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비평을 수용하는 창조 신앙[각주:1]


김정형[각주:2]



신앙 교육 내용에 있어 많은 한국 교회는 여전히 16-17세기 종교개혁 시대의 세계관, 언어, 성경 해석, 신학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사실 지난 수 세기를 지나는 동안 수많은 전문 성서학자들과 교의학자들이 과학 혁명 이후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여 신실한 기도와 학문적 열정 가운데 기독교 신앙에 대한 보다 폭 넓고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해 왔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현장 교육 담당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세기 성경 이해 및 신학적 이해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 거의 아무런 지식이 없다. 오히려 과거 종교개혁 시대 혹은 이후 정통주의 시대의 성경 해석과 교리 전통을 불변하는 진리로 인식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성경 해석과 신학 전통을 정죄하는 일부 신학자들의 영향 아래, 종교개혁자들보다 더욱 경직된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과 근본주의적 교리 전통을 고수하며 그것을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혹자는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신도 교사가 신학교에서나 배우는 성경 주석 방법이나 신학 이론을 배울 여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나는 이러한 생각이 매우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다음세대 청소년들은 이미 학교에서 최근 과학 이론을 교육 받고 있다. 과학 교사들은 자신들이 학창 시절 배운 과학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과학 이론을 스스로 배워서 가르친다. 그런데 교회 교사들은 어린 시절 배웠던 그 내용을 거의 그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말하자면, 교사들은 물론 교역자들에게서도 최근 성경 해석과 최근 신학 이론에 대해서 배우려는 의지도 노력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 교육과 신앙 교육 사이의 시간적 불균형이 더욱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교육 내용에 있어서조차 둘 사이에 질적 차이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앙 교육의 내용과 관련한 이 같은 수구적 태도는 마치 자라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다 자란 성인에게도 유아기적 사고방식을 계속해서 강요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지성은 대체로 이미 상당한 정도로 성숙했지만, 성경 해석 및 신앙 이해에 있어서만큼은 많은 경우 아직까지 유아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과거에 배운 과학 이론은 대부분 잊어버렸다고 할지라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만은 그 사람의 삶 전반에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한국 교회의 신앙 교육에서는 성경의 문자적 진리나 교리의 명제적 진리를 주입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해석학적 사고 훈련이나 신학적 사고 훈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성세대와 다음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변화하는 세계관과 변화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성경을 시의 적절하게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명제적, 문자적 진리를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필자가 볼 때 바로 이와 같은 신학적 미숙함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 시대의 창조 신앙은 신앙 교육의 내용 면에서 축자영감설에 기초한 문자주의적 성경해석과 근본주의적 교리 신학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그 대안으로 신앙 교육은 성서 비평을 포함하여 최근 성서학 연구 결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그것을 넘어서 스스로 또한 공동체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신앙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최근까지의 성서학 연구가 반영된 해설 성경이나 최근 성서신학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단행본을 소개하고 함께 공부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한성서공회에서 편찬한 관주 해설 성경은 성경 각 책, 각 단락에 대한 역사비평, 문학비평, 신학비평의 연구 결과들을 엄선하여 담고 있으며,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을 극복하는 한편 신학적 사고를 결여하고 있는 단순한 역사적 연구를 넘어서는 데도 도움을 준다. 교육목회를 담당하는 교역자는 물론이고 교회학교의 교사와 기독교가정의 부모까지 최근 성서신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성경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통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듣는 일을 대체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지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교만한 일이지만, 성경에 대한 엄밀하고 정직한 지적 탐구 결과를 무시하고서 성경의 진정한 메시지를 읽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지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태만한 일이다.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 교육에 헌신하는 모든 지도자는 성경이 형성된 과정, 성경의 기본적인 줄거리, 성경 각 권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 성경에 기록된 글의 다양한 문학 장르, 때로는 공명하지만 때로는 상충하는 다양한 신학적 관점 등 성경의 문자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기본적인 지식을 함께 배우며 쌓아갈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성경 본문의 피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 이면을 관통하고 있는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성경의 문자를 관통해서 하나님의 진리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령님의 조명이 필요하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 교육은 이미 주어진 정답을 암기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관통해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을 훈련시키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신앙은 과학보다 더 심오한 진리를 다룬다. 둘째,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고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다. 과학적 진리보다 더 심오한 진리에 접근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일은 과학적 진리를 이해하고 가르치는 일보다 더 깊은 차원을 요구한다. 신앙의 진리는 단순히 머리로 암기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으로만 소화될 수 있는 성질의 명제적 진리가 아니다. 물리적, 자연적 원인을 다루는 자연과학의 진리와 달리 신앙의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과 계획을 다룬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그 신앙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비단 전문 신학자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모든 목회자, 기독교교육 지도자, 교회학교 교사, 기독교가정의 부모, 자라나는 다음세대 아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진리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진력하는 신학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서 신학은 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며, 모든 신자의 책무이다. 이를 위해 유아기나 아동기의 아이들에게는 성경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유익하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교육의 수준에 걸맞게 성경 교육과 신학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1. 이 글은 김정형 교수가 '문화선교연구원'에 기고한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원문보기 https://www.cricum.org/1418) [본문으로]
  2. 장로회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과신대 자문위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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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성경해석] 창조기사를 어떻게 읽을까? / 성경과 과학 함께 읽기

[3부 무신론의 도전] 무신론의 도전 / 과학주의 무신론 / 과학과 무신론의 차이 / 기적적 창조와 자연적 창조

[4부 창조론의 스펙트럼] 다양한 창조 / 진화와 진화주의 / 창조론에 대한 바른 시각


✓ 영상 시청 기간 : 15일 


✓ 과제 제출 기간 

1) 테스트 질문지 제출 :  수강 신청 후 21일 이내

2) <무.크.따> 서평 과제 제출 : 수강 신청 후 30일 이내  (제출: scitheo.basic@gmail.com)


✓ 강사 :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 등록비(10명 이상 단체 등록 가능) 1인당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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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교수님을 만나다!

