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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예술, 과학과 만나다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 10. 14.

『예술, 과학과 만나다』를 읽고

 

『예술, 과학과 만나다』|홍성욱 외 지음|아트센터 나비 엮음|이학사 펴냄|200쪽

 

예술과 과학은 일견 서로 무관한 분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과 과학은 역사를 통해 계속 상호작용해 오고 있었다. 근대까지는 두 분야가 분리되어 있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필요에 의해 과학과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더욱 거리가 가까워지는 경향이 보인다. 또한 예술과 과학은 본래 한 갈래였다는 의견도 있다.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는 '보편적 지식'과 '실천적 적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두 의미 중에서도 특히 보편적 지식과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했다. 즉 테크네는 오늘날의 예술의 의미보다는 과학에 더 가까웠다. 한편 순수한 진리 추구와도 구분되었다. 테크네의 목적은 이론 확립과 실천을 통해 속해 있는 공동체에 이득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테크네는 학(學), 예(藝), 술(術)의 의미를 통합적으로 가진다. 아르스(ars)는 테크네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으로, 영어 art의 어원이다. 아르스의 개념은 현재 예술의 영역인 회화, 조각, 건축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현재 통상적으로 예술에 포함되는 영감에 따른 창작 활동은 제외된다.


르네상스 이후, 예술의 개념이 재정립되면서 공예와 과학은 예술의 범위에서 배제되었다. 이후 18세기 중엽이 되며 미술의 개념이 정립되었고 예술과 미(美)는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 따라서 예술과 과학ㆍ기술은 다르다는 인식이 현대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었던 테크네의 의미는 20세기 후반의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다시 하나가 되어 가는 움직임을 보인다. 미와 예술의 패러다임이 과학 기술과 연계되는 쪽으로 변화하고, 예술과 과학이 서로를 필요로 하며 상호작용하게 되었다.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과학 기술을 이용하는 때도 있다. 과학자들 또한 '가장 아름다운 실험'을 뽑는 등 미학의 언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과학과 예술 간에 간극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과학은 자연 탐구를 통해 진리를 추구한다. 그러나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미메시스). 모방을 통해 어떠한 진리를 찾을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플라톤은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 진리에 접근하는지, 예술이 인간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시키는지, 교육적 가치가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한 플라톤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예술은 진리를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가리고, 진리를 변형하여 사람을 기만하며 비교육적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과학-진리성/예술-기만성의 이분법이 나타났다. 반대로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고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자연의 비가시적 진실을 찾게 될 수도 있다는 미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진리 추구를 우선시하는 과학의 입장에서, 예술의 기만성은 비윤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여기서 예술에 도덕과 진리의 잣대를 사용해야 하는지 쟁점이 발생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미메시스가 새로운 차원에서 사물들을 재창조한다고 보았다. 즉 미메시스는 오히려 사물의 이데아를 풍부하게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어떤 성질의 인간은 개연적/필연적으로 어떠한 것을 말하거나 행하게 될 것이다. 이 보편성을 통해 예술과 과학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자연법칙의 보편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은 허구이지만 그 안에 보편성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보편적 소통이 가능하다. 그리고 과학은 가설이라는 과학적 허구를 기반으로 진리를 탐구한다. 


이처럼 과학과 예술은 둘 다 실재를 재현하고 모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현을 매개로 상호작용하는 예시로 르네상스의 원근법의 발달이나 과학 연구에 이용되는 삽화가 있다. 사진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망원경으로 관찰한 달 그림이다. 달을 망원경으로 보면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울퉁불퉁하다. 그리고 경계선 주변의 달의 밝은 영역에 어두운 점들이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어두운 영역에서도 밝은 점들이 보아다. 이를 통해 갈릴레이는 지구와 같이 달에도 산, 분화구, 계곡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의 망원경 성능은 분화구가 직접적으로 보일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 갈릴레이가 분화구의 존재를 추론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미술 아카데미를 다니며 원근법, 명암법, 스케치를 배웠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 화가들이 배웠던 명암대조법을 통해 그는 1차 그림자와 2차 그림자를 구분하고, 그림자로 물체를 추측할 줄 알았다. 이탈리아의 회화 기법이 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셈이다.

 

갈릴레이 달 스케치 (출처 : https://en.wikipedia.org)


이처럼 예술과 과학의 만남은 더 큰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 과정에서 플라톤이 제기했던 문제에 대한 갈등들도 해소될 수 있다. 두 분야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한층 더 발전하기를 바란다.

 


 

글 | 노은서 편집위원

과학과 신학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공부하고 서평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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