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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이야기/과신대 소식

형이상학의 붕괴와 과학과 종교의 분리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9. 8. 26.

 

과신대 연구모임 후기 (2019년 7월)

 

정대경 팀장 (명지대, GTU, Ph.D.)

 

 

7월 과신대 연구모임은 피터 해리슨 책 “The Territories of Science and Religion”의 챕터 6과 판넨베르크의 “The Historicity of Nature”의 편집자 서문, 챕터 1과 2를 읽고 모였습니다. 해리슨은 자신의 챕터 6에서 고대, 중세까지 "인간의 내적인 덕목"으로 여겨지던 scientia 라는 개념이 18-9세기를 거치면서 "자연에 대한 지식 혹은 지식체계” 등으로 점차 자리매김하고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더불어 19세기 중반까지도 여전히 자연철학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자연과학”이라는 용어가 자연을 연구하는 학문적 태도 혹은 학제에 서서히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지적합니다.

 

모든 단어나 개념들의 정립이 초기에 그러하듯, 과학(science)이라는 단어는 19세기 전반에 걸쳐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활동을 일컫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생리학도 과학이고, 낚시법도 과학으로 불렸다지요.

 

17세기 뉴턴으로부터 다윈의 스승이었던 19세기 존 헨슬로우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지배적인 정서는 자연에 대한 연구와 인간에 대한 연구 모두 신적인 질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보는 관점이었습니다. 일례로 헨슬로우는 자신이 출제한 식물학 시험에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받아왔던 건강한 학문과 종교교육에 자연과학이 굳건히 자리 잡은 것을 보니 참으로 기쁘다.” (151쪽, 박희주 역)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여전히 종교적인 동기가 자연을 연구하는 지배적인 요인이었지만 점차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해리슨은 17세기에는 자연철학, 곧 현대적 의미의 자연과학이 종교적인 활동임을 강조했었다면, 19세기에는 자연신학이 귀납적 과학연구라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권위있는 학문적 태도가 더 이상 종교적-신학적 태도가 아니라 귀납적-경험적 태도라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이지요.

 

19세기 후반부터 윌리엄 제임스, 막스 베버 등이 과학적 연구로부터 개인의 도덕성 훈련 등의 덕목을 분리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과학연구는 인간 혹은 개인의 도덕적 본성을 훈련하는 학문과 태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막스 베버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오늘날 과학(Wissenschaft)은 비종교적이며 그 누구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159쪽, 박희주 역) 종교와 과학이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나아가 자연과학은 기존의 자연철학으로부터도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종교와 과학이 분리되기 시작한 원인에 대해 해리슨은 3가지를 강조하는데,

 

“과학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등장했다는 것,
종교적-도덕적 요소가 배제된 "과학적 방법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는 것,

"과학-과학자”를 여타 다른 학문적 태도-학자들과 날카롭게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1864년 발족한 “X-club” 같은 일군의 학자들이 정치적인-사회적인 이유로, 전문성의 이유로 이중직을 유지하고 있었던 과학자-성직자를 배제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연구의 엄밀성과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두 가지 일을 전문적으로 하기 어려워진 환경도 있겠지만 정치적인, 사회적인 이유도 있었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분리의 배경에는 기존 지배적이었던 학문적 태도, 하나의 거대한 이론적 체계를 만들고, 그 안에 각 학문을 통해 얻어지는 데이터들을 해석해내는 학문적 태도가 점차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한 것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이러한 붕괴를 형이상학의 종말이라고 부릅니다. 판넨베르크에 따르면, 하이데거는 니체로부터, 어거스트 콩트는 실증 학문의 출현들로부터, 빌헬름 딜타이에 따르면, 역사적 사유 방식의 출현 때부터 형이상학은 종말을 맞이하였다고 봅니다.

 

흥미롭게도 판넨베르크는 이러한 형이상학의 붕괴는 곧 신학과 철학이 분리되었기 때문에, 혹은 철학 안에서 현실의 총체로서의 세계 개념, 곧 철학적 신론이 배제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지적합니다. (판넨베르크, 신학과 철학, 1권, 20쪽.) 단순히 개별 학문들의 전문화, 세분화, 자립화의 결과가 아니라 말입니다. 일리 있습니다. 각 학문들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각 학문들을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틀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직관적 인식, 그것과 더불어 사회적-정치적 동기로 인해서 종교와 과학은 더 이상 인간의 내적인 덕목을 함양하는 차원이 아니라, 각각 세계를 다른 방법으로 연구하고 창출해내는 연구방법과 지식체계로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세기 초 앤드류 화이트 같은 학자들을 통해 종교와 과학 사이의 전쟁 혹은 갈등 모티프가 강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해리슨은 종교와 과학, 두 단어의 개념사적인 접근을 통해 현대 종교와 과학이 이해되고 있는 방식은 역사 안에서 고정적이지 않았다는 것, 두 학제 간 관계가 필연적으로 갈등에 놓여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듯합니다.

 

 

이후 토론을 통해 함께 모인 과신대 연구모임 연구자들은 자연주의의 한계, 자연과학의 권위와 유용성, 자연과학자들의 전문 연구 그룹 내 학문적 태도와 일반 대중들 앞에서 대중강연을 할 때의 태도 사이의 간극 등의 논의들을 다루었습니다. 해리슨 책을 통하여 종교와 과학 사이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과학과 종교가 각각 무엇인지를 정리했다면 다음 모임부터는 신학과 과학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실재, 세계를 이해하는데 상호작용이나 협력, 대화가 가능할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자연과학 이론은 실재하는 세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표현하는지 등에 관한 과학적 실재론 논쟁, 신학 이론 또한 실재를 표현하는 진술일 수 있는지 등을 살펴보는 신학적 실재론 논쟁, 나아가 신학과 과학이라는 구분된 학제가 주어진 실재를 이해하는데 상호협력이 가능하다고 피력해온 과학신학 내 비판적 실재론 등의 개념들을 가지고 연구하고 토론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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