이상희, 윤신영,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5)


김영웅


마침 UC Riverside에서 4시에 출발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잖아도 임택규 집사님이 저녁 식사의 의사를 먼저 내비치셨던 찰나였다. 문제는 나였다. 퇴근 후 아들을 픽업해서 함께 오기가 좀 그랬기 때문이었다. 3년 간 둘이 함께 살 땐 얌전히 잘 따라 다녔는데, 얼마 전부턴 불편하다는 의사를 확실히 표현하기 시작했고 난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모두에게 유익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아내가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아들을 대신 픽업할 수 있다고 했다. 아싸! 서둘러 몇몇 분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는 와중 이런 생각을 이동우 목사님과 문순옥 박사님도 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모두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상희 교수님이 충분히 도착하실 수 있는 5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4시 30분쯤 연락이 왔다. 갑자기 뜻밖의 일이 생겨서 조금 늦으시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리버사이드에는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다고 하셨다! 요즘 캘리포니아 날씨가 기록적인 추위에 몸살을 앓고 있는데, 리버사이드에는 눈이 된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눈 소식이 참 신선하고 반갑기도 했지만, 그건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문순옥 박사님께서 맛있고 건강한 저녁을 사주셨고, 이상희 교수님을 위해 투고(to go)용으로 하나를 더 주문하셨다. 그렇잖아도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리버사이드에서 진눈깨비와 교통체증을 뚫고 서둘러 오시는 교수님께 안전하게 오시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내심 걱정도 됐고, 아무것도 못 드신 채 강의에 임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문 박사님의 어머니다우신 배려로 그렇게 금방 해결이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강의 30분 전쯤에 도착하신 이상희 교수님께선 그 음식을 아주 맛있게 잘 드셨다. 마음이 참 좋았다. 과학과 신학, 그리고 고인류학... 이런 것들 이전에 우린 사람이지...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며 돕는 공동체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인류의 기원'이라는 책은 이상희 교수님이 고인류학자로서 우리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역사적 연구 결과와 해석들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쓰신 작품이다. 작년엔 이 책이 총 6개 국어로 번역이 되었고, 5개 국어로 출판이 되었다. 굵직굵직한 상들도 여럿 몰고 왔다. TV와 라디오 방송 출연 기회도 선사했고, 이 책이 각광을 받는 시기와 겹쳐서 이상희 교수님은 학문적인 연구 성과로 테뉴어를 받으셨다. 자칫 따분할 수도 있고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미신 같은 잘못된 지식 때문에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만한 분야를 이렇게 재미있고 일반인의 눈높이에 딱 맞도록 이야기식으로 나왔던 책이 그 동안 존재했던가. 이 책 한 권으로 간략하고 재미나게 인류의 기원에 대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독자로선 행운이다.



약 2시간에 걸친 열정적인 강의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류의 기원은 진화라는 개념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어떤 특정한 목적성 (이를테면 진보)을 가지지도 않고 무작위적으로 환경변화와 유전자 변이의 복합적인 상호관계에 의해 생겨난 좌충우돌의 역사다. 특히, 지금까지 잘못 알려졌던, 네 발로 기어다니거나 나무를 타고 다니던, 머리가 작은 원숭이 (원숭이가 아니다. 공통조상이라 해야 맞는 말이다. 다윈은 한 번도 원숭이가 사람 됐다고 말한 적 없다)가 어느 날 고등동물 (?, 인간이 가장 고등동물이며 진화의 종착점이라고 보는 건 잘못된 개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현재의 다른 생물들은 인간으로 진화하는 어디 즈음엔가 놓여 있다는 말이 된다. 다른 생물들은 불완전하고 인간이 가장 완전한 생물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건 진화에 관련된 책을 조금만 찾아서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로 진화(?)하기 위해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머리가 커지기 시작해서 현생 인류가 탄생했다는, 소위 단선적인 모델은 오류가 많다는 게 밝혀졌다 (허나, 아직 교과서엔 그렇게 배운다 ㅜㅜ). 오류의 이유는 부족한 증거자료를 부풀려 해석한 현생 인류의 한계였다.


우리가 ‘인류의 기원’ 하면 떠오르는 점진적인 그림 하나가 있다. 교과서에서도 나오고 여러 군데에서 아마 한 두 번쯤은 모든 사람이 봤을 것이다. 그 모델이 바로 오류가 많이 발견되어 수정되어야만 하는 단선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사건이라든지, 머리가 커지기 시작한 사건이라든지 하는 어떤 하나의 관점으로 인류의 진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인류의 기원은 어떤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가 시작하는 식의 점진적이고 단선적인 패턴이 아니다. 오히려 백인과 황인과 흑인의 피부색의 경계가 모호하듯 많은 화석기록과 혈청분석결과, 그리고 분자생물학적인 실험결과들이 누적되면서, 각 단계가 상당히 많이 중첩되어 있는, 소위 가지가 많은 나무 형태의 모델을 따른다는 게 현재까지 밝혀진 고인류학의 동태가 되겠다. 아름다운 하나의 수학 방정식으로 보여줄 수 없는, 복잡다단한 좌충우돌의 역사. 바로 우리 인간의 역사가 되겠다. 우리 인간, 그렇게 고귀하거나 퓨어하지도 않다.


난 기독교인으로서 인간이 다른 생물체에 비하여 특별한 존재라고는 믿지만 (하나님 형상), 그것은 결코 육체적인 기원과 그 발달, 진화 과정까지도 특별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부분까지 확장시키는 것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중세와 그 이전 시대의 우주관, 그리고 지금도 나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 중심의 세계관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교만, 그것이 바로 원죄의 의미 아니던가.


마지막 질의 시간에 나온 질문 중에 과신대에서 아주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질문이 하나 나왔었다. 페북 광고를 보고 처음 모임에 참석하셨던 분으로부터였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인간, 아담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창세기에는 인간이 여섯 째날 하나님이 직접 흙으로 만드시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밝혀진 ‘인류의 기원’에 대한 증거자료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모순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과학과 신학을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상희 교수님의 ‘인류의 기원’은 물론 이런 질문에는 답을 할 수가 없다. 신학책이 아니라 고인류학의 대중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과신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난 번 모임부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과신대의 방향은 창조과학의 모순과 오류를 밝혀내어 그들을 무력화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반동적인 세력에 다시 반동적인 세력으로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목적이라면, 별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대로 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성경 해석을 현대 과학의 눈으로 봤을 때도 모순이 없고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 제대로 할 수 있는 쪽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창세기가 신화라는 전제가 부득이하게 필요한데, 이게 참 난제다. 이성적인 문제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오래토록 각인된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다. 시대가 지나면서 바른 성경해석으로 진화가 진행되기 위해서 과신대는 바르게 각인된 성경관을 가진 후대들을 많이 양성해야만 한다. 진화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집단, 공동체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시간이 흐르고 후대가 평가할 사항이다. 우리가 늦은 밤까지 모여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런 작은 변화에 동조하는 것이다.



약 2시간에 걸친 강의였는데, 어젯밤 3시간밖에 못 주무셨음에도 열정적으로 나눠주신 이상희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이상희 교수님, 영광이었어요! 강의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함께 걸어가는 길에서 모임 분위기가 참 좋았다고 말씀해주셨다. 기분이 좋았다. 작년부터 줄곧 일방적이고 딱딱한 형식의 강의에 조금 힘들어지셨는데, 진지하면서도 편하고 중간중간에 스스럼 없는 질문과 답변이 있어서 좋았다고 하셨다. 다음에 또 와주시기로 하셨다.^^ 언젠가는 나올 다음 책을 기대한다.


