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자!

 

“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자!”

- 이정모 관장님의 과신대 핵심과정 강의를 듣고 -

 

 

과신대 핵심과정 5강은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님의 "과학으로 보는 창조 역사"였습니다. 이정모 관장님은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자로서 서울시립과학관과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도 계셨습니다. 과학관 관장님이 과학자이실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다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관장님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좀 더 확인을 해보니 지금은 종영된 TV 방송 프로그램인 ‘어쩌다 어른’에 출연하셔서 과학강연을 한 적이 있으셨습니다. 아마 편안한 이미지와 재미있는 강의로 많은 시청자 분들이 좋아하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관장님은 이번 강의에서 신학과 과학의 최초 충돌이었던 천동설과 지동설, 그리고 두 번째 충돌인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더 이상의 충돌은 자제하고 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자고 하셨으며 아울러 충돌에 대한 해결법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교수님 강의의 주요 내용과 제가 느낀 점을 간단히 설명드리고 과학과 신학의 갈등 해결법에 대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천동설과 지동설 갈등의 단면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자연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따라서 신앙과 이성은 대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는, 자연에 관한 문제에서 만큼은 과학이 신학보다 우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일반인의 이해를 목적으로 씌여졌고 쉽게 재해석할 수 있지만, 자연은 변경할 수 없는 실제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경에 있는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에 관한 진실을 과학자들이 증명하면, 신학자들은 그 문장의 의미를 재해석하여 명확히 해야 합니다." - 갈릴레오가 크리스티나 대공 부인에게 보낸 편지 -

 

위의 글은 종교재판과 관련하여 입장이 난처해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자신의 후견인인 크리스티나 대공 부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이 편지에서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 가설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과학에 대한 성경의 올바른 해석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편지의 내용 이면에는 종교재판에 대한 갈릴레이의 걱정과 염려가 스며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편지가 천동설과 지동설의 문제가 아닌 창조론과 진화론의 문제 때문에 요즘 시대에 쓰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고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16세기, 천동설에 기반하여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모두가 믿고 있을 때, 지동설을 주장하며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은 잘못되었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도 아닐뿐더러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한다면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수용하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신앙적 자존감이 무너지게 되듯이, 인류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에 의해서 그분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믿고 있는데 창조가 아닌 진화에 의해 인류가 시작되었고 발전하여 왔다고 한다면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와 마찬가지 반응은 당연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 진화발생생물학 (EVO-DEVO) >

 

진화발생생물학은 다양한 동물과 식물의 발생과정을 비교하여 공통 조상에서부터 진화한 생물의 공통 요소와 변이를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입니다 (위키백과 참조). 이것의 예를 들자면, 닭과 생쥐와 구렁이는 기본적으로 같은 유전자 설계도를 가지고 있지만 레고처럼 유전자를 여러 번 사용하는 것에 따라 가슴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게 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초파리의 Eyelsss 유전자를 뜯어내서 생쥐의 배아에 이식하거나, 반대로 생쥐의 유전자를 초파리에 이식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이식 여부에 상관없이 생쥐에서는 생쥐의 눈이, 초파리에서는 초파리의 눈이 생기게 됩니다. 즉, 같은 유전자가 다른 곳에서 사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적으로 진화라는 것은 새로운 유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조합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15~20년이면 진화의 과정을 무인도나 실험실에서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물며 생명의 역사 38억년일까요?

 

 

< 우리의 숙제 >

 

강의 시작부에 종교재판과 관련한 갈릴레오의 편지를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나오는 그리스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가 떠올랐습니다. 남성 편력의 시대에 수학과 철학에 능통했고 매우 아름답기까지 하였으나 철학과 결혼했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독신의 삶을 살았던 그녀는 결국 종교적인 이유로 발가벗겨지고, 조개껍데기와 같은 날카로운 것에 온몸이 난자된 뒤, 불에 태워져 비극적으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기독교 역사에는 이토록 무섭고 마음 아픈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많은 환난과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실제 그렇게 되었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일들도 너무 많이 일어났습니다. 어쩌면 기독교의 그런 모습이 낳은 존재들이 니체요 도킨스가 아닌가 합니다.

 

이정모 관장님은 도킨스가 싫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그의 사상이 싫으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도킨스는 과학의 이름으로 신념과 이념을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과학, 그중에서도 진화론이라고 하면 긴장부터 하고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자세를 취하곤 합니다.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는 행위로 옮겨지지 않을 뿐 중세시대의 종교에 의한 탄압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한 갈등은 없을 수는 없으나 이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 창조와 과학의 갈등 해결법 >

 

"겸손이란 본능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이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한스 로슬링의 FACTFULLNESS』 에서 -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관계에서 위와 같은 ‘겸손’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눈다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정모 관장님께서 말씀하신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갈등-분리-접촉-지지라는 절차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 시대의 창조론과 진화론 간의 상태가 바로 ‘갈등’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갈등이 있으면 일단은 서로가 ‘분리’ 상태로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접촉’을 하여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지지’ 하거나 아직까지 서로의 입장 차이가 크다면 다시 ‘분리’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이견을 좁혀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가 함께 해결할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협력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바로 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언급했던 진화론의 문제를 창조과학에서 공격의 빌미로 삼는 행위는 이제 접어두고 지구 온난화나 기후 문제 등 인류가 21세기에 직면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자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왜?’라는 차원에서 접근을 하고, 과학에서는 ‘어떻게?’라는 차원에서 접근을 하여 폭넓게 해결책을 찾는다면 서로의 갈등은 어쩌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김완식 기자 (comebyher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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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송아지』를 읽고

 

"시내 산 정상으로 십계명을 받기 위해 올라간 모세가 사십일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자, 그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론을 강요해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 (중략) 우주와 지구의 기원과 관련해 성경의 문자적 표현과는 다른 설명을 제공하는 현대 과학에 대해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창조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아론의 송아지의 현대적 변형일 것이다."

 

 

임택규 | 아론의 송아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 334쪽 | 16,000원

 

 

“먼저 숲을 보고, 다음에 나무를 보십시오.”

 

과.신.대 [기초과정 1]을 마친 사람이라면 아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문장인지 알 것이다. 기초과정 말미에 우종학 교수님은 책 두 권을 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과.신.대 권장도서 목록 제일 첫 번째 책인 『창조론 연대기』를 통해 먼저 숲을 보고, 그다음 책인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를 통해 나무를 보라는 얘기다.

