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 나, 그리고 어머니.

  • 삶은 미완성인 것같습니다. 그래서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식을낳고키우고결혼시키고나면죽고...또....>

    아담 2020.07.04 11:45

 

이은, 나, 그리고 어머니.

 

백경민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조교수, 과신대 자문위원)

 

 

우리 부부에게는 17개월 된 딸이 있다. 이름은 백이은. 결혼 후 5년 만에 얻은 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가 40이 넘어서 얻은 첫 자녀라서 그런지 점차 ‘딸 바보’가 되어 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육아’다. 이은이가 무엇을 보며,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커 가는지를 하루하루 눈에 꼭꼭 담아 두려 하고 있다.

 

이은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돌아보게 되는 것은 나 자신 그리고 나의 부모이다. 어머니는 이은이가 태어나기 딱 1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10년 간 암투병을 하시다가 결국 이겨내지 못하시고 하나님 곁으로 떠나가셨다. 당시 해외에서 일하고 있었던 나는 어머니의 암투병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어머니의 마지막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 이은이가 찾아왔다. 이은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가정적이지 못하셨던 아버지와 함께 나와 내 동생을 키우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땠을까가 계속 상상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서 아주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예전에 어머니와 가본 적이 있었다. 그 집은 부산 어느 달동네였다. 어머니는 장을 보거나 연탄을 나르기 위해 매일 나를 등에 업고 몇 번의 등산을 하셨다고 하셨다. 그 때 나는 그게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다. 아니 그냥 내 귀를 스치는 소리로만 지나갔었다. 하지만 이은이를 재우기 위해 아파트 밖을 매일 서성거리면서 그리고 매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면서 어린 나를 등에 업고 달동네의 가파른 고갯길을 몇 번을 오르셨을 그 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작년에 이은이가 태어났을 때 귀에 문제가 있었다. 난청이 발견되어서 조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귀하게 얻은 딸에게서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 감정이 좀 진정되고 이은이가 무사히 언어 발달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나와 어머니가 겪은 일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무릎이 갑자기 아파서 병원을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가 암일 가능성이 있으니 암이라면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때 옆에 앉아 있었던 어머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시고 오열을 하셨다. 물론 다행히 나는 암은 아니어서 살아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때 나는 어머니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아픈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은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통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때 어머니는 과연 무슨 심정이었을까를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기뻤냐고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두 말 하지 않고 내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였을 때라고 말씀하셨다. 삼수 끝에 원하던 학교에 입학통지를 인터넷으로 확인하던 그 날 “합격”이라는 문구가 스크린에 뜨자마자 어머니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며 그렇게 목놓아 우셨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중요했지 어머니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사실 그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부모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까를 알기에는 이은이가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이은이를 키우면서 나는 어머니의 그 감정을 이해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요즈음 나는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를 통해 나를 보고 있고 내 옆에 서있었던 어머니를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느꼈던 감정을 한땀한땀 나도 같이 느껴 가면서 인생이 성숙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온전히 부모로서의 감정을 다 느꼈을 때 나도 삶의 끝자락에 서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이은이도 한 자녀의 어머니로 느껴갔으면 한다.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날 하늘을 보면서 그렇게 읊조렸던 것 같다. 

 

“엄마. 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사랑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