다음 파사데나 과신대 모임은 3월 27일 수요일 저녁 7시 같은 장소에서 ‘아담의 역사성 논쟁’이란 책을 함께 읽고 나누기로 했다. 이번처럼 저자 직강이 없는 한 과학 관련 책 하나, 신학 관련 책 하나, 이런 패턴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발제를 담당해 주시기로 하신 이지형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어제 늦은 밤까지 열정을 보여주신 모든 참석자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우리 모임이 하나의 작은 불쏘시개가 되어 바른 성경해석으로 가는 진화에 일조를 할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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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왜 자꾸만 과학이 되고 싶어 하는 할까요?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IVP, 2014)


강사은


왜 신앙은 자꾸만 과학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요? 
그것은 어쩌면 신앙은 사람들에게 
'반지성적인' 것으로 취급받고 
과학은 '신적 대우'를 받는 시대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의 영역에 두어도 될 것을 굳이 과학으로 연결하거나 
과학의 영역에 두어도 될 것을 굳이 신앙의 영역으로 귀속시키려는 것은 
엄연히 범주의 오류에 속하겠습니다.

지적설계를 두고 한 말입니다.


지난 16일 수원 남부 북클럽에서는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9장. 지적설계비판
10장. 창조기사 이해하기
11장. 진화 창조론 이해하기을 읽었습니다.


아쉽게도 북클럽 최연소 멤버(초등 6학년)는
집안 일로 참석을 못했습니다.
날카로운 질문 세례에 발제자가 땀 흘리는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


무크따의 마지막 2장은 개정판에서 추가된 내용입니다.
우종학 교수님이 긴 시간 강연을 다니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을 모은 장입니다.
북클럽에서 앞으로 토론할 주제이기도 하겠습니다.


과신대나 북클럽은 대화를 꽤나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각자의 입장, 전통이 다르겠습니다만
함께 만나서 좋은 책과 함께 건강한 토론을 하면
서로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조금 앞선 이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 두 사람이나 빠졌습니다.
역시 북클럽에서 사진은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합니다. ^^

다음 모임에 새로 참여하실 분들을 환영합니다.


[수원남부 북클럽 모임]

일시 : 3월 16일 오전 10:30분
장소 : 성공회 제자교회(http://agnes.or.kr)
책 : 오리진(IVP)
독서 분량 : 1장~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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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사람들: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님



* 지난 1월 14일 미세먼지를 뚫고 최경환 실장과 이진호 간사가 이정모 관장님을 만나기 위해 서울시립과학관으로 출동했습니다. 서울시립과학관이 월요일에는 정기 휴관일인지도 모르고 말이죠.^^;; 조심스럽게 사무실에 들어가 이정모 관장님과 즐거운 대담을 나누고 왔습니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민주주의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길게 나눈 것 같네요.


인터뷰이 | 이정모 관장

인터뷰어 | 최경환, 이진호

사진 | 이진호



Q: 오늘 여기로 오면서 이정모 관장님과 인터뷰를 하기 전에 말문을 트기 위한 질문을 몇 가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첫 번째 키워드는 유튜브입니다. 젊은 세대부터 매체의 변화 속도가 너무나 빠르잖아요. 관장님은 유튜브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편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A: 네, 사실 과학관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미 작년에 65세 이상과 14세 이하의 인구 구성이 엇갈렸습니다. 65세 이상은 점점 늘어나고, 14세 이하는 점점 줄어들어서 이제는 65세 이상이 더 많아졌습니다. 앞으로 5~10년 사이에 대학에서는 큰 물갈이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지금 30대 초반에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온 것이죠. 그런데 열심히 준비해야 할 30대는 별 생각이 없고, 오히려 기회가 별로 없는 40대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걸 봅니다. 공무원 세계에서도 30대에게는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저도 요즘 강의를 많이 나가는데, 젊은 사람들이 정말 없어요. 나이 많은 분들이 많아요. 젊은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는 또 다른 익숙한 매체가 있는 거죠. 제 딸도 돈도 별로 없을 텐데 본인은 유튜브 프리미엄을 본다고 하더군요. 제 딸은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하더군요. 훨씬 편하게 느끼는 거죠. 저도 작년에는 딱 한 번 극장에 갔더라고요. 넷플릭스로 각자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는 거죠.  


예배도 마찬가지죠. 요즘에는 굳이 교회에 가야 해?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죠. 세상은 바뀌고 있고, 다양한 디바이스가 있고, 거기에 적응해 가는 거죠. 과학관도 예전에는 보러 오는 것이었잖아요. 이제는 조금 바뀌어서 가르치는 곳이 되었죠. 강의도 하는 거죠. 우리나라에는 과학관이 137개가 있습니다. 저희 과학관을 만들 때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여러 과학관 중 하나가 아니라 특이한 것을 하자. 일단 지금까지 대부분의 과학관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과학관이 아니어도 갈 곳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중고생부터 성인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관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중고생들이 과학관에 오겠냐고 하지만, 해보니깐 중고생들이 많이 와요.


두 번째, 컨셉은 보고 강의 듣는 과학관이 아니라 직접 뭔가를 하는 과학관으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실험을 직접 해 보는 겁니다. 이런 과학관은 해외 선진 사례도 없습니다. 정작 저희 과학관에서 이렇게 하니깐 소문이 나서 런던의 사이언스 갤러리에서도 오고, 샌프란시스코의 과학관에서도 두 번이나 방문을 했습니다. 장비를 갖춰 나가고 교사들과 협력을 하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해외 과학관 직원들은 상당히 관료적인데 우리나라 교사들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협조적입니다.




Q: 요즘 기성세대가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유튜브를 통해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거나 유사과학과 같은 것이 보급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정보라도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게 좋은지, 아니면 과학을 바르게 알리는 것이 좋은지, 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일단 저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입장입니다. 과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보다는 유사과학이라도 관심이 있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그나마 그런 쪽에 관심이라도 있으면 이야기하고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있기 때문이죠. 교회에 전혀 관심이 없는 친구보다 교회가 싫은 친구가 차라리 나을 수 있어요. 관심이 아예 없는 친구는 어려워요. 뭐라도 하려는 친구는 관심이 계속 바뀌더라도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생각도 안 하고 몸도 안 움직이는 친구는 오히려 더 힘들어요. 유사과학이라도 그 친구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창조와 진화에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보다는 창조과학에 빠져있는 친구들이 차라리 낫다고 봅니다.    