 

처음 과.신.대를 접했을 때는 마구잡이식으로 이 글, 저 글, 이 책, 저 책을 읽어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과.신.대 추천도서를 순차적으로 읽어가며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창조론 연대기』를 통해서는 과학과 신학은 대립구도가 아니라는 것과, 창조론에 대한 견해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를 읽으며 과학과 신학이 왜 대립구도가 아닌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책, 즉 성경과 자연은 신학과 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도구로 읽으면 된다는 것도 알았다.

 

 

『아론의 송아지』에서는 더 나아가 창조과학이 펼치고 있는 여러 주장들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가며 그것이 왜 틀렸는지 알려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내가 근본주의, 문자주의를 신봉하고 있었던 때라서, 읽으면서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이 저자 왜 이래? 왜 이리 글투가 공격적이지? 싸우자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꾸역꾸역 끝까지 읽었다. 그런데 입장이 바뀐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유쾌, 상쾌, 통쾌할 수가 없는 책이다.

 

저자인 임택규 님은 성균관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태양력 발전소와 관련한 대규모 송전 시절 프로젝트팀의 엔지니어로 일하고 계신다 (책날개 참고). 본인이 직접 겪은 일화들을 섞어가며 알기 쉽게 과학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창조과학을 제일 처음 접했을 때 유행했던 것이, ‘배 선(船)’자에 얽힌 이야기이다. 노아의 방주에 타고 있던 여덟 명의 사람들을 나타내는 거라고, 현직 한문선생님이 특강시간에 침까지 튀기시며 열렬히 강의를 하셨기 때문에 정말 찰떡같이 믿었다. 그리고 당연히 ‘한자에 담긴 창세기의 발견’이라는 책을 당장 구입했고,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글을 읽을 때쯤에 이 기가 막히게 멋진(?!)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에 보물처럼 갖고 있었다. 그러나『아론의 송아지』를 읽자마자, 너무 창피해서 그 책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책 내용을 빌리자면, 우선 한국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배 선(船)’ 자의 ‘입 구(口)’자 위에 있는 글자는 ‘여덟 팔(八)’이 아니라, ‘몇 기(几)’자라는 것이다. 전혀 다른 글자인데도 이것이 진리인 것처럼 책으로 출판되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린이용 창조한자 따라 쓰기 워크북이 있을 정도다.

 

 

이 책에서는 이 사안들 외에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창조과학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명쾌하게 짚어주고 있다. 특히 1부는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과학’, 2부는 ‘과학의 눈으로 바라본 신앙’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 서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생각하게 해준다.

 

앞의 두 책 – 창조론 연대기,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 – 에서 갈증을 느낀 독자라면, 이 책 아론의 송아지를 통해서 쾌감을 맛볼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혜련 기자 (1221hann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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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o sensibilisㅡ색채론


 남색 Indigo•blau  비 냄새가  나는 소년을 보았다. 



비가 내리는 것은 수 없이 많은  동그라미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세상에게 몸이 있다면 사선으로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비의 입구는  세상의 옆구리다. 간혹  세상의 천정인 하늘 문을 열고 쏟아지는 비도 있다. 며칠 전  달리는 자동차 표면에 우박처럼  빗방울이 직선으로  무겁게 떨어지는 모습을 봤다. 

그 비는  부딪히는 것마다 요란스러운 작은 방울들을 만들면서 튀어 올랐다. 비는 지표면에서 원들이 사방으로 번지게도 하지만 작고 동그란 물방울들을 튀어 오르게도 한다. 비는 재미난 공놀이를 하고 있다.  빗방울들의 공놀이는  진지하고 탄력이 넘친다. 

비가 내리는 틈과 틈을 베란다 창문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비가 문장이 되어 감각인의 시각을 연다.  비는 상식의 반란을 꿈꾸도록 감각인을 유혹하며 새롭게 번역되고  해석되어 지기를 욕망하고 있다.

비는 내 의식으로  쏟아지고  내 시선에 부딪힌다.  공기 속에 떠 있는 작은 액체나 고체 알갱이 같은 기억들이 에어로졸이 되어  냄새로 떠 다닌다.  비 냄새다!  페트리코 petrichor라고 부르는  비 냄새는 그 뜻을 살펴보면  돌에  묻은 신들의 피 냄새다. 신들은 피에서도 향기로운 향이 났던가 보다.

 


비가 오기 직전에 공기에 수분이 차오르고 토양이 습해지기 시작하면 흙 속에 있던 미생물들은 바빠진다. 가뭄동안 잠자고 있던 게으름뱅이 미생물도 일제히 깨워서  공기 중으로 튀어나올 준비를 한다. 

비 냄새는  빗방울과 지표면이 만드는 물 알갱이 때문이다. 비가 오려고 습도가 높아질  때  흙냄새를 품은 작은 물방울들인 에어로졸이 공기 중에 떠다니면서 사방으로 퍼져서 나는 냄새다. 

빗방울은 자세히 관찰해 보면, 땅 표면에 부딪히면 납작해 지고 부딪힘과 동시에 작은 거품들이 표면에서 위쪽으로 마구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이 거품들이 빗방울 표면에서 터지는 찰나에 흙냄새를 안고 있던 작은 물방울들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 우리는 비 냄새를 맡게 된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속도와 표면 성질에 따라서 느긋하게 혹은 재빨리 에어로졸의 구름이 퍼지면 그에게서 맡아졌던  비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사방에서 비 냄새로 있다가  산에서는  시원한 물향으로  난다.  

 


솟아오르는 거침없는  탄력과 오이 향내 나는 빗방울이  고독의 심연에까지 부딪혀 튀어 오르면 그는  차가운 냉정을 놓아버리고 허둥댔었지. 슬픔과 잇닿아 있는 비 냄새는 남색이다. 그에게서 나는  비 냄새는  빗방울이 쏟아지는 속도와 그의 마음이 닿는 부위에  따라 감정들이  맹렬한 에어로졸의 구름이 되어 남색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타다닥 타다닥 떨어지는 소리는 그의 두텁게 각질화된 마음 속에 남아있는 여린 살들의 비명이다. 그의 마음의 살은 온통 굳어 딱딱해져 있어서 뚫고 들어가기 어렵지만  꼭 감싸 안고 등을 토닥이듯 살짝살짝 긁어내고 걷어내면 아직 여린 도화의 살결이 말갛게 있다. 

