던 날,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질의응답시간에, 어떤 분이 "외계인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했는데,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을 하셨어요. 짧게 요약했지만, 중요한 건, 제가 신앙생활 하면서 품어왔던 많은 질문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괜찮아, 그동안 힘들었지?’하고 안아주시는 느낌이 들었어요.

계속 기억에 남는 건, 별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는 ‘시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거에요. 젊은지구론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반박해야할지 몰랐는데, 그거 하나만으로도 문제제기를 할 수 있잖아요.

 

저희 가정이 계속 친하게 지내던 젊은 부부 가정이 있는데, 같은 교단이었거든요. 지금은 선교사로 해외에 있고요. 그 가정에게 <창조론 연대기>를 빌려주었어요. 그것만으로도 고민에 빠지더라고요. 제가 전문적인 과학지식을 전달할 수는 없지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 커다란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또, 여러 강의를 들으면서 그동안 품어왔던 질문들이 하나하나 풀려가는 게 재미있고 좋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열린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기존의 신앙생활에는 ‘정답’이라는 게 있었고, 그걸 추구하지 않으면 신령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거였잖아요. 그 기준에 맞추느라 힘들었던 저희 가정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진짜로 체험하게 되었어요.

 

 

3. 과신대 콜로퀴움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강의라든가 내용이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가장 최근에 들었던 강의가 백소영 교수님의 ‘신앙의 경줄과 위줄 찾기 :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에요. 평소에 과신대 강의가 많이 어려워서 거의 1부 시간에는 졸지 않으려고 애쓰고, 2부 시간에만 또랑또랑한 정신으로 들었거든요. 그런데 페미니즘 강의 시간에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완전히 빠져들어서 강의를 들었어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쉽더라고요. 신앙의 경줄과 위줄이 뭘까 궁금했는데, 평소에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고민하던 저에게 필요한 답이더라고요. 변하지 않는 진리와,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읽어야 하는 성경해석방법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셔서 좋았어요.

 

솔직히 평소에 과신대가 남초전문가커뮤니티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편한 마음도 있었거든요. 콜로퀴움에 참석할 때마다 ‘저 남자분이 여기서 강의를 듣고 있을 때, 아내분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아마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아무도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콜로퀴움에 페미니즘 강의가 생겨서 무척 신기했고 놀라웠어요.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백소영 교수님이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콜로퀴움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4. 과신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한 말씀 해주세요. 앞으로 과신대가 한국교회의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요?

 

과신대 자체에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미 여러 모양으로 고민을 하고 계시니까요. 한 가지 예로, 제가 처음 콜로퀴음에 참석했을 때는 유튜브 방송이 없었는데, 지금은 집에서 방송으로 콜로퀴움을 볼 수 있잖아요. 여러 모양으로 헌신하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교회의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유발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 과신대의 형태는, 기존에 많은 질문과 괴로움을 안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기존 신앙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단 단체로 여겨질 수도 있거든요. 그들이 건전한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컨텐츠가 있다면 어떨까요. 어떻게 보면 유치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컨텐츠가 오히려 좋은 컨텐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5. 마지막으로 과신대 자랑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난 8월에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무서운 얘기지만, 저희 가족도 따라가고 싶었더랬지요. 과신대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평소에 SNS에 대해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과신대를 알게 된 것도, 과신대 활동을 하게 된 것도 모두 SNS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과신대를 통해 사랑을 받고, 오늘도 삶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과신대는 SNS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활용하는 아주 좋은 예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컴퓨터 화면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삶으로 변환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고, 말씀처럼,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했어요. 과신대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신학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그것을 삶으로 풀어내고자 함께 생각하며 동행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과신대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이 있기에 앞으로 저와 같은 평범한 가정주부도, 아이들과 청소년들도, 과신대에서 많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가 됩니다. 얼핏 보면 창조과학 반대 단체쯤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복음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 그곳이 바로 과신대라고 자랑하고 싶네요^^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연구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1월 30일, 2020년의 첫 번째 ‘과신대 연구모임’이 신도림 디큐브 아카데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과신대 연구모임은 과학과 신학이라는 논제에 관심 있는 학자들이 모여, 관련 텍스트를 읽고 발표하며 토론하는 공론의 장입니다. 연구모임에는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자들이 참가합니다. 자연과학, 과학철학, 신학 등 각기 다른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학제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충분하였습니다.

 

본래는 연구모임 회원들이 발제를 준비하며 논의하였지만, 이번에는 과학과 신학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특강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사는 장왕식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였으며, 강연 주제는 “양자론과 진화론의 시대에 읽는 화이트헤드 철학과 과정신학”이었습니다. 약 한 시간 정도 강의가 진행되었으며, 그 뒤에는 내용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질의응답뿐만 아니라 각자의 생각을 논하며 담론을 형성하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에 이루어지는 연구 동향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연구모임은 전반적으로 열띤 토론 현장과 같았습니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한 가지 논의 대상에도 여러 주변 이론이 거론되었습니다. 회원 모두가 연구자였기에 서로의 전문 분야를 향해서도 물음을 던졌습니다. 학구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간간이 농담을 던지기도 하면서 모임은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끝으로 연구모임 시간을 통해 각자가 느낀 바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모임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모임 때에 연구할 논제는 ‘Divine Action’입니다. 과학과 종교 분야에서 활발한 업적을 남긴 이안 바버(Ian G. Barbour)와 로버트 러셀(Robert J. Russell)의 텍스트를 읽고 모일 예정입니다. 연구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들 간에는 관련 자료를 함께 선정하고 읽어오는 등의 네트워킹이 사전에 이루어집니다. 모임 인원은 평균적으로 약 열 명 정도의 연구자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과신대 연구모임이 시작된 지는 이제 2년 이상 되었습니다. 모임 초반기에는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의 형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연간 연구계획서 등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탐구하고 있습니다. 훗날 연구의 결과물들을 포럼이나 학술대회를 통하여 대중적으로 발표하는 계획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연구모임이 지향하는 바는 국내의 신학계뿐만 아니라, 철학계나 과학계, 나아가 비기독교인들과의 대화와 소통도 가능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연구모임은 매월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로 모임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서울입니다. 혹여나 과학과 신학 분야 연구에 함께 참여하기를 희망한다면, 사전에 과신대 사무국으로 연락을 주면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과신대 VIEW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준봉 기자 (joonbong96@stu.ac.kr)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