한편 과학자들도 적절하게 타협을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욕을 좀 먹어가면서 일을 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학자들은 약간 순결주의에 빠져있기도 합니다.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Q: 요즘은 정말 사회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 힘든 거 같습니다. 특별히 과학이 가져다주는 삶의 변화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고민과 걱정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A: 최근에 택시 카풀을 한다고 말이 많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게 반대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세상은 그렇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의 90%는 서 있습니다. 대부분의 차는 주차장에 있고 10%만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원들이 낭비되고 있습니까? 만약 지금 있는 자동차의 1/5만 있다면, 사람들이 자기가 필요한 시간에 앱으로 차를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을 태워서 가다가 또 다른 사람을 태우고, 그렇게 자기가 간 거리만큼의 요금을 지불한다면요? 그러면 되잖아요? 그럼 지금 택시 기사들의 생존권은 어떻게 할까요? 보조금을 줘야죠. 점점 택시를 줄여가면서 다음 직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죠. 자율 자동차도 순식간에 올 거 같습니다. 자율 자동차의 사고를 걱정하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자동차 사고를 내는걸요. 자율 자동차의 책임은 법적으로 정하면 됩니다. 이런 것은 기술적인 문제입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해야죠.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복지입니다. 우린 지금 너무 일을 많이 합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하루에 3시간만 일하면 먹고살았습니다. 신석기 사람부터 아프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또 얼마나 일을 많이 합니까? 우리는 시간을 재산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거죠. 저는 앞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발전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민주주의가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넓고 깊은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기술에 종속될 수 있기 때문이죠.




Q: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풀어야 할 숙제 아닌가요?


A: 네, 좋은 질문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되는 과정이 너무나 아픈 거죠. 제도는 정착되지 않았는데,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죠. 그래서 순서가 바뀌어야 하는 거죠. 플랫폼이 바뀌기 전에 복지가 먼저입니다. 오늘 아침에 경향신문에서 장하준 교수 인터뷰가 나오던데, 더 왼쪽으로 가서, 더 많은 복지를 하라는 거잖아요. 전 그게 옳다고 봅니다. 일단 안심이 돼야 합니다. 안전한 사람이 더 대담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직장을 그만둬도 우리 집이 여전하고, 내가 아파도 치료받을 수 있고, 다시 일자리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왜 우리가 지금 일자리에 얽매이겠어요. 얼마든지 다른 길로 갈 수 있죠. 어차피 사양사업이라면 없어질 직업에 매달리지 않고 하루라도 일찍 다른 길로 갈 수 있겠죠. 이런 것을 정치로 해결해야죠.


이런 부분에서 교회가 선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예전에 제가 어릴 때,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회장 선거가 있었어요. 학급회의를 인도하는 회장을 우리가 선출한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회장 제도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저희들은 교회에 가서 투표를 해 봤어요. 교회 중등부, 고등부 회장 선거, 임원 선거를 해 본 거죠. 교회에는 민주적인 제도가 남아 있었어요. 목사를 위임할 때도, 장로를 선출할 때도 투표를 했어요. 그 당시 민주주의 훈련을 교회에서만큼은 꾸준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교회가 가장 진보적인 집단이었죠. 요즘은 가장 보수적인 곳이 교회죠. 가장 많은 가짜 뉴스의 생산지죠.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교회가 한 20년만 쉬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교회가 개혁될 수 있는 틈이 없어요. 일단 문 닫고 세대를 바꾸고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한 세대가 지나간 다음에 우리가 마치 처음 선교를 받듯이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겠어요.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 욕하는 게 이해가 돼요. 사람들이 교회에게는 더 높은 희생, 더 높은 이상을 기대하잖아요. 이제는 그냥 평균만이라도 해라.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역행을 하고 있으니까, 이럴 바에는 차라리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Q: 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늘 우리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저희 과신대도 지금까지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뤘습니다. 앞으로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A: 네, 맞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의 이야기잖아요. 지금의 사람들은 과학과 어떤 대화를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인공지능, 자율 자동차, 여섯 번째 대 멸종, 환경의 문제들 같은 것을 고민해야죠. 우리가 옛날 일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E. H. 카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옛날 일을 통해서 지금을 비춰보고, 옛날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지금을 보기 위한 것이죠. 지금 우리 시대의 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단순히 답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일이면 답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의 과학은 답이 없으니까, 더 토론하고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거죠.


Q: 관장님께서 많이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시대에는 전문 연구가와 대중 사이에 다리를 놓아줄 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한 거 같습니다.


A: 저는 과학계에서도 대학에서 나와 밖에서 활동하고, 신학교나 교회에서도 밖으로 나온 신학자가 필요하다고 봐요. 대학이나 교회라는 플랫폼이 이제는 옛날 플랫폼이에요. 누군가는 새롭게 도전할 필요가 있어요. 플랫폼은 계속 바뀝니다. 우리가 그 플랫폼에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대학과 교회는 비용만 많이 들고 소통도 잘 안되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플랫폼입니다. 새로운 플랫폼이 뭔지는 모르지만 계속 고민을 해야죠. 연습하고 적용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죠.


Q: 저희 과신대가 앞으로 어떤 주제들을 다루면 좋을지 조언 부탁합니다.


A: 실제로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창조와 과학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이슈가 아닙니다. 결국 과신대도 지금 과학의 이슈를 다뤄야죠.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테죠. 사실 세상을 바꾸는 건 기술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기술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예를 들어 카풀이라는 앱 제도, 이런 문제를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고민을 해야 할까? 우리는 누구를 위로해야 하는가? 자신들의 역할을 찾아가야죠. 유전자 편집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그건 하나님의 역사에 어긋나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런가? 그럼, 간 이식은? 각막 이식은? 그런 건 하나님의 역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럼, 항생제는?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가 어디까지를 고민해야 하는지 계속 묻는 거죠. 미숙아가 태어나면 우리는 인큐베이터를 통해서 억지로 살려내잖아요. 이거 우리가 해도 되는 거야? 사람들은 당연히 해도 된다고 말하겠죠. 그럼 편집된 아기들은?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성도들과 이야기를 나눠야겠죠. 이런 것이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아닐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독교인들이 진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만을 믿는다고 해보죠. 뭐가 문젠가요? 세상에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갖고,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진짜 큰 문제죠. 진화를 안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창조만을 믿을 경우, 사람들에게 조롱은 당할지언정, 이 세상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작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조와 진화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 정도 논의하고 적당한 매뉴얼을 만드는 것으로 종결을 지으면 좋겠습니다. 1년에 한 번 정도 그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걸로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귀국해서 지금까지 계속 이런 문제로 질문을 받으면 그냥 우종학 교수님의 <무크따> 읽어 보라고 보내줘요. 그게 제일 좋아요. 저도 교회 다닌다고 하면 항상 그런 질문을 해서 그냥 <무크따> 보내주고 말아요.


