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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이중 소명, 대안적 소명 인식” 강의 요약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 4. 8.

제31회 과신대 콜로퀴움  “이중 소명, 대안적 소명 인식”

- 강의 요약 -

 

 

제31회 과신대 콜로퀴움에서는 고려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대학의 송수진 교수님을 모시고 “이중 소명, 대안적 소명 인식”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세계 최저 출생률, OECD 최고 여성 경력 단절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을 생각해보고 대안 문화로 현실을 바꿔가기 위해 크리스천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고민해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 * *

 

송수진 교수는 아이 셋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강의주제에 관해서 자연스레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대안적 소명인식은 일과 가정이 양립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기 위한 제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송수진 교수는 세 자녀의 엄마입니다 >

 

 

송수진 교수의 직장인 고려대학교의 여성비입니다. 송수진 교수가 소속된 글로벌경영교수의 여성비가 가장 낮게 조사되었습니다.

 

소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송수진 교수는 세 번째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남자가 아닌 여자만의 독특함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경험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서 아래와 같이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특히 출산 이후에 더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출산 이후에는 여성들이 삶과 심리에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커리어 개발을 포기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청년들은 비혼이나 비출산을 선택하게 되고 이는 사회 전반의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중소명은 실천적 질문임과 동시에 실존적 질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우선, 소명에 대해 학문적으로는 ‘개인과 사회에 유익을 제공하고 개인적인 성취감을 주며, 자기 삶의 목적과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기독교적 소명의 정의에는 마틴 루터의 기여가 큰데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정의합니다.

 

한편, 칼빈은 ‘노동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표현’이라고 하였습니다.

 

학문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소명과 여성에 대한 답은 부족합니다. 루터는 자녀 양육에 대해 하나님의 소명을 강조하였습니다. 중세시대 여성의 직업은 가정주부였는데 그 역할을 성직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였으나 여성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역을 가정으로만 한정하였습니다. 현대 여성은 사회참여를 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오스 기니스의 소명의 정의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소명을 다차원성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예배와 일 모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로서 직업에 대한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의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나눠서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의 일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나눠보면 교회 안에서 여성과 남성에 대해 어느 영역에 소명이 있다고 하는 지를 잘 드러낼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중 소명이라 함은 세상에서의 일이 공적과 사적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모두에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별에 관계없이요.

 

비교우위, 기회비용, 이중소명이라는 3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중소명의 관점은 단순한 경제논리의 함정에서 벗어나서 소명의 시각으로 돌봄 노동과 시장의 노동을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목회자들이 받아들이는 소명과 같은 개념입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모두를 소명으로 보게 되면 공적 소명에 함몰되어 사적 소명을 소홀이 하는 것을 방지하게 됩니다.

 

이중소명이 가능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논의할게 많지만 논의의 출발점을 몇 가지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여성의 사회적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가 돌봄 비용을 지불하면 문제가 해결이 될까요? 안타깝게도 100조가 넘는 예산을 투입했어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직업 노동과 돌봄 노동의 균형이 필요한데요 국내 70% 이상이 중소기업인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돌봄에 대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 우리의 공감과 의지, 이해와 결단이 전제되어야 하고 적절한 사회 보상 체계 구축 또한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가슴>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빗댄 제목입니다. 시장경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어디선가 돌봄 노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하며 돌봄 노동에 대한 체계적 보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상호 연대와 호혜적으로 바라보며 돕는 것에 대해 경제적으로 인정하자는 의미입니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정부와 기업만이 부담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비용을 감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가능할까요?

 

나이키의 사례를 보면 아이들 노동 착취문제로 불매운동을 벌였고 결국 공장 문 폐쇄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공정무역 커피는 비싸도 사먹고, 불편하지만 텀블러를 들고 다닙니다. 지구의 공공성에 도움이 된다면 약간의 불편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죠.

 

돌봄 비용에 대해 분담을 하려면 돌봄 개념에 대한 공감 확장이 필요합니다. 이중 소명은 결혼한 가정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적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관련 사례로 ‘째깍악어’를 들 수 있습니다. 돌봄 문제로 퇴사자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째각악어’는 집 근처 대학생들이 아이들을 시간제로 돌보는 개념으로 돌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중 소명이 가능해지려면 일에 대한 재정의 또한 필요합니다. 뷰로크러시(관료제) 기반, 즉 ‘9 to 6’의 업무로도 부족하고 자리에만 있어야 성과를 잘 받는 기준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또한, 일자리를 일탈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유연한 일자리에 대한 배려도 필요합니다. iRelaunch와 WECONNECT는 경력보유여성(경력단절여성이라 부르지 않음)이 일탈했다가 돌아왔을 때 채용하는 헤드헌팅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사회 정책과 제도와 문화에 대해 언급했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참고할 만한 책으로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같이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요리든 자녀교육이든 분담은 디테일해야 합니다. 남편의 가사와 돌봄 노동시간이 많은 나라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높아진다는 유의미한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교회는 인식과 판단 체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공간입니다. 특히 소명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래의 표를 보면 기독인 여성 혹은 남성들이 영향을 받는 통로(원가정, 가정, 교회, 사회)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로를 이해하게 되면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어떤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운데 기독인 여성(기혼, 미혼, 비혼, 청년 등)이 교회의 일방적인 규범, 명령, 성경 해석을 하기 보다는 이러한 여성이 놓여있는 사회와의 연대관계, 갈등관계, 지지관계의 이해해줄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중 소명에 대해 도움이 될 책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송수진 교수의 논문(신앙과 학문)으로 강의에서 생략된 논지 파악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데카메론>은 오늘 강의한 내용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송수진 공저)

 

<슈퍼우먼은 없다>에서는 전담 돌봄을 하고 싶은 남성들의 요구가 왜 받아들여지지 않는가에 대한 정책적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페미니즘에 대한 성경적 해석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글 | 김완식 기자(comebyher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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