소망이라는 것,꿈이라는 것, 욕망이라는 것이 쌓아 놓으면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일지라도 쌓고 또 쌓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결의를 다지는 자들의 용기는  남색이다. 

그에게는  삶이  더디 흐를수록 희망이 불의  혀처럼 격렬하듯이  꼭 사랑도 그러하지 싶다. 속절없이 황망하게 잃어버린 사랑의 색은 남색이다. 마음을 비우고 덜어내지 않으면 결코 채워지지 않는 마음만큼 대립과 모순이 있을까마는  살아온 여정 속에서 헛됨을 알아버린 자의 심장은 남색이다. 

헛되다는 것은 어디에나 안과 겉이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기쁨의 안감엔 슬픔이 있고 사랑의 다른 얼굴엔 미움이 있고 시작과 끝은 같이 있지 않은가. 떠남은 남겨짐이고 끝은 시작이듯이 두려움은 환희의 다른 얼굴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인생은 대위법으로 연주되고 헛됨을 말해주는  남색으로 물들이고 무위 無爲  속에 머문다. 

 


슬픔과 기쁨이 그의 마음에서 똑같이 나오는 광채라면 그것은 원처럼 순환할 것인 바,  남색은  순환하는 것들의 색이다. 반복되는 순환이 아니라 지양하는 순환, 그는 그렇게 남색으로 흥얼거리며 인생을 구른다. 

떠남의 자유를 잃고 그것을 그리워하는 그에게 남색은 갈등과 우울함의 색깔이다. 남색은
 고요하게 춤을 추는 쪽빛 수평선같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그는 마티스의 춤판에 뛰어든다. 손에 손을 잡는 대신  가슴으로 뛰어드는 것은  남색 숨결을 끌어안은 그인지 푸른 풀잎을 껴안은 바람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는 공복감이 만성이 된 것처럼 가볍고 두려움이 커다란 바위가 된 것처럼 무겁다. 그는 안과 겉이 하나로 녹아들고  그의 세월은 납작하게 흘러 내리며 세상엔  온통 남색 비 냄새가 퍼진다. 

라일락 향기만 별같이 깨어  있는  어둠이 내린 거리,  그는 소년이 되어 낯설지만 원시적인 맞부딪힘 앞에 서 있다. 빗방울에서는 남색의 비냄새가 스며 나오고 있던 밤,  나는  비 냄새가  묻어있는 소년을  보았다.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이성복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외로운 것
떨며 멈칫멈칫 물러서는 山빛에도
닿지 못하는 것
행여 안개라도 끼이면
길 떠나는 그를 아무도 막을 수 없지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외로운 것
오래 전에 울린 종소리처럼
돌아와 낡은 종각을 부수는 것
아무도 그를 타이를 수 없지
아무도 그에겐 고삐를 맬 수 없지

 

 

글_ 백우인 (bwoo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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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를 읽고

블랙홀 시뮬레이션 사진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를 읽고

 

 

우종학 교수님의 책 블랙홀 강의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 첫 문장: 우주가 끝없이 우리를 부릅니다.
  • 지막 문장: 알마는 외계행성 연구와 블랙홀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견을 거듭해가고 있습니다.

 

아마 교수님의 마음이 계속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창세기 원 역사 논쟁이나 복잡다단한 현재의 삶에 골치 아플 때, 나사에서 찍은 우주 사진들을 바라보면 머리가 시원해지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이 책은 지식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이성의 끝없는 도전과 발전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봤을 때, 우주를 창조하신 분과 우리에게 이성을 주신 분이 같으므로, 우리 앞에 펼쳐진 우주는 하나님의 성품과 예술성에 관해 우리가 배우고 향유할 수 있는 엄청 큰 책인 것 같습니다. 물론 우주에 관해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과학적 사실들이 시사하고 있는 영적인 의미들은 더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별의 죽음에 한 편의 서사시를 기록하여 블랙홀의 일생을 체계화시킨 인도의 위대한 천체물리학자 찬드라세카르의 말에 따르면, 블랙홀은 우주에 존재하는 대상 중 가장 완벽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블랙홀은 “물리법칙을 무너뜨리는 괴물”이라서, 심지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조차도 블랙홀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컨대 블랙홀은 인간의 현재 과학지식을 넘어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블랙홀을 생각하면 두려움도 생기지만, 수많은 상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영어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블랙홀에 대한 과학적 팩트보다는 블랙홀이 일으키는 상상력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우주와 상상력에 대해 정리한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주와 상상력:

 

  1.  32쪽 우주는 우리의 상상보다 더 신기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신기하다(J.B.S. 홀데인)
  2. 38쪽 인류가 위대해지는 순간은 바로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적 지평선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이 발휘될 때입니다. 그 상상력을 가지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 끊임없이 도전하는 과정이 바로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냅니다. 인간이 가진 능력 중에서 상상력만큼 뛰어난 것도 없습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3. 39쪽 이 광대한 우주는 어디서 기원했으며,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사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 아래, 수많은 작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집니다. 이미 답을 아는 수수께끼는 절대로 흥미롭지 않습니다.
  4. 41쪽 과학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수록 미지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집니다.
  5. 89쪽 우리는 비록 3차원 공간에 살고 있지만 4차원 공간이 존재한다고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6. 101쪽 우주는 블랙홀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지만 오히려 인간의 지성 세계가 블랙홀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지만 오히려 인간의 지성세계가 블랙홀이 살아남기 힘든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7. 123쪽 물론 우리가 모르는 어떤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가 블랙홀 안에 존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탐구되지 않은 영역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것이니까요

  8. 136쪽 우주여행은 상상만 해도 꿈만 같습니다. 신비로운 블랙홀이 우주여행에 이용된다면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주는 블랙홀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지만 오히려 인간의 지성세계가 블랙홀이 살아남기 힘든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천체관찰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실제로 가족들 데리고 천문대를 방문하여 실제로 안드로메다 은하도 관찰하였습니다. 전문가의 눈으로 블랙홀과 천체물리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이 책은 눈으로 직접 은하들, 별자리들, 성운들을 보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블랙홀을 직접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블랙홀에 대한 묘사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블랙홀에 대한 묘사