*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희 과신대에 훌륭한 과학자들을 많이 소개해 주세요. 장시간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M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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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



과신대의 소식을 전하는

과신대 VIEW - 21호

과신대 칼럼
" 온교육으로서의 과학적 소양 "
최승언 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

지금 할 수 있는 온교육과 관련된 과학교육 중의 하나는 합리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를 모두 할 수 있는, 교사 주도와 학생 주도가 함께하는, 학생 개인 학습과 학생간의 협업 학습이 모두 이루어지는, 과학 지식과 탐구활동 이와 서로 연결되는 과학적 태도 및 과학의 본성이 모두 다루어지는, 그리고 과학 글쓰기와 말하기, 듣기와 읽기가 동반되는, 이러한 모든 것과 함께하여 개인적인 과학 이슈 혹은 사회적인 과학 이슈에 대한 의사 결정 및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 실천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과학적 소양을 이루는 교육을 의미할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 소양을 이루는 과학교육은 아마도 현재 개신교 교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창조과학의 문제를 해결해 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학교육이 미래를 살아 내게 하는 역량들을 가지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더보기)

[과신Q]
매월 우종학 교수님께서 과학과 신학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골라
[과신Q]라는 제목으로 연재해주십니다.
교회에서 혹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과신Q]를 주목해 주세요.


(2)
과학자가 부활을 믿을 수 있나요?


(글보기)

[북클럽 소식 - Book Club]

Coming Soon!
[과신Talk] 창세기와 복음의 공공성


2019.2.26 (화) 저녁 7:30 / 성공회 분당교회

복음의 목적은 개인 구원이나 도덕적인 감화에 있지 않습니다. 복음의 공공성은 복음의 본질입니다. 김근주 교수님을 모시고 창세기 속에 담겨 있는 복음의 공공성을 살펴보는 특강을 준비했습니다.  (더보기)

Coming Soon!
[과신Talk] 공룡, 어디까지 알고있니?

2019.2.19 (화) 저녁 7:30 /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과신대에서 겨울방학을 맞이한 자녀들에게 최고의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스스로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 소개하는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님께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공룡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더보기)


[과학자의 읽기]

김영웅 박사님의 서평을 연재합니다.
과학자가 읽은 신학책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낯섦'을 환대하며 하나님을 알아가기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 김동문 | 선율 | 2018

(글보기)


[과신대 이야기 - Story]
<성경, 바위, 시간> 출간기념 포럼

순교할 각오로 공부합시다! (백우인 기자)

송인규 소장님 역시 목회자들이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피를 쏟는 한이 있더라도 공부를 해야 진리를 수호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아주 자세히까지는 모르더라도, 기본적인 내용은 알아야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또, 죽도록 기도하자는 말은 하지만 죽도록 공부하자는 말은 안 한다. 순교할 각오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슈가 있다면 최소한 어떤 논의가 진행되는지는 알아야 하고, 그 분야에 전문가 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이슈들은 공부를 해야 제대로 된 목회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순교할 각오로 공부해야 한다는 말에 청중석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진심으로 하시는 이야기였다. 목회자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향한 호소였다.


(더보기)
제 1회 과신대 청소년 캠프

지난 2/9 (토)에 열린 과신대 청소년 캠프의 생생한 후기입니다. 청소년 캠프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더보기)

[과신대 Book Story - 신간 & 서평 소개]
데이비스 영, 랠프 스티얼리 <성경, 바위, 시간> (IVP, 2019)

서평 | 박종범

특별히 나는 이번 신간 속 보수적인 그리스도 신앙을 지닌 두 저자, ‘데이비스 영’과 ‘랠프 스티얼리’ 박사가 진실한 신앙 위에서 창조를 위한 지구 연대 논쟁을 우리에게 소개해준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이후 논의될 내용을 제하더라도, “보수적인 신앙이 곧 창조과학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이지만 신학적 편견에 의해 쉽게 무시되던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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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g Soon!
<과신대 기초과정 II> 4기 모집

2019.2.25 (월) 저녁 7:15 부터 (6주, 6회) / 더처치 비전센터 6층

과학과 신학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공부할 수 있는 <기초과정 II> 4기를 모집합니다. <기초과정 II>는 <기초과정 I> 수료자만 신청 가능하며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대한 심화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6주간 과신대 자문위원 교수님들과 함께 공부하는 집중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6주 과정을 수강하고 과제를 성실히 제출한 분들에게는 수료증을 수여합니다.  (더보기)




과신대와 뜻을 함께 할 협력교회를 모집합니다. 

과신대는 과학주의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변증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위해 건강한 창조신학을 교육하고 연구합니다. 

과신대의 비전과 사역을 지지한다면 과신대와 함께하는 교회로 동참해 주세요. 

과신대는 앞으로도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기독교 교육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보급하기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과.신.대 비전>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자문위원>

  강상훈 교수 | 베일러대학교 생물학
  권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물리학
  김근주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기석 교수 | 성공회대학교 총장
  김기현 목사 | 로고스서원 대표
  김요한 목사 |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익환 교수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박근한 교수 | 유타대학교 기계공학부
  박영식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일준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치욱 교수 | 퍼듀대학교 약학대학
  박화경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희주 교수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신은철 교수 |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신희성 교수 | 인하대학교 수학과
  윤철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이길연 교수 | 경희대학교 의대, 외과과장
  이문원 교수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이상희 교수 |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과
  이정모 관장 | 서울시립과학관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임범진 교수 | 연세대학교 의대, 병리학교실
  정대권 교수 | 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
  조성호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최승언 교수 |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
  팽동국 교수 | 제주대 해양시스템공학
  허  균 교수 | 아주대 의과대학 신경과
  현요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운영위원>

  우종학 | 대표

  장현일 | 총무이사
  정대경 | 연구팀장
  윤세진 | 교육팀장
  백우인 | 출판팀장
  강사은 | 북클럽팀장
  심왕찬 | 미디어팀장

  구형규 | 감사
  김성래 | 감사

  최경환 |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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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바위, 시간> 북토크 후기


백우인 기자



입김이 뿌옇게 연기처럼 흩어지고 체감 온도가 상당히 낮은 저녁 시간... 사람들의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정해진 어딘가를 향해 가는 것처럼 한 방향으로 모아져 있었다. 혹시 “거기?” “홍대 프리스타일?” “7시 반?” “「성경, 바위, 시간」 북 콘서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140여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모였다. 일찍 오신 분들을 위해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맛있는 수제 쿠키까지 준비해 주신 배려에 감사하며 조금이라도 더 잘 들으려고 집중하는 청중과 조금이라도 더 전달해 주고자 하는 강연자분들의 열정 앞에 추위도 물러갔다.


