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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자문위원 칼럼] ‘만만(either/or)’에서 ‘도도(both/and)’로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5. 3.

 

 

    “목사님은 지구의 역사가 몇 년이라고 생각하세요?”

 

 


 

얼마 전 저는 어떤 교회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저는 선교한국에서 주관하는 LAMS(Life As Mission School, 선교적 삶)라는 커리큘럼의 강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의 선교적 성서 해석을 기반으로 한 ‘하나님 백성의 선교’(The Mission of God’s People)라는 책을 텍스트로 해서 성서적 선교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그날 제가 담당한 강의의 주제는 교회가 생태계와 더불어 살아야만 하는 성서적 근거를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소그룹 나눔이 진행되던 중 스태프 한 분이 제게 다가와 질문하신 것입니다.

 

그 젊은 남자 교인과의 대화는 창조과학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은 강의 중에 제가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수의학을 전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게 창조과학에 대해 질문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러다 창조과학에 대한 저의 비판적인 입장에 토론이 길어지다가 지구 역사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과학적 탐구의 결과로 보면 45억 년쯤 되지 않을까요?”

 

이 지점에서 그분의 수용성은 한계에 이르렀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목사님이 그렇게 믿으실 수 있으세요?”

 

수학전공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시는 그분께 이 세상의 과학자들은 대부분 ‘음모론자들’였습니다. 그분께 지구의 나이가 6천 년이라는 정보는 분명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과학과 성경에 대한 저와의 견해차를 확인하시던 그분은 결국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기는 하시는 거예요?” 허탈했습니다. 지금껏 우리가 생태계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임을 강의했는데 이런 질문을 받다니... 곁에서 잠시 대화를 듣고 계시던 그 교회 선교담당 목사님께서 대화를 중단시키시지 않았다면 대화가 어디까지 흘러갔을까요?

 

그런데 이 대화가 오랫동안 제게 준 안타까움은 사실 과학과 성경 해석에서의 견해 차이 그 자체가 아닙니다. 견해 차이를 다루는 그분의 태도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회심시키셔서 이제 예수를 제대로 믿은 지 3년밖에 안 돼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시면서도 그분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저를 전혀 존중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이분은 ‘나만 옳다,’제가 흔히 ‘만만주의’라고 부르는 태도가 강했습니다. 나만 옳으니 나와 다른 생각은 모두 틀린 것입니다. 나도 옳고 나와 다른 생각도 옳을 수 있다, 혹은 내가 존중받아야 하는 것처럼 남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소위 ‘도도주의’는 그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교회와 사회가 모두 경험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갖기 쉽습니다. ‘다름’이 ‘틀림’으로 간주하기 쉬웠던 근현대 역사를 그 배경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나와 다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학습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분열되고 양극화됩니다. 교회 역시 그렇습니다. 개신교회 교단의 숫자가 왜 그렇게 많으냐는 질문 역시 자주 받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우리 과신대가 ‘만만의 세상’에서 ‘도도의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화시켜 말씀드리면 우리 과신대 공동체 역시 창조 과학을 대할 때는 하나가 될 수 있지만, 우리 공동체 내부에서 과학과 신학의 접점을 논할 때는 다양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나와 다른 생각과 그 생각을 하는 사람에 대해 ‘만만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는 공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단들이 분열하듯이 분열하게 되겠지요.

 

그런가 하면 과신대 사람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때도 우리는 ‘만만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분들과의 소통에서 우리가 ‘만만주의’적인 태도를 강하게 보인다면 결국 그 태도는 우리의 소통과 설득에 중대한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만만’에서 ‘도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공동체 내부에 존재하는 다름, 그리고 우리 공동체 밖에 존재하는 다름을 성숙하게 다루면서 소통하는 법을 연습해갈 때 우리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더욱 아름답게 실현될 것입니다.

 

 

 

글 | 정삼희 목사

신도중앙교회 담임, 과신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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