 

  1. 30쪽 무한한 영감의 세계인 우주에서 그 무엇보다도 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지성의 한계까지 우리를 내모는 대상은 바로 블랙홀입니다. ...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무한이라는 세계를 새롭게 펼쳐줌... 너무나 기괴한 존재... 블랙홀 같은 괴물은 우주에 존재할 수 없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2. 31쪽 우주 역사를 이끌어온 주인공
  3. 33쪽 다크 원더러: 별들 사이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블랙홀, 빛을 내지 않는 블랙홀
  4. 35쪽 우주여행에서 맞닥뜨린 블랙홀처럼 인생에서도 종종 다양한 블랙홀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5. 42블랙홀은 우주에 존재하는 대상 중 가장 완벽하다(찬드라세카르)
  6. 43쪽 블랙홀은 가장 인기 있는 후보
  7. 48쪽 블랙홀은 거의 무한밀도를 갖는 시공간의 작은 영역 혹은 질량체라고 하겠습니다.
  8. 59쪽 블랙홀은 상상력에서 태어난 검은 별
  9. 71쪽 블랙홀의 경우도 상상력이 발견을 앞선 경우입니다.
  10. 97쪽 블랙홀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기 전에 슈바르츠실트의 특이점(singularity)’라고 블림. 특이점이란 수학적으로 계산이 불가능한 상황
  11. 100쪽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을 슈바르츠실트 블랙홀’, 회전하는 블랙홀은 커 블랙홀
  12. 103쪽 블랙홀의 존재가 학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유는 아마도 블랙홀이 너무나 엽기적이기 때문...코스모스라는 말은 질서, 법칙이라는 의미이지만, 블랙홀은 이런 질서와 법칙에 도전하는 셈. 우리의 블랙홀은 모든 물리학의 지식을 얼려버린다고나 할까요?
  13. 104쪽 이렇게 많은 질문을 낳는 괴물
  14. 124쪽 블랙홀과 반대되는 개념이 화이트홀입니다, 블랙홀은 물질을 집어삼키기만 한다면 화이트홀은 물질을 내뱉기만 합니다. 과거에 물리학자들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하지만 화이트홀은 그저 이론적 개념에 불과합니다
  15. 126쪽 블랙홀은 결코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16. 127쪽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괴물
  17. 128쪽 퀘이사라는 블랙홀들은 1년에 태양 하나 정도 되는 막대한 양의 가스를 집어삼킵니다.
  18. 136쪽 물론 과학이 발전해서 블랙홀과 웜홀의 비밀이 풀리면 3대 법칙(로또, 일방통행, 묻지마)이 깨지고 실제로 우주여행이 가능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현대 과학의 지식으로 보면 한계가 많지만 인간의 이성은 끝없는 도전을 감당할 테니까요.
  19. 228쪽 대부분의 은하 중심부에서 블랙홀의 증거가 나왔습니다. 이 블랙홀들은 퀘이사와 달리 막대한 빛과 에너지를 방출하는 활동성 블랙홀이 아닙니다. 잠자는 사자처럼 그저 조용히 암흑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던 보이지 않는 블랙홀들입니다. 블랙홀에 가스가 공급되면 블랙홀의 엔진이 작동하며 퀘이사가 되지만, 반면에 블랙홀에 가스 공급이 없다면 빛을 내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게 됩니다.

 

허블망원경과 찬드라엑스선 망원경 등에 의해서 우주선을 타고 나가지 않아도 우주의 황홀한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더 황홀한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우리가 다 기업으로 물려받을 것이라고 성경이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단 한 가지 생각나는 단어는 “Speechless!”(말로 할 수 없다!)이었습니다. 그리고 블랙홀은 인간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저의 서평도 이렇게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인 것은 블랙홀과 관련된 팩트들입니다. 수많은 밤들을 춥고 외로운 관측소에서 보내면서 이러한 관측적 증거들을 발견하신 천문학자들 그리고 우종학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Facts

 

  1. 18세기 존 미첼이 빛의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아이디어 – 검은 별의 개념 착안
  2. 19195월 에딩턴 빛이 휘어짐 발견
  3. 1965우주 배경 복사 발견
  4. 95쪽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가 되는 별의 한계 반지름을 슈바르츠실트 반지름(Schwarzschield radius) 태양의 경우 약 3 킬로미터.
  5. 104쪽 그러나 우주가 어떠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과학은 때론 매우 위험합니다. 그토록 위대한 과학자들도 형이상학적 혹은 철학적 심지어는 신학적인 전제를 갖고 색안경을 낀 과학을 하는 바람에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6. 130쪽 중력파는 블랙홀들의 충돌로 생기는 시공간의 떨림과 같은 현상임.
  7. 138쪽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로 꼽히는 퀘이사들이 우주의 무대로 등장한 사건
  8. 149쪽 퀘이사(quasar) - 별과 비슷하지만 실제로 별은 아니며 그 대신 전파를 방출한다는 뜻으로 ‘quasi-stellar-radio source’라고 명명. 1964년 한 천체물리학자가 4개 단어의 머리글자로 quasar로 부름. 우리말로는 준성 또는 유사별
  9. 163쪽 그 엄청난 빛을 내는 에너지의 원천(퀘이사)이 결국 거대질량 블랙홀입니다.
  10. 192쪽 은하는 우주라는 거대한 집을 구성하는 벽돌 한 장과 같습니다. 광대한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바로 은하입니다. 가장 작은 단위라고는 하지만, 광대한 크기를 갖는 은하는 우주의 축소판입니다. 은하 하나하나가 작은 우주들입니다. 1000억 개 가량의 별들, 그리고 그 별들이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행성들, 그리고 인터스텔라 공간을 채우고 있는 방대한 양의 가스,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하의 중심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은 거대질량 블랙홀이 은하를 구성하는 식구들입니다.
  11. 202쪽 스스로 빛을 방출하지 못하는 암흑물질은 별들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별과 가스처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물질보다 암흑물질의 양이 대략 5배는 많습니다.
  12. 2342019410일 최초로 블랙홀 그림자를 확인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흔들었습니다.
  13. 255쪽 빛이 블랙홀에 의해 포획되는 영역을 블랙홀 그림자’(black hole shadow)라고 부릅니다, 블랙홀이 빛을 포획하는 영역의 크기는 광자 포획 반지름(photon capture radius)’라고 부릅니다.
  14. 270쪽 태양보다 무거운 큰 별들의 경우, 핵융합 반응을 하는 수명이 1,000만 년 정도 됩니다. 별의 일생을 100년의 시간에 비유한다면 인간의 수명은 고작 몇 분에 해당될 뿐입니다.
  15. 284쪽 찬드라세카르의 계산 결과는 백색왜성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1.4배보다 작아야 한다는 걸 보여주었고, 그래서 태양 질량의 1.4배를 찬드라세카르의 한계(Chandrasekhar limit)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16. 285쪽 블랙홀이 되려면 중심부의 질량이 태양보다 3배 이상 무거워야 합니다.
  17. 302쪽 조슬린 벨의 회고를 들어보면 그녀는 이 규칙적인 신호가 작은 녹색인이라는 뜻을 가진 LGM(Little Green Man)들이 보내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 영화 콘택트(1997)의 소재
  18. 304쪽 마침 그 학회에서 휠러의 강연을 듣던 청중 한 사람이 블랙홀이라고 부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귀가 번쩍 뜨인 휠러는 블랙홀이라는 표현이 바로 자기가 기다렸던 이름임을 깨닫습니다. 휠러 박사는 그해 12월 강연에서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지요. 이 강연 내용이 그다음 해인 1968년에 출판되면서 블랙홀이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글_ 최성일 기자 (ultracha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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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 김성신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 오타가 있습니다. 뇌와 관련된 사이버 과학이 아니라 “사이비 과학”인듯 합니다. 수고하세요!

