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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을 읽고 / 앤 드루얀과의 데이트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4. 1.

 

 

450여 쪽의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을 읽는 내내, 칼 세이건의 소울메이트인 앤 드루얀 여사와 아주 달콤하고 아름답고 가슴 저미는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생생한 삶과 죽음의 현장과 관계없는 과학은 한가한 지적 유희일 뿐입니다. 앤 드루얀 여사는 과학을 삶과 죽음의 현장인 우리의 일상, 그러나 극미와 극대의 우주적 일상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멸망시키지 말고, 사는 쪽을 택하세요!”라고 말합니다. 다음은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10가지 말들과 개인적 소감들입니다.

 


1. 우리는 어떻게 하면 깨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우리 존재가 미래에 미칠 영향을 오싹하게 느낀다. 누구든 마음 한구석에서는 우리가 당장 깨어나서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우리 스스로는 감당할 필요가 없었던 위험과 고난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깨어날 수 있을까? 기후 변화와 핵 재앙이 인류 문명과 수많은 다른 종들을 돌이킬 수 없게끔 파괴하는 미래로 몽유병자처럼 걸어들어가는 일을 어떻게 하면 그만둘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을 - 공기, 물, 지구의 생명을 떠받치는 구조, 미래를 - 돈과 단기적 편리보다 귀하게 여기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지구의 모든 사람이 각성하는 것만이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로 탈바꿈할 유일한 방법이다. (32쪽)

 

정말 초딩들도 아는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여전히 욕심을 부리는 어른들이 문제입니다. 이 몽유병자들을 어떻게 하면 깨울 수 있을까요?

 

 

 

2. 지극히 작은 차이가 모든 것을 바꾸다

 

지구에 지금껏 살았던 약 50억 종의 생물 중에서 왜 우리만 문명을 건설하고, 세상을 바꾸고, 우주를 여행하는 생명체로 진화했을까? ... 어쩌면 겨우 다음과 같은 작은 차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약 700만 년 전, 무한히 작은 규모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다. ... 우리의 거의 모든 세포에는 30억 개 염기쌍이 발판이 되어 비비 꼬인 사다리를 이룬 이중 나선 DNA가 들어 있고, 그 속에는 암호화된 메시지가 간직되어 있다. 지구의 운명이 영영 바뀐 것은 그 사다리 발판 중 딱 하나, 겨우 원자 13개로 구성된 발판 하나에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다. 원자 13개는 얼마나 작은 규모일까? 소금 한 알의 1000조 분의 1에 해당하는 크기다. ... 이것은 새겉질(신피질)이 더 커지고 주름이 더 많이 잡히도록 명령하는 돌연변이였다. ... 우주력의 12월 31일 늦저녁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45~46쪽)

 

DNA 속 염기 한 쌍이 원자 13개 크기, 즉 소금 한 알의 1천조 분의 1이고, 이것이 두뇌의 새겉질 즉 신피질을 늘리도록 돌연변이 되어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네요. 그런데 우주력으로 1년의 마지막 날 늦저녁이었다고 하니, 인간은 우주의 막내입니다.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아인슈타인과 LIGO 중력파 검출

 

정말로, 얼마 전에는 아인슈타인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던 일마저 해냈다. 아인슈타인이 잘못 짚었던 것은 인간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었는데, 우리는 그러지 말자. 

코스모스가 시공간의 바다라는 사실을 처음 꿰뚫어 본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는 물질이 시공간에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1916년 아인슈타인은 우주 먼 곳에서 물질이 대규모로 폭발할 경우 시공간에 잔물결보다 훨씬 큰 파도가 출렁일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것이 '중력파(gravitational wave)'다.

바로 이 대목이 그 뛰어난 아인슈타인의 상상력마저 실수를 저지른 보기 드문 대목이었다. 그는 우리가 중력파의 존재를 증명할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할 가능성은 영영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왜? 먼 은하까지의 거리를 건너서 사람 머리카락 굵기만 한 길이를 측정한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작은 규모의 현상이었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양성자 지름의 1만분의 1이었다.