「성경, 바위. 시간」은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를 오랜 세월의 역사를 품고 있는 지질학적 관점에서 말하면서 창조를 변증하기 위한 지질학적인 접근과 해석들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한 반면에 어떻게 미끄러진 길을 가게 되어 이상한 창조과학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두꺼워서 대략적으로만 훑어보고 가서 송인규 소장님, 박희주 교수님, 우종학 교수님의 발표를 열심히 메모하면서 들었다. 미국 칼빈대학교(Calvin College) 지질학자 데이비스 영과 랠프 스티얼리가 쓴 「성경, 바위, 시간」은 지질학적 연구 성과물 중 방사성동위원소의 반감기 계산을 통해 최소한 지구 나이가 6000년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해 저자들은 하나님이 6000년 전 즉시적으로 지구를 창조했다는 해석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잘못된 이론에 근거해 교육받고 자란 청소년들이 훗날 지질학적 이론을 접할 때, 자칫하면 교회와 창조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지적과 함께 "기독교 청소년의 영적 건강과 관련된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젊은 지구론을 옹호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자분자분 말씀하시는데 듣고 있으면 시원해지는 박희주 교수님 발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300~400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은 성경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변증 도구였고 과학적 발견과 성경 기록을 결합한 '성서 지질학'이라는 분야가 나오게 되었다. 성서 지질학이 이론화된 사례로 크게 3가지-홍 소설, 수성론, 격변설-를 들 수 있다. '홍수설'은 잇따라 발견되는 화석이 노아의 홍수 때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 화석이야말로 노아의 홍수의 증거라고 믿었다.


'수성론'水成論은 천지창조 때 지구 전체가 물로 덮여 있다가 후퇴하면서 땅과 바다로 구분되고 육지가 침식과 침강이 일어나 바닷속으로 내려가 퇴적암을 형성했다는 이론이며 성경 내용과 잘 맞아떨어져 홍수설을 대체했다. '격변설'은 지층 위치에 따라 퇴적층이 생성되는 시기와 화석도 다르며 시간적인 간격이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성론을 대체했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성경 기록을 조화하려는 노력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왔으며 새로운 이론이 생겨나고 새로운 발견이 계속되면서 기존 가설은 폐기되거나 수정되는 반복되는 과정을 겪었다. 창조과학자 대다수는 종교적 동기 즉 문자적 해석을 고집하며 문자적인 확실성에 대한 추구에 집착하여 독단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성경적 관점은 송인규 소장님께서 발표해 주셨는데, 요약하면 성경의 역사성을 받아들이되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역사성은 말하지만 창조 순서와 창조 방법은 말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지질학적 관점은 우종학 교수님께서 발표하셨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법'에 대한 소개인데, 우라늄이나 스트론튬 같은 방사성원소들이 일정한 반감기를 지닌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지구 나이를 계산하는 방법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이 측정법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퇴적층에 마그마의 관입 후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퇴적층이 쌓인 지질구조가 보여주는 긴 시간의 흔적도 인정하지 않는다.



삼인삼색의 발표가 끝나고 2부 대담 시간은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과학이 발전하면 성경해석도 바뀌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송인규 소장님은 비구원적이고 자연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과학적 사실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설교시간에 과학적인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목회자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우종학 교수님은 잘 모르는 분야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원칙이며 목회자들이 신학적 깊이가 있더라도 과학을 잘 모른다면 그것에 대해 일단 아는 척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과학에 대해 아예 침묵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일반 상식 수준의 과학 정도는 충분히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송인규 소장님 역시 목회자들이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피를 쏟는 한이 있더라도 공부를 해야 진리를 수호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아주 자세히까지는 모르더라도, 기본적인 내용은 알아야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또, 죽도록 기도하자는 말은 하지만 죽도록 공부하자는 말은 안 한다. 순교할 각오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슈가 있다면 최소한 어떤 논의가 진행되는지는 알아야 하고, 그 분야에 전문가 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이슈들은 공부를 해야 제대로 된 목회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순교할 각오로 공부해야 한다는 말에 청중석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진심으로 하시는 이야기였다. 목회자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향한 호소였다.


과신대 정회원들에게 선물로 증정된 「성경. 바위. 시간」을 만져보면서 여기저기 “순교할 각오”로 읽어보자고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700여 페이지 분량을 혼자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과신대 남부 북클럽 2월 모임에 참여하시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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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1회 과신대 청소년 캠프가 시작됩니다.

자, 들어오시죠~








1교시 수업은 정승화, 김예지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셨습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재판을 통해

과학과 신학의 관계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판결문을 작성해서

상황극을 연출하고 

핸드폰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너무나 글을 잘 써서

선생님께서 깜짝 놀랬다고 하네요.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동안

부모님들도 418호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박영식 교수님은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이지은 선생님은 

"자녀와 대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강의해 주셨습니다.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표정 보면 아시겠죠?^^




뭐니뭐니 해도 먹는 게 최고죠.

점심은 진달래로 먹고

간식으로는 햄버거와 콜라로~


역쉬 잘 먹더군요.

햄버거 두 개는 거뜬히~^^





2교시는 구형규, 백우인, 서광 선생님께서

"잃어버린 화석을 찾아서" 수업을

진행해 주셨습니다. 

화석이 어떻게 생기는지 강의를 듣고

직접 손가락 화석을 만드는

실습을 했습니다. 

뒤에서 섬겨주신 자원봉사자들에게도 감사~






공부만 할 수는 없죠.

서광 선생님께서 공동체 게임을 준비해 주셨는데

정말 전문 MC가 따로 없더군요.

재미있고 유익한 게임으로

즐겁게 한바탕 놀았습니다. 

마지막 게임은 매듭 풀기로 훈훈하게..^^






3교시는 차수진, 윤세진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인류의 뿌리를 탐구해 볼까?"

네, 진화론에 대한 강의입니다. 

어떤 내용일지 너무나 궁금하시죠?


차수진 박사님께서 진화론에 대한 내용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윤세진 선생님께서 

깜징어라는 가상 동물의 계통수를 그리는 활동을 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다 끝났지만

감동과 여운은 길게 남습니다.

멀리 제주도에서 온 학생도 있고

청주에서 온가족이 올라온 분도 계셨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다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만족한 표정입니다.


수고하신 선생님, 자원봉사자 여러분

좋은 장소를 대여해 준 NPOpia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해주신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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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은 과학적 합리성을 부정할까?”

성경, 바위, 시간 | 데이비스 영, 랠프 스티얼리 | IVP | 2018


박종범



이번 서평을 준비하며 올해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직면한 학문적 결핍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난 4년간의 신학대학교 재학 중, 나는 성서의 창조를 믿으면서 <과학과 종교의 대화>라는 수업을 통해 알게 된 브라이언 그린을 통해 쿼크나 힉스, 초끈 이론이나 M 이론 등의 양자역학의 영역에 조그마한 관심을 가져왔다. 사실 이러한 관심은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을 돕기 위한 학문적 관심은 아니었다. 합리적인 신학도이자 신앙인으로 보이기 위해서 양자역학자들의 이론을 우주론에 대입해보기도 하고, 알리스터 맥그래스 같은 저명한 신학자의 저서를 쌓아두고 읽으며 그들의 신학적 작업이 나와 동일하다는 것처럼 포장하기도 했다.