    궁금 2020.04.27 16:58

 

* 과신대 기자단에서 제19회 콜로퀴움 발표자이신 김성신 박사님(기초과학연구원 뇌과학이미징 연구단)을 만나고 왔습니다. 김성신 박사님의 안내를 따라 뇌과학 실험실과 장비를 소개받고 재미있는 뇌과학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콜로퀴움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해주세요.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20년 4월 10일

인터뷰어: 백우인, 최경환

 

 

과신대 회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기초과학연구원 뇌과학이미징연구단의 김성신 박사입니다. 저는 최첨단 뇌과학 장비를 사용해서 인간의 기억과 학습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학습을 하고,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희 과신대는 어떻게 아시게 되셨나요?

 

한 4년 전인가, 제가 시카고에 있을 때, 제가 있는 시카고 온누리 교회에 우종학 교수님이 오신 적이 있어요. 우종학 교수님이 강연을 하셨는데, 아마 우 교수님은 기억을 못 하시겠지만, 같이 식사를 하면서 제가 식사 기도를 했습니다.^^

 

어쩌다 뇌과학을 공부하게 되셨나요?

 

우연인데요. 저는 원래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때 트랜드가 정보통신 분야여서 그쪽을 기웃거리다 마친 응용생체공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분야를 복수전공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유학을 가서는 뇌과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습니다. 다양하게 이것저것 공부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뇌과학이라는 학문이 뭔지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뇌과학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영어로는 Neuroscience라고 하는데, 이걸 그대로 번역하면 신경과학이라는 말이 더 맞습니다. 암튼, 뇌과학은 학제 간 연구인데, 뇌과학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 심지어는 법학에서 학제 간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뇌에 대한 이해를 다양한 분야에서 하는 거죠. 융합 학문의 성격이 강합니다.

 

실제로 어떤 실험을 하나요? 뇌를 분해해서 조사하나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도 있고,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쥐나 원숭이나 새의 뇌를 연구하기도 합니다. 또 다양한 레벨에서 실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유전자 레벨에서 연구를 할 수도 있고, 세포 레벨 혹은 상위 레벨인 뇌의 네트워크를 연구할 수도 있습니다. 뇌의 기능 별로 연구가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인지나 행동의 수준에서 연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이라고 불리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는 기억이나 학습과 같은 좀 더 고등 인지기능을 연구합니다. 주로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었는데, 지금은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인지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건가요?

 

우리가 외부 사물을 인식할 때, 감각 기관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뇌가 인지하기도 하지만, top-down 방식으로 인식하기도 해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사물을 인지하기도 하죠. 이렇게 되면 착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기존 지식으로 인해 왜곡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각 영역에서 이런 실험도 많습니다. 실제로 시각이 인식하는 것과 다르게 뇌가 인식하는 것이죠. 많이 아시는 것처럼, 같은 길이인데 어떤 건 더 길게 보이기도 하고 짧게 보이기도 하죠. 우리의 실제로 지각하는 것이 실제 지각이 아닐 수 있다는 거죠. 뇌가 어떤 해석을 하고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죠.

 

고무 팔 착시 현상이라고 있습니다. 책상 위에 실제 자기 팔과 고무 팔을 하나씩 올려놓고, 붓으로 양쪽을 모두 간질이면 어떻게 될까요? 처음에는 고무 팔이 실제 자신의 팔이 아님에도 그 고무 팔이 마치 자기 팔처럼 느껴지는 착시 현상이 일어납니다. 소위 이것을 embodiment 체화된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누가 고무 팔을 바늘로 찌르려고 하면, 실제로 자기 팔을 찌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일종의 착시죠. 뇌가 이것을 동기화시키는 거죠.

 

자전거를 탈 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죠. 누군가 끼어들면, 마치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것처럼 느끼는 거죠. 사물과 자기 자신이 일치되는 현상을 경험하는 거죠. 이처럼 우리가 정말 실체를 인식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죠.

 

합리적 의사결정도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과 붙어 있는 감정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냥 그게 좋아서 결정을 내리는 거죠. 분명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과 관련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죠.

