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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SF영화와 기독교] 5. 보이저스: "휴매니타스 Humanitas"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5. 28.

보이저스 Voyagers, 2021

SF, 모험, 스릴러 / 미국 / 108분 / 2021 .05.26 개봉 
감독 : 닐 버거
주연 : 콜린 파렐(리차드), 타이 쉐리던(크리스토퍼), 릴리 로즈 멜로디 뎁(새라), 핀 화이트헤드(잭)

 

최근 유명한 포털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사측에서는 A.I. 가 임의로 메인 화면을 구성할 뿐 자신들은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반대 측에서는 A.I.는 핑계일 뿐 결국 누군가의 편집의도에 따라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이 메인을 장식한다고 한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이 논란의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은 객관적 도구일지 모르나, 사용하는 자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기술의 사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상식적인 말로, 핵을 무기로 쓸지 전기 생산을 위한 에너지 자원으로 쓸지는 인간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 여부에 따라 인류에 미칠 영향은 막대하다. 따라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윤리적 질문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가?

 


 

닐 버거의 신작 [보이저스]가 안고 있는 숙제가 바로 이 질문이다. [보이저스]는 가까운 미래 2063년을 배경으로 한다. 감독이 설정한 40년 후의 미래는 암울하다. 지구는 환경 오염이 심각하여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하게 된다. 결국, 인류가 결정한 것은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갖춘 행성으로의 이주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이 리차드에게 놓여 있다.

 

일명 [휴매니타스]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다. 우선 새로운 행성으로 향할 우주선 [휴매니타스 호]를 제작한다. 일론 머스크의 화성 탐사선 스페이스 엑스와 흡사하다. 이어 이 프로젝트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누구를 새로운 행성으로 보낼 것인가? 인류의 대표는 누가 될 것인가? 이것은 윤리적, 정치적 질문이다.

 

프로젝트 담당자들은 오랜 논의 끝에 결정한다. 현 세계에서 각 분야별 가장 우수한 인재들의 유전자를 채취하여 인공수정을 통해 태아가 태어나게 한다. 그리하여 남자 15명, 여자 15명의 아이들이 탄생한다. 이 아이들은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된 공간에서 자라고 양육된다. 휴매니타스 호와 동일한 공간에서 철저한 계획 속에 양육된다. 철저한 계획과 보안 속에 아이들은 천문학, 수학, 의학, 기술, 생물학, 식물학 등의 교육을 받으며 전문가로 길러진다. 휴매니타스호가 완성되면 이들은 우주선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고 거기서 인류는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자랐는가? 새 행성까지는 86년의 시간이 걸리고, 이들은 그 행성에 실제로는 도달하지 못한다. 이들에게서 태어날 새로운 세대가 새 행성에 착륙할 것이고 이들은 전달자의 역할을 맡는다. 혹여 지구로 귀환하고자 하는 향수병 등을 막기 위해 우주선 공간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양육 받았다. 이들은 부모도 없고, 단지 같이 자란 동료 밖에 없으며, 지구라는 환경은 전혀 알지 못한다. 말 그대로 우주선에서 태어나 우주선에서 자라고 우주선에서 죽을 운명이다.

 

 

마침내 휴매니타스 호가 완성되고 아이들도 자랐다. 이제 20대 초반의 성인이 되었다. 리차드는 이들 30명의 대원과 함께 휴매니타스 호에 오르고, 휴매니타스 호는 계획에 따라 행성으로 가는 궤도에 올랐다. 우주선과 같은 공간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에게는 우주선 내부가 온 세상이며 모든 경험 공간이다. 그 외의 공간과 세상은 이들에게는 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철저히 프로그램화된 것처럼 이들의 정자와 난자를 통해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날 것이며, 그 아이들이 새 행성에 도착할 정도의 식량과 에너지가 휴매니타스 호에 실려 있다. 계획 이외의 일이 벌어지면 프로젝트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

 

그러던 중 잭은 늘 마시던 물 색깔에 의문을 가진다. 왜 물 색깔이 푸를까? 잭은 어느 날 왜 모든 팀원이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며, 왜 꼭 물을 마셔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자신은 물을 마시지 않고 몰래 버렸다. 그러자 잭의 몸이 반응했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이다. 여성 대원들을 볼 때 성욕이 느껴지고 안고 싶은 욕망이 분출했다.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이다. 잭은 몰래 물 성분을 분석했다. 그리고 물에 녹아 있는 성분이 성욕이나 감정을 억제하는 것임을 발견한다.

