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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인류의 기원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 4. 8.

인류의 기원

이상희, 윤신영의 『인류의 기원』을 읽고

 

『인류의 기원 - 난쟁이 인류 호빗에서 네안데르탈인까지 22가지 재미있는 인류 이야기』 / 이상희, 윤신영 지음 / 사이언스북스 펴냄 / 352쪽 / 1만 7500원

 

인류의 시작은 언제일까?

최초의 인류를 우린 알 수 있을까?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현재의 인류로 진화해 왔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가 진화의 마지막 모습일까? 진화는 계속되고 있을까? 빅히스토리는 늘 궁금증을 부른다.

 

진화의 의미를 ‘이전보다 더 좋아지는 것, 나아지는 것’이라는 뜻으로 오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학이 가치 중립성을 갖듯이 ‘진화’라는 개념에는 어떠한 가치나 방향성이 없다. 자연선택에서 당장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유리한 형질이 선택되는 것인데, 그 형질이 절대적으로 생존에 유리하다는 보장은 없다. 우성과 열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성 형질이 곧 우등한 형질이 아니며 열성 형질이 곧 열등한 형질이 아니다.  여기에는 영어 dominant(우성)/recessive(열성)을 한국어 단어로 옮길 때 오해의 소지가 있게 번역된 탓도 있다. 대중들이 과학에 대해 어떠한 오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아 주고 알려 주는 것 역시 학계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실제로 일본 학계에서는 우성을 현성(顯性)으로, 열성을 잠성(潛性)으로 표기 방법을 바꾼 바 있다.

 

최초의 인류는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인류의 기원』에서는 인류의 기원을 두고 어떠한 의견의 변동이 있어 왔는 지를  자세히 소개한다. 전체 22장으로 되어있는 이 책은 순서에 상관없이 흥미 있는 제목을 골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인류의 기원에 관한 큰 줄기만 소개해 보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최초의 인류는 약 10만 년에서 6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탄생하여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아프리카 기원론). 새롭고 우월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원주 집단과의 교류 일절 없이, 원주 집단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원주 집단을 멸절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인류학 연구가 계속됨에 따라 현생 인류가 한 지역에서 기원하지 않았다는 이론이 점차 힘을 얻게 되었다(다지역 기원론).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구부정하고 관절이 망가진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화석의 주인이 생전에 험하게 살아왔고 늙었기 때문이었지만, 그 화석을 본 서구 사람들은 모든 네안데르탈인은 본래부터 구부정하게 생겼고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모습을 가진, 어딘가 덜 ‘진화’된 모습일 것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1909년의 네안데르탈인 상상도를 보면 당시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 있다. 피부가 검은 편이고 눈썹뼈와 턱이 돌출되어 있는 모습인데, 사회화/문명화되지 않은 식민지 원주민들과 닮아 있다. 이는 경쟁 끝에 네안데르탈인을 크로마뇽인(호모 사피엔스)이 멸절시킨 것이라는 사회진화론/우생학적인 인식으로 이어졌다.  당시의 인식과 막스플랑크 연구소 스반테 파보 박사팀의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DNA가 전혀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더해져 2000년대에는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2010년도에 파보 박사가 더욱 혁신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의 1~4%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현생 인류의 공통 조상과 네안데르탈인 간에 이종교배가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에게서도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문화생활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그들은 도구를 사용했으며 몸을 치장했고,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풍습도 있었다. 또 현생 인류만큼 유창한 언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시아에서도 네안데르탈인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지속적으로 동북아시아에 연구팀을 보내 발굴을 했고 중국 역시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부를 만한 화석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아시아에서 제3의 인류인 데니소바인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데니소바인 화석에서 DNA를 추출, 분석한 결과 현생 인류와 조금 차이가 났고, 네안데르탈인의 DNA와도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현생 인류에게 데니소바인의 DNA가 남아 있는지 확인해 본 결과, 아시아에서 멀리 위치한 멜라네시아인들에게서 데니소바인의 DNA를 발견했다. 멜라네시아인들의 DNA의 4%는 데니소바인의 것이었고, 네안데르탈인의 DNA도 4%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데니소바인의 DNA를 적게 가지고 있었으며,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데니소바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복잡한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 외에도 700만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헬란트로푸스 화석이 발견되는 등 다지역 기원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또 아프리카가 아닌 아시아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기원했다는 가설도 있다.

 

최초의 인류가 어디에서 기원하여 어떤 진화 순서를 거쳤는지에 대한 여러 가설에서 보듯이 하나의 증거라도 정반대의 방향으로 해석되거나, 새롭게 발견된 화석이나 연구 결과로 기존의 학설이 뒤집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류의 진화가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듯이 고인류학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는데, 변화가 잦은 만큼 그에 발맞추어 빠르게 정보를 얻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과 같이 과거부터 최신의 학설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린 마굴리스의 『공생자 행성』에서 말하듯 이분법과 기존의 고정관념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생명은 수학처럼 명쾌하게 떨어지는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호성 자체이다. 또 생명은 계속 이어져 있고 변화해 가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발견을 위해서는 잘 모르고 익숙하지 않은, 그래서 쓸모없다고 치부되는 것들에 대해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에 다양한 관점과 층위에서 풍성한 이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글 | 노은서

과학과 신학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공부하고 서평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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