1967년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또는 LIGO라고 불릴 사업에 돌입했다. ... 두 블랙홀이 충돌하면, 시공간에 쓰나미가 발생해 공간이 사방으로 늘어난다. 시간은 느려지고, 다시 빨라졌다가 또다시 느려진다. ... 2017년 LIGO 관측소들은 11억 년 전에 발생했던 이런 충돌로 생겨난 중력파를 감지하는데 성공했다. (68~70쪽)

 

당대 최고의 과학자의 예측과는 반대로 50년 만에, 양성자 지름의 1만분의 1인 미세한 중력파를 잡아낸 인간의 능력은 정말 상상을 불허합니다. 이러한 능력을 사는 데 사용해야지 다같이 죽는 데 사용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생명을 낳는 코스모스의 힘

 

인간은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 우리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런 우리도 아마 지구 화학적 힘들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들은 코스모스 곳곳에서 발휘되고 있다. (코스모스는 은하를 낳고) 은하는 별을 낳고 별은 행성을 낳는다. 어쩌면 그 행성과 위성은 자연히 생명을 낳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생명은 덜 경이로운 것이 될까? 아니면 오히려 더 경이로운 것이 될까? (135쪽)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중심주의와 지구중심주의가 깨졌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생명중심주의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특히 제도화된 기독교는 아직도 좁은 틀 속에서 기득권의 꿀을 빨며,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지성은 매우 편협한 독단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미래 신학은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 매우 궁금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현재의 기독교는 사라질 것만 같습니다.

 

 

5. 칼 세이건의 소중한 역할

 

다른 세계라고? 우주에 수조 개의 가능한 세계들이 있다면 어떨까? 하지만 과학은 아직 그런 우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직 지구를 벗어나는 첫걸음조차 뗄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왜였을까? 

과학은 분과라는 작은 왕국들로 쪼개져 있었고, 서로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끼리는 협력하지 않았다. 우리가 지구를 넘어서는 모험에 나서려면 먼저 이 상황이 바뀌어야 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제러드) 카이퍼와 또 다른 뛰어난 과학자 사이의 반목으로 정점에 달했다. 접촉 쌍성계의 두 별처럼, 두 사람은 떨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서로를 질색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함께 새로운 과학을 낳았다.

카이퍼와 유리는 둘 다 갓 시작된 우주 프로그램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둘 사이의 반목은 여전했다. 칼은 으르렁거리는 두 실험실을 계속 오갔다. 두 남자 사이의 적대감에 마음이 어찌나 고달팠던지, 칼은 당시 자신이 이혼한 부모의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두 남자가 공통으로 둔 유일한 제자였던 칼은 두 사람을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217~231쪽)

 

제러드 카이퍼는 천문학자이고, 헤럴드 유리는 화학자였습니다. 둘은 서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반목했다고 합니다. 칼 세이건은 매우 노자적인 과학자였다고 생각합니다.

 

 

6. 일상이 보배

 

뉴턴이 연구한 현상들을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원래 그런 것'으로 여겼다. 사과는 원래 땅으로 떨어지는 법이고, 빛은 원래 그렇게 창문에 비쳐드는 법이라고. 뉴턴의 위대함은 마치 네 살배기 아이처럼 일상적인 현상에 "왜?" "어떻게?"하고 묻는 데서 나왔다. (304쪽)

 

코로나로 잃어버린 일상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하는 문장입니다. 뉴턴은 일상의 모든 것을 보배로 보았음이 틀림없습니다. 과학자들의 마음이 다 이런 것이겠지요?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 복입니다.

 

 

7. "유령 같은 원격 작용 spooky action at a distance"

 

"과학자에게 논리적 불가능성만큼 흥미로운 문제는 또 없다. 우주에서 제일 빠른 빛에도 속도 한계가 있는 마당에, 광자가 먼 거리를 순간적으로 가로질러서 다른 광자와 교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인슈타인은 그런 일을 "유령 같은 원격 작용"이라고 불렀고, 그런 일이 가능한 우주에서 산다는 것은 거의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322쪽)

 

모든 것을 인과관계로 설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과학자들에게는 설명되지 않는 명백한 현상은 견딜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러나 광자의 얽힘 상태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사회 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곧 지도자들과 부자들의 불의하고, 부도덕한 삶입니다.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해야 하는데,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자신들과 관련된 자들에게는 너그럽고, 무관한 자들에게는 엄정합니다. 법의 사유화는 양자 얽힘보다 더 견디기 어렵습니다.

 

 

8. 우리는 모두 플랫랜더다

 

"이 방대한 코스모스에서 우리는 모두 플랫랜더다. 그런 우리가 위를 상상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331쪽)

 

플랫랜더 flatlander는 2차원 거주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좌우 앞뒤는 있지만 위아래 개념이 없습니다. 이 방대한 우주에서 우리는 3차원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에 따라 3차원 속에서 입증된 자연법칙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아래"를 찾으려고 분투하고 있습니다.

 

 

9. 피눈물 나는 호소

 

지금 우리를 이루는 원자들은 지구로부터 수천 광년 떨어진 곳에 있었던 별들에서 지금으로부터 수십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 따라서 우리의 기원을 탐색하다 보면 자연히 우리 시대와 우리 세계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별의 물질로 만들어졌고, 나머지 우주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를 이루는 물질은 우주의 불길에서 탄생했다.