 

이후 휴매니타스 호는 일대 혼란에 빠진다. 잭은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크리스토퍼와 새라에게 알리고, 이들은 리차드에게 묻는다. 여기서 중요한 윤리적 판단이 갈등을 낳는다. 리차드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말한다. 인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 우주선은 새 행성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대원들을 설득한다. 감정과 성욕을 통제하지 않으면 우주선 안은 혼란이 가중될 것이며, 아이들의 계획적인 탄생도 물거품이 될 것이며, 그렇다면 식량과 에너지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논리다. 전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 리차드의 대답이다.

 

 

보이저스는 우리에게 오래된 철학적, 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기계적인 존재인가? 자율적인 존재인가? 과학은 윤리적 질문을 초월해 있는가? 과학이 윤리적 질문에 통제되어야 하는가?

 

우선 휴매니타스 호 프로젝트에서 첫 번째 오류는 아이들을 인공수정으로 탄생시켜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기른 것에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자기 선택권이 없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관계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택되었을 뿐이다. 아무리 인류의 미래 생존을 위한 것이라 해도 아이들의 자유, 의사, 선택권을 박탈한 것은 심각한 윤리적 악이다. 이는 전체주의적인 시각이다. 또한, 우주선 공간 안에서 약물로 감정과 욕망을 통제한 것도 비윤리적이다. 인간을 기계화하며 대상화한 것이다.


 

비단 이들뿐일까? 오늘날 각종 포털이나 언론 매체는 독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한다. 일부 소수의 데스크가 선택하고 골라낸 기사들만을 우리는 접할 수 있다. 이는 심각한 현실에 대한 왜곡 효과를 낳는다. 독점적 지위에서 다른 선택권이 없는 소비자들은 그들이 제공하고,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한다. 일찍이 조지 오웰이 경고했던 빅 브라더스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대다수 대중은 그들의 생각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오래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세상은 어떤 전능한 존재의 철저한 통제 아래 진행되는 것인가? 아니면 인류의 자발적 선택, 자유의지의 발현인가? 오래된 신학적 질문인 선택과 자유의지는 대치하는가? 아니면 공존하는가?

 

지난 100여년의 인류 역사를 보더라도 진자의 추와 같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나친 전체주의 국가도, 자유주의 국가도 한계 상황을 맞았다. 일찍이 통제 사회였던 공산주의 사회는 막을 내렸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종말의 위기 속에 있다. 영화에서 리차드도, 그리고 잭도 실패한 이유다. 갈등과 혼란을 거쳐 그들은 타협한다. 새라가 새로운 지도자가 되고, 그녀는 구성원들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며 휴매니타스 호를 이끈다. 새로운 행성으로 향한다는 기본 전제 위에 구성원들은 자율적인 업무와 사랑을 통해 자기통제를 실현한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섭리는 자유의지를 통제하지 않고, 자유의지는 섭리를 반하지 않는다.

 

미라슬라브 볼프의 말처럼 하나님이 삼위일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위는 일체를 거스르지 않으며, 일체는 삼위를 통제하지 않는다. 통일성 안에 다양성이 존재하며, 다양성은 통일성을 향한다. 기술은 윤리를 반하지 말아야 하며, 윤리는 기술의 진보를 막지 말아야 한다. 둘은 이원론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상호 작용을 통해 인류는 진보의 항해를 추동한다. 리차드도 아닌, 잭도 아닌 새라와 같은 리더십, 집단 지성적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글 | 김양현

하울의 움직이는 아빠로 방송과 잡지에 영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2021년 2월부터 김양현 목사님의 "SF영화와 기독교"를 연재합니다. 신앙과 영화의 통섭을 꿈꾸는 김양현 목사님께서 SF영화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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