 

요즘 이와 관련된 책을 보면 ‘신경중심주의’나 ‘뇌결정론’과 같은 용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용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아직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없지만 어찌 됐던 모든 것들이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라고 말합니다. 종교적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제 지도교수님도 ‘종교는 그저 망상(illusion)이다’라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뇌에서 일어나는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현실과 인식의 괴리로 인한 착시라는 거죠.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적용하거나 어떤 법칙으로 뇌과학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질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상관관계입니다. A와 B가 어떤 관련이 있는 건데, 마치 이것이 인과관계인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뇌과학은 그런 유혹에 시달립니다. 제가 하는 fMRI도 상관관계입니다. 관련이 있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마치 A가 B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단정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저희는 그 인과관계를 밝혀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죠. 하지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거죠. 저는 뇌라는 것이 워낙 복잡한 시스템이라서 이것을 환원주의적으로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의 뇌는 소우주입니다. 뇌를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가 아는 것이 정말 너무 적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실 저한테 뇌에 대해서 뭘 물어보면, 태반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그만큼 우리가 뇌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설령 먼 미래에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한다고 해도 과연 우리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해요. 의식과 같은 주제들이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또 한편, 의식에 대한 질문은 과연 이것이 과학의 영역이냐, 과학이 대답할 수 있는 영역이냐 하는 것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이번 과신대 콜로퀴움에서 다룰 내용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뇌과학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뇌과학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뇌와 관련된 사이비과학, 유사과학도 많습니다. 뇌호흡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도 있고. 그리고 뇌와 관련된 영화도 많이 있어서 그런 것도 소개하려고 합니다. 뇌과학과 관련된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도 간단하게 다뤄보려고 합니다.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돼서 사람의 정체성이나 성격이 바뀌는 사례라든가, 기억이 사라지는 사례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저는 과학철학이나 신경윤리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라서 제가 전공하고 있는 분야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인지신경과학에 대한 소개, 기억과 학습에 대한 연구, 뇌이미징 최신 기술이나 신경조절기술 같은 최근 뇌과학의 연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뇌과학의 미래에 대해서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또 제가 연구하는 분야의 한계도 말씀드리려 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이 언론을 통해 접하는 것을 보면 당장 뭐라도 될 것처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뇌과학의 실상과 기술의 한계도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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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번개 특강] 구글 이노베이터 김정준 목사님께 배우는 '스마트 예배'

[과신대 번개 특강]

 

구글 이노베이터 김정준 목사님께 배우는

'스마트 예배'

 

최근 COVID-19 사태로 인해 인터넷 예배, 주일학교 등의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가 많을 줄 압니다. 과신대가 이런 교회에 작게라도 도움을 드리고자 구글 이노베이터 김정준 목사님을 모시고 소형 교회를 위한 "스마트 예배" 온라인 특강을 준비했습니다.

 

이번에 김정준 목사님께서 강의해 주실 내용은 중소형 교회부터 대형 교회가 적용 가능한 온라인 예배 솔루션입니다. 구글 클래스룸 활용법과 스트림야드에 대한 소개까지 초보자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강의해 주실 예정입니다. 이번 COVID-19 사태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온라인 예배를 위한 교육이 될 것입니다.

 

** 영상 강의 링크: https://youtu.be/ch2HUW3zbKE

 

  • 강의 내용: 주일학교에서 클래스룸 사용하기,  온라인 교회에 사용 가능한 솔루션 소개, 온라인 방송국을 위한 준비물, 스트림야드streemyard 소개, 스트림야드에서 방송 만들기, 온라인 예배 실습 등

  • 일시: 2020년 4월 28일(화) 저녁 8시 (약 2시간)

  • 수강료 무료

  • 수강방법: 수업 전에 미리 아래 순서에 따라 구글 클래스룸에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1) gmail로 로그인을 한 후, 메뉴에서 클래스룸(classroom)으로 이동 혹은 https://classroom.google.com 접속

 

2) 오른쪽 위 + 버튼을 누르고 수업 참가하기 선택

 

3) 접속 수업코드 gi4myto을 입력하고 클래스룸 들어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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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콜로퀴움]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

 

2020년 첫 번째 콜로퀴움 주제는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젊은 뇌과학 연구자로 주목을 받고 있는 기초과학연구원의 김성신 박사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본 강연은 뇌과학의 연구 대상과 몇 가지 중요한 주제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뇌과학에 대한 오해들을 점검해봅니다. 이어서 뇌과학을 소재로 한 흥미로운 영화들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윤리적, 철학적 문제를 다뤄 볼 계획입니다.  

또한 강연자의 주된 관심 분야인 기억과 학습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역사를 살펴본 다음, 뇌의 활동을 관찰하고 조절하는 최신기술과 성과들을 소개하며 뇌과학의 향후 발전 전망에 대해서도 소개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 과학자로서 뇌과학 분야의 연구에 대한 생각과 고민들을 나눠볼 것입니다. 

최근 뇌과학의 동향과 연구를 소개받을 수 있는 귀한 강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신비하고 놀라운 뇌과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시면 어떨까요?

 

*  이번 강연은 온라인으로만 진행됩니다. 수강신청을 해주시면 이메일을 통해 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 일시: 2020년 5월 5일(화) 낮 12시 (시청기간: 5월 15일 낮 12시까지)

* 등록비: 5,000원 (과신대 정회원, 청소년은 무료)
   등록비 입금 계좌: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강연 순서

1부 강연(약 50분) :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 (발표: 김성신 박사)
2부 대담(약 50분) : 김성신 박사, 최경환 국장 

 

* 강사 소개

 

김성신 박사 (기초과학연구원 뇌과학이미징 연구단) 

서울대에서 화학공학과·전기컴퓨터공학과를 복수전공했다. 이후 2013년 미국 남가주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7년부터 IBS에서 선정한 영사이언티스트 펠로우로 선정돼 성균관대학교 뇌과학이미징 연구단에서 뇌과학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세상의빛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의 연구실 홈페이지는 http://clmnlab.com 이다.

 

 

** 정회원 가입을 원하실 경우 입회신청서와 후원약정서를 제출해주세요.

> 정회원 입회 신청서 : goo.gl/YYP76E
> 정기 후원 신청서 : https://bit.ly/2VLxH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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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과학을 품고 미래로 나아가겠습니다.”

 

김정형 교수님의 과신대 <핵심과정> 강의를 듣고

 

 

삼국지의 가장 유명한 전투인 적벽대전에서 유비는 손권과 연합하여 조조의 80만 대군을 물리칩니다. 이 전투에서 유비와 손권의 승리가 가능했던 것은 중원을 조조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그들의 미래 지향적 판단이 주요했기 때문입니다. 장신대 김정형 교수님의 과신대 핵심과정 강의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방금 말씀드린 삼국지 3대 전투 중에 하나인 적벽대전이었습니다. 교수님의 강의 의도와 목적은 전쟁으로 치면 장차작전(future operations)을 고려하자는 말씀으로 이해가 됩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과거 인식과 현재에 대한 상태 파악이 필요하기 때문에 창조론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과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신앙과 과학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까지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포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강의에서 신앙의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강의해주신 내용에 대해 간단히 요점을 설명드리고, 우리가 어떻게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창조의 시작 - 창조론

 

우선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과 창조설(creationism)의 용어 정의부터 하겠습니다. 창조론은 교리(doctrine)로서 창조자 하나님의 성품과 창조의 목적, , 하늘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WhoWhy의 문제입니다. 이에 반하여 창조설은 이즘(ism)으로서 과거 창조의 기원, , 땅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WhenHow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창조설을 창조론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창조설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분류됩니다.