서평의 첫 단락부터 자기반성을 하는 이유는, 나의 신학적 무지함으로 인해 젊은 지구 창조론은 성서를 절대 무오로 믿는 이들에게만 국한되는 일이라는 그동안의 오만함을 보수적인 신앙을 견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기 위함이다. 그동안 나는 창조에 관해 이렇게 생각해왔다. “창조에 대해서는 신앙으로 믿으며, 창조에 대한 탐구는 합리적으로 열려있다.” 이 말은 스스로에게 창조 신앙을 지니고 있다는 안정감을 갖게 했고, 사회적으로 지탄받던 젊은 지구 창조론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합리적 신학도의 이미지를 굳히기 위한 것이었고, 나의 성서 이해는 현대의 과학적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일말의 우월의식이었다. 이 자리를 통해 성서를 하나님의 무류한 말씀이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사과를 드리고 싶다.


특별히 나는 이번 신간 속 보수적인 그리스도 신앙을 지닌 두 저자, ‘데이비스 영랠프 스티얼리박사가 진실한 신앙 위에서 창조를 위한 지구 연대 논쟁을 우리에게 소개해준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이후 논의될 내용을 제하더라도, “보수적인 신앙이 곧 창조과학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이지만 신학적 편견에 의해 쉽게 무시되던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변화된 스스로의 소감은 이 정도로 하고, 지금부터는 <성경 바위 시간> 속 살펴볼 만한 포인트들을 각 장마다 간략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1부는 역사적 관점을 통해 보는 지구 연대에 관한 이야기다. 이를 위해 각 시기별로 지질학의 발전과 이에 따른 논쟁이 함께 담겨있다. 특별히 현대 지질학이 출현한 이후 지질학과 성서(성경) 사이의 간극은 더욱 분명해져갔다. 이 간극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조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두 세기 전부터 영미-유럽권 교회들에서 논의되던 내용이었음을 확인하면서 배우는 점이 크다. 오늘 우리가 치열하게 젊은 지구 창조론의 망령과 논증하는 것이 이전부터도 이어졌다는 사실은 지긋지긋함보다는 하나님께서 하신 창조를 바로 이해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으로 본다면 우리 세대에는 하나님의 창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가능성을 기대하게 된다.


따라오는 2부는 성경적 관점을 통해 보는 지구의 태고성이다. 1부의 마지막 소제목이 지구의 태고성이었고, 그 내용이 20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연구인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2부에서 지구의 태고성을 성경, 성서적 관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질학의 역사성에 비춰서 상호 비교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성서 해석은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성서의 본연의 가치를 탐구하는 작업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성서 해석이 모든 부분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양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비는 과학과 문화적으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이 이번 장의 마지막과 함께 독자의 머릿속에는 분명히 떠오를 것 같다. 그 생각은 보수적 신앙의 그리스도인이나 성서 해석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그리스도인들에게나 동일할 것으로 판단된다.


성서와 역사 속에서 잠시 잊힌 부분이 있다면, 이 책의 저자들은 지질학 박사이자 교수라는 점이다. 3부의 목차를 읽자마자 이전까지는 개론이고, 이제부터 본격 강의 시작인가?”하고 스스로 묻게 되었다. 쉽게 말해, 지구과학 이후에는 우리가 단편적으로만 정보를 얻던 지질학의 소재들과 용어들이 이번 장에는 즐비하게 등장한다. 이번 장의 마지막 부분이 방사성 연대 측정에 관한 이야기들이기에 이번 장이 흥미와 당혹감을 오가는 기분을 독자들에게 선사해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지질학이나 인접 학문을 연구하거나 관련직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을 제외한) 우리가 이 기회가 아니면 창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들 가운데 지질학이 영향을 주고 있는 부분을 따로 찾기에는 제한 사항이 있다. 이번 장이 책에서 가장 두꺼운 부분을 차지하며 다소 생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창조에 대한 관심이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내용들로만 구성된다면 이것 또한 창조를 이해하는 시선을 가둬버리는 제약이 될 것이다. 지질학을 이해하는 쉬운 길은 이 책을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다. 다만 쉬운 길은 모르지만 하나님의 창조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지질학자들이 미시간 분지와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통해 지구의 역사를 탐구하고 탐험하는 이 이야기들이 다른 대륙에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생각의 여지와 즐거움을 주는 것은 참 특별한 경험이다. (책에 있는 이 지역들의 사진을 보고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서 모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찾아보았는데, 컬러로 보니 자연의 광대함과 이러한 세계를 창조한 이가 다른 곳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동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4철학적 관점이다. 사실 지구의 태고성을 탐구하는 일에 철학적 개념이 사용된다는 것에 놀라움이 있었다. 사실 역사적-성경적-지질학적 관점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기본적인 이해는 있었기에 저자들이 주는 정보들을 습득해서 나의 지식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4부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적 관점은 들어봤지만 이 개념이 이렇게 적용될 수 있어?”라고 스스로 되 물으며 쉽사리 책장을 넘기지 못한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철학은 어렵다라는 스스로의 성급한 결론이 다양한 분야에서 철학의 개념이 이미 적용되고 있음을 놓친 것 같다. 비록 철학적 관점에 대한 오해로 4부의 시작을 열었지만, 읽어가면서 이번 장이 왜 마지막에 위치하였는지 깨달으며 마치게 되었다. 이 책의 곳곳에서 이미 젊은 지구 창조론의 오류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4부에서는 이를 보다 분명히 지적하면서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용 가능한 지질학적 증거의 총체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 책의 주장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지질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입문서로 쓰기에 적절하다.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이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될 독자들은 단순히 지질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만 이 책을 구입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창조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과학과 멀리 있지 않음을 알고 싶어서, 하나님의 창조를 가까이하고자 하는 노력들 가운데 이 책을 집게 된 이들에게 해답은 아니더라도 해답으로 향하게 하는 성서와 더불어읽을 만한 책으로 적극 추천한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에는 양승훈 교수의 해설이 담겨 있는데, 이 책을 정독하기 전 예습을 위해서나, 읽고서도 여전히 남는 의문들을 정리할 때, 핵심적인 부분들을 다시 생각하고자 할 때도 참 유익하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창조에 대한 고민이 양승훈 교수에게도 동일하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해설 속에서 묘한 동질감과 더불어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지혜 또한 얻어 갈 수 있다.


