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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우주라는 대양의 기슭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1. 11.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쓰게 되는 2020년 한 해가 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 난항을 겪고 있는 국내의 초법적 특권층인 사법부와 의료계 개혁,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는 경제 민주화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경제침략으로 인해 아직 대한민국의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았구나 하는 민족적 각성이 한껏 고양되기도 했다. 참으로 묘하게도 일본 정부의 의견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국내 언론을 보면서 “언론개혁”의 당위성과 “토착왜구”라는 실체를 대한민국의 각계각층이 정말 뼛속 깊이 확인한 해이기도 하다.

 

이렇게 사상 초유로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질서’라는 뜻을 가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뒤늦게 읽게 되었다. 우종학 교수님 강의를 통해 우주에 대해 눈을 더 크게 뜬 덕분이다. 우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다큐멘터리부터 시청하고 나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영문 원서를 읽고 있고, 앤 드류얀의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도 읽으려고 책상머리에 놓아두었다.

 

칼 세이건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별에 대해 끝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꼬마 시절, 브루클린의 한 도서관에서 별에 관한 책을 처음으로 읽고, 천문학자가 되어, 다른 행성을 방문해보고 싶다고 결심한 후, 그는 그대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갔다. 교사의 입장에서 칼 세이건은 최고로 훌륭한 배움의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도 돈과 권력 때문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인해, 책을 읽고, 책에서 자신의 진로를 찾고, 그대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칼 세이건의 호기심을 따라가면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은 과학의 모든 부분을 다 연결하면서도 인문학적으로도 매우 멋지게 읽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고대 이오니아 지방의 자유로운 사고와 고대 철학자들의 과학적 사고와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흑역사들을 가감 없이 동시에 소개함으로써 매우 균형 잡힌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영어 원서에는 없지만, 서광운님이 학원사를 통해 출판한 한국어 번역본의 큰 목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장 – 우주의 바닷가에서

2장 – 우주의 멜로디

3장 – 우주의 하모니

4장 – 천국과 지옥

5장 – 붉은 별의 신비

6장 – 나그네 이야기

7장 – 하늘의 화톳불

8장 – 가없는 시공의 여행

9장 – 태어나고 죽는 별의 목숨

10장 – 영원의 끝

11장 – 미래에의 편지

12장 – 우주인으로부터의 편지

13장 – 단 하나의 지구를 위하여

 

 

칼 세이건이 가지고 있는 시각의 가장 큰 줄기는 진화이다. 진화라는 현상을 지구를 벗어난 우주적 스케일로 조망하고 있다. 그리고,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무수한 별들을 통해서 어딘가에는 지적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이 책의 또 다른 큰 줄기이다.

 

진화가 과학을 통해 인류 지성사에 등장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칼 세이건은 당연히 다른 과학자들처럼 과학에 대한 종교의 탄압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는 228쪽에서 갈릴레오와 케플러의 용기와 데카르트의 비겁한 보신주의를 날카롭게 대조한다. 칼 세이건은 이렇게 과학을 탄압하는 기독교가 내세우는 전지전능한 신을 배격한다. 그러나 나는 칼 세이건이 보여주는 이 광활한 우주에 대한 경이감과 황홀감에서 그의 종교성을 느낀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지구 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가 깨어졌지만, 동시에 아직까지는 이 말도 안 되게 넓은 우주에서 의식을 가진 존재가 인간뿐이며,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도 아직 까지는 지구 하나라는 점에서, 그는 지구와 인생의 소중함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깊이 공감하면서 감동하는 칼 세이건의 관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우주라는 대양의 기슭”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 먼지”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들은 우주의 광대함과 우리의 왜소함을 대조하면서도, 우리의 뿌리가 바로 우주라는 자각을 더욱 깊게 해 주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이 우주라는 끝을 모르는 거대한 대양의 기슭이라는 생각은 일상의 의미를 하늘 높이 고양시킨다. ‘진리는 깊음 속에 묻혀 있다’고 한 공자님의 말씀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생명의 세계에 제일 늦둥이로 태어난 인류 앞에는 광대무변한 탐구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정말 신나는 일이다. 그리고, 우주로의 여행을 막 시작한 우리의 몸이 우주와 같은 물질로 되어 있다는 자각은 우주를 좀 더 친근하게 생각하게 해 준다. 우리 각자의 몸속에는 빅뱅 때 만들어진 수소 원자가 들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나는 인간의 왜소함과 우주의 광활함이라는 역설과 모순의 현 상황이 잘 조화가 되지 않아 비틀거리게 된다. 우주여행은 신나는 일이지만, 먼지보다 작은 지구에서 추위와 과로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고, 매일 같이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는 현실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아프다. 그리고 우주를 다루기에는 우리의 사상적, 학문적 자유가 너무 제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과신대의 활동이 우주가 진정으로 신나는 놀이터가 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 제도를 바꾸어서, 모든 사람들이 염려 없이 살 수 있는 ‘지구 건설’에 일익을 담당하기를 바란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우주 시대에 알맞은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새해에도 원활히 이루어지길 기도하면서,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칼 세이건의 말과 그의 솔메이트 앤 드류얀의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의 한국어판 서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3백60만 년 전, 지금의 탄자니아 북부에 화산이 터지고 화산재들이 초원을 덮었다. 그런데 1979년 고고인류학자 리키는 그곳에서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발자국을 인류의 선조의 발자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곳에서 38만 km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고요의 바다라고 부르는 건조한 평원이 있는데 그곳에 또 하나의 발자국이 있었다. 그 발자국은 지구 이외의 세계를 걸은 최초의 인간이 남긴 것이다. 우리는 3백 60만 년 전부터, 46억 년 전부터, 아니 1백50 억 년 전부터 살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주의 구석에서 자라 자기 인식을 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 이제 인간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별의 산물이 별을 생각하는 것이다. 1백억의 10억의 10배가 넘는 원자가 모여 이루어진 집합체가 원자의 진화를 연구하고 드디어 의식을 지니기까지에 이르는 긴긴 여행길을 더듬고 있다. 인간은 인류에 대해서, 그리고 지구에 대해서 충성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지구를 위해 얘기한다. 우리는 생존해 남아야만 한다. 그 생존의 의무는 우리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들은 우주에 대해서도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영원하고 공간적으로 무한한 그 우주에서 우리가 생겨났으므로. (칼 세이건, 코스모스, 491쪽)
제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특별히 글을 쓰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한국은 혁신에서 세계를 선도해 온 나라이고, 혁신이야말로 인류 역사의 이 위험한 순간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바랍니다. 세계를 지속 가능한 미래로 이끌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지금까지 여러 과제를 맞다뜨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이 과제도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과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에 나서 주십시오. (앤 드류얀)

 

 

최성일 (ultracharm@naver.com)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과신대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과알못의 과학여행기"를 연재하고 있다. 앞으로 과학 고전을 통해 과학적 방법론과 세계관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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