 

•평평한 지구 창조설(flat earth creationism)

•지구 중심 창조설(geo-centric creationism)

•젊은 지구 창조설(young-earth creationism)

•간극 창조설(gap creationism)

•날-시대 창조설(day-age creationism)

•점진적 창조설(progressive creationism)

•진화적 창조설(evolutionary creationism)

 

위와 같이 창조설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만, 창조자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며 과거 기원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각각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비본질적인 문제로 창조설 간에 논쟁을 하기보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본질적인 창조신앙의 입장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화합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한편, 창조론에 기반한 창조신앙은 창세기에만 국한된 게 아니고 신구약 성서 전반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창조신앙을 보이고 있는 시편을 비롯하여 포로기 이후에 강조되는 창조신앙, 이방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예언서, 한 분이신 하나님을 강조하며 창조신학적인 함의를 나타내는 율법서, 모든 것의 답은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지혜 문학의 잠언과 전도서, 하나님을 창조자로 전제하고 있는 신약성서 등 구약과 신약 성서 전반에 걸쳐 다채롭고 풍요로운 포괄적 창조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창조신앙을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창조를 역사적 기원으로만 보기 보다는 창조의 시제가 영원을 향하고 궁극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완성시키실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창조의 완성입니다.

 

 

창조의 진행 - 과학의 시대

 

현재,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급속한 과학의 발전이 때로는 신앙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창조론에 대한 본질적인 도전은 아닙니다. 이유는 과학적 사실만으로 전달할 수 없는 본질적인 진리가 성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학의 시대에 과학을 배척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이 많은 까닭에 우리는 과학을 신앙과 갈등 관계로 보거나 무관하게 보는 자세를 지양해야 합니다. 또한,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과 근본주의적 교리 신학 또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주어진 정답을 암기하는 정체된 신앙이 아닌 신구약 성서를 관통해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하는 역동적 신앙으로 탈바꿈해야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과학을 품으면 의심이 늘어나가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더욱 풍요해집니다. 더 광대하신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더 오묘하신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더 신비로우신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의 신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배척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한다면 복음 전도와 선교의 기회를 놓쳐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의 탐구 대상인 자연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인식하에 신학과 과학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 두고, 궁극적으로는 과학이 제공하는 지식을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간적접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겠습니다.

 

 

창조의 완성 - 도전과 응전

 

사실 어떠한 창조설을 따른다 하더라도 창조론자로 살아가기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시대의 특징을 생각할 때 청소년이나 청년들과의 대화를 생각한다면 과학을 품는 창조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대별 다양한 입장을 존중하고 비본질적인 문제로 인한 소모전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눈높이 창조신앙이 필요하며, 나아가 창조자 하나님의 신앙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미래 지향적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이안 바버(Ian Barbour)가 정의한 종교와 과학이 관계를 맺는 방식의 네 가지 유형(갈등, 독립, 대화, 통합) 중 통합 모델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으로 보입니다. ‘통합 모델’은 그 안에 세부적인 모델이 있으며, 그 중 ‘자연의 신학 모델’이 기독교 창조론의 핵심 진리를 보존하면서도 현대 과학과 유의미한 대화의 창구를 열어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모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신앙에 대한 도전은 이러한 과학적 세계관으로부터만 오는 게 아니라, 맘몬을 우상으로 섬기는 물신주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다양한 폭력, 지구 환경의 파괴로 인한 생태계 위기 등으로부터 올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도전은 과거가 아닌 미래로부터 옵니다. 트랜스 휴먼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러한 미래로부터의 도전은 과거 이야기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창조신앙으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살아 응전해야 하며 입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글을 정리하며 다시 삼국지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삼국지의 3대 전투는 서두에 말씀드린 적벽대전을 비롯하여 관도대전과 이릉대전이 있습니다. 이 전투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세력이 큰 쪽이 패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부풀려 포장된 중국문학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전투들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바로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과 ‘강한 도전에 응전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이 손을 잡지 않았다면 조조를 물리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도전에 응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관도대전과 이릉대전에서 숫적 열세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현행작전(current operations)도 중요하지만 장차작전(future operations)도 반드시 고민해야 하고 계획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본질적이지 않은 이유로 분열하거나 갈등을 해서는 미래의 승리를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다양한 생각을 하는 창조론자들이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 이 신앙고백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위협에 맞서 함께 힘을 모아겠습니다. 바로 창조와 과학을 품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12)

 

 

과신대 김완식 기자 (comebyhere@daum.net)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View vol.35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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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



과신대의 소식을 전하는

과신대 VIEW - 35호


과신대 칼럼

우리의 편견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


황소현 교수
차의과학대학교 의생명과학과
(과신대 자문위원)



대학교 유전학 수업시간 중에 교수님께서 “종교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생물학을 연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이야기하시면서, “생물학을 공부하는 것과 신앙을 가지는 것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라고 강요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더보기)


지난 번에 저희 과신대가 '공익경영센터'에서 지원하는
비영리 스타트업 단체로 선정된 소식을 전해드렸는데요.
그 사업의 일환으로 이번에는 스타트업 단체를 돕는
엑셀레이팅 교육에 참여했습니다.

▶︎▶︎ 사무국 소식 보러가기

소소한 사무국 소식을
정회원 여러분에게 전달해 드립니다.