성서를 해석하는 시선과 신앙이 다르듯 창조를 이해하는 견해들이 다름을 더욱 분명히 깨닫는 오늘날이다. 분명한 점은 이 책을 읽고서 하나님의 창조가, 그리고 이 지구가 우리의 단순한 셈법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드는 분들에게나, 앞서 말한 눈가리개를 여전히 벗길 거부하는 분들에게나 이 땅은 소중하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구, 이 땅은 하나님의 창조의 땅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들이 창조의 땅을 설명하고자 자신들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한 가지 소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신앙하는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왔던 과학, 특별히 지질학의 발견을 무시하거나 하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은 신학을 전공하는 나에게나 신앙 안의 지체들에게는 어려운 부분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앙의 어떠함을 떠나 성서 고유의 가치와 전통을 존중함이 훼손될 것을 항상 염려하고 경계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염원을 가지고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변치 않는 신앙을 유지하고 이 신앙을 후대에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우리의 이 마음과 이 태도는 충분히 존중받고 앞으로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인도하고 계신다는 신앙처럼, 우리는 창조의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놀라운 창조의 세계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성서뿐만 아니라 창조의 세계,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또한 이 땅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의 수고는 성서 해석을 위해, 그 말씀대로 살아내기 위해 힘쓰는 우리의 최선만큼 존중되어야 한다.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젊은 지구 창조론의 카운트 어택(반격) 정도로 그치지 않길 바란다. 창조하신 이를 알기 위해 수고하는 이들이 창조하신 이가 만드신 땅에 대해 무지하고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이다. <성경 바위 시간>을 통해 이 땅에 있는 모든 현상, 특별히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최선이 하나님을 열망하는 우리의 신앙만큼 자라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도한다.


창조의 땅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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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책] 과학자의 읽기


'낯섦'을 환대하며 하나님 알아가기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 김동문 | 선율 | 2018


김영웅



성경은 모든 답을 알려주는 마법 책이 아닐 뿐더러, 인간의 성공과 번영을 위한 참고서도, 또 자기계발서도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 사이에 생긴 관계의 단절, 그 단절로 인한 결과, 그리고 그 불가항력적인 결과로부터의 해방과 구원, 회복의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목적은, 김근주 교수의 '나를 넘어서는 성경 읽기'에서도 강조되듯,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성경을 읽는다'가 참이라면, '성경을 읽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도 참이다. 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안위와 유익만을 위해 보험이나 부적 같은 용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무늬만)도 이 세상엔 적지 않지만, 만약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면(은혜 아닌가!),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하나 생기게 된다. '어떡해야 성경을 바르게 읽을 수 있는가?'

 

성경 읽는 방법에 대한 책과 강연은 이미 넘치도록 많다. 그러나 여기, '성경을 낯설게 읽어보기'를 권하는 특이한 책이 있다. 책의 부제라고 할 수 있는 '낮은 자의 하나님을 만나는'이라는 표현만으로도 이 책은 벌써 내 주의를 충분히 끌었지만, 책을 열어 프롤로그에 쓰인 '낯설게 만나는 성경'이라는 제목을 읽었을 땐, 이미 내 마음은 이 책에 대한 기대로 충만해졌다. 어제 밤, 아니 오늘 새벽,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될 만큼 또렷한 정신으로 난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림과 글이 절묘하게 어울려, 저자가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었고, 읽는 이에게 지루함을 줄 틈도 제공하지 않을 정도로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으며, 가능한 천천히 읽으려 해도 자꾸만 책장이 넘어갈 수밖에 없을 만큼 강한 흡입력을 가진 책이었다. 높은 곳에 서서 함부로 결론을 지은 뒤 낮은 곳에 위치한 독자에게 교훈이나 지침을 던져주려 하지 않았으며,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 볼 수 있도록 독자의 자리로 내려와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자연스럽게 요구하는 책이었다. 책의 부제에 포함된 '낮은 자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이미 저자가 책을 구성한 의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저자와 독자가 함께 읽는 책. 아마 이 책을 손에 든 독자는 누구라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오랜 기간 중동 선교사로서 그들의 낮은 자리의 삶을 직접 함께 하며 살아낸 저자의 일상의 호흡이 배여 있는 책이다. 낯설게 성경을 읽어보자는 그의 바람은 성경이 주어졌던 '그때 그곳'의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보자는 의미를 내포한다. 성경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지만, 동시에 성경은 '그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쓰였던 책이기에, 현재 우리가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관점은 성경이 처음 주어졌던 독자들이 이해했던 관점과 똑같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오류가 없을 거라는 논리의 비약으로 이루어진 오류로부터도 벗어나야 하며, 한낱 개인의 위로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용도로 성경을 읽는 사적인 복음의 관점으로부터도 벗어나야만 한다. '그때 그곳'의 관점에 대한 이해는 시간과 공간과 문화가 다른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낯섦을 거부하지 않고 환대할 때, 우리의 성경 이해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인 김동문 선교사의 겸손한 도움으로 이러한 여정에 뒤늦게나마 발을 내디딜 수 있어 난 참 다행이다. 선교사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이 만화책을 이루고 있는 총 18개 짧은 꼭지의 공통분모는 '낮은 자의 하나님'이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낮은 자의 하나님'을 이해해 보며 '낯설게 성경을 읽는'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알아갈 수 있다. 교회에서 익숙하게 수없이 많이 들어왔던 성경 본문만이 아니라 그다지 설교 본문으로 많이 사용되지 않은 부분까지 고루 담겨 있는데, 때로는 허를 찔린 듯한 기분으로, 때로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으로 난 감탄과 함께 각 꼭지를 읽어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인간은 고대 근동 신화에서 소개되는 것처럼 신을 대신하여 일하도록 지음 받은 노예 같은 존재가 아닌, 하나님 형상대로 지어져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임무를 부여 받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도록 지음 받았다는 사실. 난 이 사실 덕분에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묵상할 수 있었고, 기독교의 구별됨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아브라함과 소돔고모라의 나그네를 대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환대 vs. 천대)을 대비하는 부분에서 난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배제와 혐오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방법이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신앙의 완전체 이미지로 알려진 이삭 이면에 있는 아픔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아픔도 아브라함 입장이나 설교자 입장이 아닌 이삭과 하나님의 입장에서 신선하게(낯설게)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출애굽 이후 40년 광야생활에서 새로운 거룩함을 알려주신 하나님의 방법이었던 성막의 실체(민낯)와 그 안에서 마치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처럼 낮은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겼던 제사장의 고군분투했던 삶도 저자가 제공하는 그때 그곳의 현실적인 해설 덕분에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외에도 짧지만 많은 이야기들이 재치 있는(때론 폭소를 유발할지도 모른다) 그림과 함께 책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마도 책을 책장에 꽂아놓지 않고 나처럼 책상 위에 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또 읽고 싶어서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말한다. 독자들이 "무엇보다 하나님은 힘 있고 권세 있고 풍족한 이들보다 나그네, 이방인, 여성, 노동자, 마이너리티, 상처 받은 사람, 연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 등 낮은 자에게 온 관심이 있으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이 책의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말이다. 저자의 바람은 적어도 나에겐 성취되었음을 밝힌다. 이러한 낯설게 읽는 성경 읽기 방법이 이 책을 통해 시작되어, 몰랐거나 희미하게 알았던 하나님을 밝고 선명하게 알아가는 또 다른 시작이 되었음을 믿는다. 신약편이 기다려진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