이제 우리는 - 70억 곱하기 10억 곱하기 10억 개 원자들의 집합으로서 긴 세월 진화해 오늘날처럼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우리는 - 물질의 핵심에 숨은 우주의 불길을 끌어내어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우리가 이 지식을 한 번 안 이상, 다시 모르게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우리의 혈통에는 광기가 흐른다.

이 악몽을 개시한 것은 과학자들이 쓴 세 통의 편지였다. 그런데 1955년에 또 다른 편지가 작성되었다. 이 편지는 인류에게 우리가 갖게 된 새로운 물리학 지식에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 서로의 다툼을 잊지 못해서 죽음을 택할 것입니까? 인간 대 인간으로 호소합니다. 여러분이 모두 한 인류라는 것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어 주십시오." 이 선언문은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쓰고, 조지프 로트블랫이 발표하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서명한 것이었다. 그 위대한 과학자가 공개적으로 지지한 최후의 성명서이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선언이 있고 며칠 후 죽었다. (367쪽)

 

버트런드 러셀의 피눈물 나는 호소가 마음에 사무칩니다. "여러분이 모두 한 인류라는 것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어 주십시오." 버트런드 러셀을 어떻게 무신론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모든 종교적 경전과 전통을 가지고 생명을 경시하는 정치 경제 제도를 지지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무신론이 아닐까요? 지금은 말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그 사람의 종교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10.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더 깊은 의미

 

넘실거리는 물에 잠긴 스트로마톨라이트로부터 아인슈타인을 거쳐서 우리에게 오기까지 모든 존재가 품었던 모든 생각의 무게가 느껴진다. 아인슈타인이 1939년 세계 박람회 개막식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더 깊은 의미란 아마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우리 우주는 약 140억년 전 물질, 에너지, 시간, 공간이 갑자기 등장하여서 시작되었다. 그때 어둠은 차가웠고, 빛은 뜨거웠으며, 그 양극단이 결합함으로써 물질에 형태와 구조가 생겼다. 우리 태양보다 수백 배 더 무거운 별들이 생겨났다. 그 별들은 폭발하면서 이후 생겨날 세계들에 산소와 탄소를 공급해 주었고, 금과 은으로 장식해 주었다. 죽은 별들은 어둠이 되었고, 그 어둠의 무게는 빛을 비끄러매는 닻이었다. 그리고 그 별들의 수의에서 새 별들이 태어났다. 별들은 함께 어울려 춤추기 시작했고, 그러자 은하들이 생겨났다.

은하는 별을 낳았다. 별은 행성을 낳았다. 그 행성 중 최소한 하나에서, 뜨겁게 녹은 심장의 열기가 솟구쳐 나와서 물을 데웠다. 그러자 먼 별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던 물질이 생명을 얻어 살아났고, 별의 물질로 만들어진 생명은 결국 의식을 얻어 깨어났다.

그 생명은 땅에 의해 조각되었고, 살아 있는 다른 것들과의 싸움을 통해 조각되었다.

그리하여 커다란 나무가, 많은 가지를 길러낸 나무가 자랐다. 하마터면 여섯 번이나 쓰러질 뻔했지만, 여전히 용케 자라고 있다. 우리는 그 나무의 작은 한 가지일 뿐이고, 나무 없이는 우리도 살 수 없다.

우리는 서서히 자연의 책을 읽는 법을, 자연의 법칙을 배우는 법을, 나무를 보살피는 법을 익혔다. 우리가 코스모스라는 망망대해에서 언제,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코스모스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수단이, 별로 돌아가는 길이 되었다. (444쪽)

 

아주 시적인 끝맺음입니다. 태양계 생명의 역사를 시적으로 잘 표현한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성취에 대한 더 깊은 의미란 우리는 모두 하나에서 왔고, 다 연결된 더불어 숲이고, 서로를 함께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요약하고 싶습니다. 과학이 철학이 되고, 신학이 되고, 예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앤 드루얀은 인류 문명이 약 1만 1650년 전, 우주력으로는 마지막 30초 무렵에 시작되었다고(399쪽)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탄생시킨 우주를 되돌아보며 겸허하게 우리의 분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만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에도 의식이 있다고 테야르 드 샤르댕은 주장했습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특권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계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글 | 최성일 (ultracharm@naver.com)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과신대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과알못의 과학여행기"를 연재하고 있다. 앞으로 과학 고전을 통해 과학적 방법론과 세계관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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