 과신대 사무국 이야기 

과신대 사무국에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과책 ]
"내가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서평
 
글 : 이혜련 기자

크리스천이 되었더니, 과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한다는 말이 들린다. 솔깃하긴 했지만, 방사선동위원소니 하는 말들이 예사로 등장하는 창조과학 강의는 어렵기만 했다. ‘에라, 모르겠다. 과학은 과학자들이 하라지. 그게 꼭 구원과 관계된 것은 아니잖아? 과학 몰라도 복음은 잘 전할 수 있는데 뭘.’ 이것이 내 입장이었다. 그래서 프롤로그를 읽으며 가슴이 뜨끔했다. (더보기)


[Coming Soon]

<2020 과신대 기초과정> 안내

신앙과 과학에 대한 가장 명쾌한 강의!
과신대 대표 강좌를
온라인으로 만나보세요 : )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더보기)


[과신대 칼럼]
Homo amansㅡ
그대와 나는 생명나무(Tree of Life)다
 
글 : 백우인 (과신대 팀장) 

볕이 좋은 날은 창문 밖을 향해  마음이 서두른다. 초록잎을 가진 식물들이 볕이 드는 쪽을 향해 가지를 뻗고 몸이 굽는 심정이 내 심정이다. 나는 경쾌하고 강렬하게 분출하는 태양을 향해 서슴없이 반사적으로 얼굴을 돌리는 해바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더보기)

[과책 ]
엘리에저 J. 스턴버그,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서평
 
글 : 박우민 기자

이 책의 뛰어난 점은 8장에 걸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이야기로 구성되는 각 장이 뇌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기이한 상담 사례로 시작되며 앞장에서 제시된 문제가 해결되면서 잇따라 제기되는 의문을 연결해서 풀어가는 추리소설과 같은 흥미로운 전개 방식이다. (더보기)


[과신대 이야기 - Story]
“겁나” 가슴에 와 닿았던
『창세기와 성경해석』

과신대 핵심과정 (김근주 교수) 후기

글 : 김완식 기자

이번 과신대 핵심 강의가 뜻하지 않게 오프라인 강의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아쉬움 가득한 건 모두가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근주 교수님의 강의는 정말 유익했고 “겁나” 가슴에 와 닿았던, 명불허전(名不虛傳) 그 자체였습니다. (더보기)



과신대와 뜻을 함께 할 협력교회를 모집합니다. 

과신대는 과학주의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변증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위해 건강한 창조신학을 교육하고 연구합니다. 

과신대의 비전과 사역을 지지한다면 과신대와 함께하는 교회로 동참해 주세요. 

과신대는 앞으로도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기독교 교육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보급하기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 과신대를 후원하는 사람들 -


후원이사

곽*엽, 권*렬, 김*수, 노*경, 박*경, 이*민, 조*희

-

교회 및 단체 후원

iOttie Inc, (주) 이어로직코리아,
정*(더처치), 안*성(그루터기교회), 새맘교회, 강*규(사귐의교회),
정*희(신도중앙교회), 권*렬(한우리교회)

-

개인 후원


비정기 후원
박*현

-

** 과학과 신학의 대화 후원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과.신.대 비전>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자문위원>

  강상훈 교수 | 베일러대학교 생물학
  권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물리학
  김근주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기석 교수 | 성공회대학교 총장
  김기현 목사 | 로고스서원 대표
  김요한 목사 |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익환 교수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김정형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근한 교수 | 유타대학교 기계공학부
  박영식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일준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치욱 교수 | 퍼듀대학교 약학대학
  박화경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희주 교수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박희규 교수 |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백경민 교수 |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송수진 교수 | 고려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신은철 교수 |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신희성 교수 | 인하대학교 수학과
  오세조 목사 | 팔복루터교회
  우종학 교수 | 서울대학교 천체물리학과
  윤철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이길연 교수 | 경희대학교 의대, 외과과장
  이문원 교수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이상희 교수 |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과
  이상은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조직신학
  이정모 관장 | 국립과천과학관
  이현식 목사 | 강남중앙교회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임범진 교수 | 연세대학교 의대, 병리학교실
  장왕식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
  정대권 교수 | 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
  정삼희 목사 | 신도중앙교회
  정  준  목사 | 더처치
  조성호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차정호 교수 | 대구대학교 화학교육
  최승언 교수 |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
  팽동국 교수 | 제주대 해양시스템공학
  허  균 교수 | 아주대 의과대학 신경과
  현요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황소현 교수 | 차의과학대학교 병리과/의생명과학과
 
<운영위원>

  우종학 | 대표

  강사은 | 실행위원장
  정대경 | 연구팀장
  윤세진 | 교육팀장
  백우인 | 출판팀장
  이승훈 | 미디어팀장
  이신형 | 북클럽팀장
 
  구형규 | 감사
  김성래 | 감사

  최경환 | 기획실장
  장민혁 | 행정간사
  이슬기 | 미디어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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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사무국 소식 202004

 

지난 번에 저희 과신대가 '공익경영센터'에서 지원하는

비영리 스타트업 단체로 선정된 소식을 전해드렸는데요.

그 사업의 일환으로 이번에는

스타트업 단체를 돕는

엑셀레이팅 교육에 참여했습니다.

 

스타트업 엑셀레이팅은

초기 단계의 단체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엑셀레이팅 전문 기업

크립톤의 양경준 대표님께

훌륭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과신대를 위한 맞춤형 Q&A도 해 주셨는데요.

앞으로 저희 같은 단체는

다양한 매체와 채널을 통해 수

입을 창출하는 형태로 콘텐츠를

확장하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교육을 받으면서 과신대 정회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과신대의 행사들이

대부분 온라인으로 전화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많은 분들이 신청하신 <핵심과정>도

현재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1강부터 4강까지의 강의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방청객도 없는 상황에서 긴 시간 열강을 해주신

교수님들 덕분에 좋은 영상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5강 영상은 특별히 이관모 관장님이 계시는

국립과천과학관에 가서 촬영을 했습니다.

국립과천과학관도 코로나19로 인해

한 달 동안 휴관을 하고 있어서

자연사관에서 단독으로 촬영을 했습니다.

 

티라노사우르스를 배경으로 강의를 하니

훨씬 더 실감나고 현장감이 넘치는 강의였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강의도 기대해주세요.^^

 

 

예전에는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수업하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기만 했는데

이제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신대에서도 화상 채팅 프로그래을 통해

최근에 다양한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과신대 연구모임, 실행위원회 회의, 사무국 회의 등

앞으로 영역을 확대해서

온라인 북토크나 정회원들의 나눔 모임을

진행해 볼까 합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어

온라인 화상 채팅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_ 과신대 사무국장 최경환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